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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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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알아야 한다. 그동안 차별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피아노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지 않나. 지금까지 소위 중립적이라는 사물을 모두 다시 살펴야 한다. 이미 편향되어 있었을테니까. 한편으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별점 테러하는 사람들의 용기가 새삼 부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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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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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그렇게 사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상이 있다. 앨리스 먼로는 그런 것들을 썼다. 특히 여자들의 일생을. 거기에 가닿는 섬세하고 깊숙한 포착에 숨이 턱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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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리의 보도블럭에서 밟은 껌을
집안까지 끌고 들어오는 일
죽음까지 끌고 가는 일

「퍼니스트 홈 비디오」부분.



거리에서 보게 되는 더러운 것 중 대부분은 인간의 입을 통해 뱉어졌다. 그것들은 아직 온도가 짐작될수록 더러운데. 다시 말해, 인간의 안쪽과 가까울수록 더 더럽게 느껴진다. 이를 마주할 때 불쾌한 까닭은 삶과 죽음의 장소를 명백하게 분리한다고 믿는 인간의 사회에서, 흔적들이 뒤엉켜 유지되는 동물의 사회로 귀환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바닥에 붙은 껌의 원인을 찾는 일은 생각하기 무섭게 무의미해진다. 밑창에 눌린 껌을 보고 화를 내는 일이 가능할까? 개별 인간에 대한 추적은 가능하지 않다. 조장한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이 하찮은 권력을) 간섭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일은 내가 사는 곳 전체를 되돌아보아야 문제로서 인식할 수 있다.  


여기서 질문은 '익명으로 버려진 껌 따위가 누군가의 하루를 상하게 하는 일이 <시>로서 말해져야 할까?' 이다. 이 하찮은 일을 문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 지점에는, 길바닥을 제 것처럼 권력화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에서는 얌전하게 껌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침과 가래가 더 많다. 누가 이것들을 길바닥에 뿌려 놓을까. 이것을 피해 걸어 다녀야 하는 이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코미디가/ 운 나쁜 캐릭터의 수치심으로 마무리되는 일'처럼 우스워지면 끝난다. 이런 일에 반기 드는 것은, 살짝 뭉개지는 것이 당연했던 분위기를 깨는 일이다. 시인은 당하는 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재미없게-정의롭게 말하는 대신 만연한 웃음을 가로막는다. 아까 밟고 온 껌의 저편에 죽음이 묻어있는데요, 그게 다름 아닌 '아버지'였네요라고 말하는 식. 이 시의 제목은 <퍼니스트 홈 비디오>이다. 여기서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인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아버지인가? 아니, 그게 중요한가? 문제는 그런 '아버지'들을 모으면 사회 전체를, 그 중에서도 제법 높은 곳을, 문제를 겨누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대놓고 말하자. 화자는 명백하게 여자이다. 이 여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그녀가 '처세술'이라고 자조하는, 여성의 삶을 만나보자. 


공기 속의 말을 떨어뜨리지 않는 신체 훈련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좋다

「내일의 처세술」부분.

바닥에 버려진 껌과 침과 가래를 피해 걷고 급기야 화자는 '말하지 않는' 훈련을 한다. 이때 그녀의 침묵은 생각-없음, 말-없음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입과 성대를 스스로 잡아 붙드는 '힘'의 결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바닥에 붙은 껌을 피해 걸어 다니는 날렵한 발과 이어져 있다. 이제 화자를 완전히 '그녀'라고 말하겠다. 그녀는 실은 '다 할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고 그런 자신을 긍정한다. 그녀는 들리지 않게 살아있고, 보이지 않게 움직인다. 어째서 드러나는 방법을 연습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녀로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기분에 비해 너무 작은 입으로/ 무슨 말을 남길 수 있을까/ 잘 죽지 않는 이 기분을/ 천천히 바뀌는 표정이 보여 준다" 「모형」 부분. 그녀의 입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녀의 입은 체리를 먹기 좋을 만큼만 크고, 듣기 좋은 웃음을 지을 만큼만 크다. 하고 싶은 말을 목으로 붙들어 내는 것. 이것이 그녀가 사회에서 존재할 수 있는 '처세술'이다. 

내가 사라져 주길 원하겠지만
나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
너는 나를 향해 무엇이든 던진다
팔걸이
손잡이
문고리의 위치

「뛰는 사람*」 부분.

하고 싶은 말을 붙들어 매는 그녀의 힘이 이것을 알아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내가 사라져 주길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묻지도 않은 대답을 날린다. '나는 잘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런 사회에서도 '굳세게' 있기로 한다. 심지어 '문고리의 위치'를 던져도 말이다. '미시오'와 '당기시오'의 표시는 언제나 문 앞에서 속인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당기시오'였거나, 문처럼 생겼을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문 앞에서 언제나 한 번 이상의 수고를 할 테고, 때문에 문을 여는 데 시간이 더 걸리며, 심지어는 지금도 문고리가 아예 없는 곳에서 문의 사방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대신, 그래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먼저 대답하고, 같이 열자고 하는 대신, 그녀 이후의 세대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소년아 소녀아
지붕의 모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높이 더 높이 올라가 보는 것뿐이다
너흰 가장 오래 지속되는 감정을 찾을 때까지
떠돌아야 한다
그래서 너희는

「불이야」 부분.

건물의 '꼭대기'를 상상하라고 말이다.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았을 건물, 알지 못하는 설계의 문 앞에서 그다음 공간에 진입하는 비좁은 상상을 하는 대신, 많이 떠돌아다니라고 말한다. 너희에게 문은 필요 없어. 그러니 그따위 열쇠를 가지려고 할 필요도 없지. 다만, 높이 올라가서 '지붕의 모양'을 확인해라. 나처럼 문 앞에 있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더러워진 거리에 닿지 않도록 온 다리에 힘을 주며 걷고, 거리의 껌 따위에 아버지의 죽음을 붙여 놓는가 하면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잡아 붙드는 신체 단련을 하고, 문고리를 던지는 이들에게 맞서 내 이후의 세대의 아이들에게 '지붕 꼭대기'를 살피라는 말을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의 끝에는, 어머니와의 만남이 있다. 거의 다 지워져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었을 흔적의 '어머니'. 이 둘의 만남이 공교롭게도 '문 앞'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어머니가 녹아 안이 된다'「불이야」 부분. '녹는 점'은 물질이 제 형태를 지키는 한계로서의 온도이다. 가부장제로 이뤄진 가족의 녹는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머니. 어머니가 녹으면 이 집도 끝이에요. 라는 탁월한 설명 앞에 도착한다. 이 집을 태우는 건 바깥에서 던진 불씨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충실한 복역자로서의 어머니가 자신의 온도를 기억해 내는 일이다. 그간 어머니의 노력은- 인간의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일들은 대게-'믿음'의 소산이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그 혼신의 힘을 그만 두세요. 그녀가 말한다. 

문 앞의 어머니
어머니가 녹아 안이 된다
안이 녹아 불이 된다
이 집은 믿는 집이야

「녹는점」
 
『온갖 것들의 낮』은 부서진 자리가 폐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빛이 얼마나 환하게 들어올 수 있는 지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 낮을 보려면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자리와 나 스스로가 한 번은 깊은 나락에 이르러야 한다. 이 일을 대신하는 이, 시인은 이것을 먼저 다녀와서 들려준다. 이 책의 화자는 대체로 두 갈래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나는, 아프고, 잠이 들며, 병들어 새벽 4시를 보는 나의 폐허가 만난 낮이다. 이 글에서 제외된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줄기는 '여자로 살기'이다. 저 바닥의 껌은 다 무언가? 그게 어디와 연결되어 있나? 여자는 왜 말을 하지 않는가? 그녀의 입은 왜 그렇게 작은가?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여자'의 서사를 불러내고 싶었다. '욕심'이라고 말해도 좋다. 더 내고 싶으니까. 나는 유계영의 시집을 이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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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zygy 문학과지성 시인선 446
신해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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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 슨 이야기에 소리를 불어넣고

뜻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녹취록부분

 

 

 

 

기다림의 오류를 바로잡고

이제 '기다리는'

 

무능하게도 기다림은 기다리는 '행동'을 하는 ''만을 동그랗게 놓는다. 나의 기다림이 그 장소에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기 때문이다. 그녀와 약속한다고 해서 기다림이 그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건 그녀의 기다림이 할 일이다. 기다림은 마치 약속 모두를 움직이는 힘이 있는 것 같지만, 이건 나의 기다림과 다른 이의 기다림을 같은 것으로 놓는 오류다. 그러므로 기다린다는 행위는 상대가 아니라 ''를 약속한다.

 

이 시집에서 화자는 기다리고 있다. 흔히 기다리는 '대상'을 기다림의 최후에 놓고 말하지만, 화자는 기다리는 '대상'에 대해 쓰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는 것은 대상의 높고도 중요한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이 기다림이라는 사건에서 만날 나의 어떤 순간을 비로소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 지도 모르고 기다리는 중에 탄생한 말들, 화자의 이지러짐을 따라가야 한다.

 

syzygy, 인간에게 없던 말을 인간의 세계로 가져오다

 

제목부터 보자. 'syzygy'라는 단어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있다. 해와 달과 지구가 일직선에 있는 순간이라는 뜻을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상상할 수 있을까. 이들이 한 날 한 시 일직선상에 만나자고 약속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순간은 저마다의 지금을 오랫동안 움직여 이뤄낸 결과다. 그런데 해의 뒤에 달이, 달의 뒤에 놓인 지구를 따라가다보면 이 만남의 끝에는 지구에서 아주 작은 그림자로 하늘을 올려다 본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얼굴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그 얼굴은 달과 지구와 태양의 움직임을 알았을 이다. 그리고 그걸 알았기 때문에 외로웠을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저지라는 때가 언젠가가 오리라는 것을 알았을 인간이기 때문이다. 'syzygy'를 탄생시킨 것은, 지구 밖의 움직임을 알리고 받아들이게 한 외로운 인간들이 만든 신화의 조각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syzygy'는 무엇일까. 오도커니 앉아서 테이블의 모서리를 만진다. 실물을 만지고 있는 사이, 테이블은 투명해지고 ''는 생각에 잠긴다. 실제의 자리가 생각의 모서리로 바뀌고 ''는 이 가까운 거리를 두고도 혼자있는 순간을 만들어 들어간다. '내가 만지작거린 건 생각의 모서리였을까./ 미물의 더듬이였을까.// 아니면 그저 이불 바깥으로 삐져나온 나의 발을/ 가만히 잡고 있었던 것일까.' 터치부분. 이렇게 ''가 다른 장소로 떠나는 건 그 장소가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안이 이빨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입안이 이빨로 가득해서

나는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없구나.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배가 고파질 텐데.

우유가 마시고 싶어질 텐데.

 

뮤트부분

 

''가 기다리는 세계는 시저지와 같아서

 

<뮤트>는 시끄러운 소리를 죽일 때 나온다. 그렇다면 그 소리는 왜 시끄러울까. 주변의 소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주변의 소리에 비해 시끄럽다는 말이지, 뮤트 된 소리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라고 할수 는 없다. 뮤트와 뮤트 아닌 음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는 입안이 이빨로 가득할 만큼 독기가 어려있는 말을 하고 싶지만 그 독기는 이 장소에서 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아주 이상한 분갈이를 보여준다. '영양사의 하얀 가운을 빌려 입고/ 하필 나는/ 뿌리가 살아 있는 머리카락을 화분에 심었다.// 거름도 주었다.'분갈이부분. ''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식물의 자리로 옮겨가고 싶다. 탁자의 모서리를 두드려 생각의 모서리로 이동한다. ''는 뮤트되지 않는 말과, 식물의 몸이 아니어도 되는 얼굴을 갖고 싶다. 화자는 그것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마치 시저지와도 같아서, 마치 지구의 바깥에 존재하는 곳인 것 같아서 고작 이만한 그림자를 안고 있는 ''의 힘으로는 가져올 수 없는 일 같다.

 

이곳을 만든 가장 오래된 신화를 부수고

 

그날의 도래를 화자는 어떻게 기다릴까. 우선 이곳을 만든 시간을 부순다. 제일 오래된 신화 하나를 망가트린다. 사악학 뱀이 이브와 아담을 부끄러움에 눈 뜨게 했다는, 이 세상을 지배하는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쓴다. 뱀이 말한다. '아담의 갈비뼈를 모두 부러뜨려 종이봉투에 담'는다. 뱀은 '기합을 불어넣고', '심호흡'을 한다. '태권도 같은 것'을 한다. '-나라면 오래오래 기다릴 수 있었을 거야.' 뱀이 말한다. 뱀이 기다릴 수 있다고 한 건 무엇이었을까. 갈비뼈가 모두 부러진 아담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담이 없는 세상에 이브는 어떻게 있었을까. 이브로 말미암아 아담이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 시의 제목은 로맨스이다.

 

''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그러나 시저지의 전말은 무엇보다 이 시에 있다. '기다림'을 설명하기에 이만한 문장은 없을 것이다. '마음이 탄다. 그러나 나의 맥박이/ 너의 심장에 맞춰 빨라질 수는 없다.// 면목이 없다. 그러나 너의 얼굴 위에/나의 이목구비를 그려 넣을 수는 없다.//우리는 성분이 다르니까//멋대로 바꿔치기를 할 수 없으니까//' exchange부분. 기다림 끝에 우리가 만나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보다 더 나은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네가 가려지고, 동시에 내가 너에게 가려지는 부분의 어둠을, 이제껏 보지 못한 색의 깊이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 곳의 역사는 이 말의 뜻을 모른다. 다음 시에서는 이 역사를 아는 화자가 대답한다. '알아? 나는 여자인간이니까/ 생리를 한다.// 그렇지만 손에는/ 다른 종/다른 류의 피가 묻어 있기도 한다.' 여자인간부분. ''는 기다린다. 아담과 이브의 신화를 다시 쓰고, 생리를 하는 여자인간에 대해서 쓰고, 이 공기에 제대로 있을 수 없는 인간을 그리면서, 태양과, 달과, 지구가 한 선에 서 있는 날을 기다린다. 태양에 달이 귀속되지 않고, 태양에 지구가 매달리지 않고, 태양은 이들을 거느리지 않고, 셋은 이 지구에서 저마다의 질량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무엇으로 바꿔지거나 속해질 수 없는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린다.

 

마지막으로 이 시집을 덮기 위해서는 개의 자리를 지나가야 한다.

 

검은 개가 똥을 먹었다.

 

검은 개의 혓바닥이 나의 영혼을 핥았다.

 

검은 개의 눈이 나를 피했다.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어서

 

나는 슬프고 더러웠다.

 

추문이 깊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닌 비밀을

개와 나눌 수는 없었다.

 

개의 자리전문

 

 

눈을 가리고 만든 물건들 속에는

내 손이 섞여 있을거야

 

개의 눈을 생각한다. 존재의 다름으로 생겨나는 수치를 내가 가진 힘으로, 그래서 '억압'의 도구로 두지 않는 것이 '''개의 자리'를 지켜줄 수 있는 작은 방법임을 슬프게 고백한다. 개가 될수는 없다. 오해하지 말기를. 당신에게 개가 되라는 말은 아니었다. 개의 눈을 슬프게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 이 시에서 다 나가기 위해 다른 시를 불러 온다. '그러니 내 옆의 의자에 앉아/ 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으면 좋겠다.// 밤을 새워주었으면 좋겠다.// 눈을 가리고 만든 물건들 속에는// 내 손이 섞여 있을거야.// 눈을 가리고 그린 그림 속에서/ 나는 너를 더듬고 있을 거야. ' 이렇게 앉은 자세부분.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위해서 ''는 너무 많은 일을 했다. '베껴 슨 이야기에 소리를 불어넣고/ 뜻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녹취록부분. 남은 일은 이제 이것 뿐인 것 같다. 기다림의 자리에 수많은 ''가 남아서 만드는 날들을 '기다린다'. 시저지를 발견했던 사람의 얼굴을 내가 만날 수는 없지만, 그 얼굴이 되어볼 수는 있을테다. 또 하나의 'syzygy'가 탄생하게 되면 서로 이름 몰랐던 얼굴들이 자신으로 모여 ''를 이야기 하게 된다. 어떤 말도 뮤트되지 않는 진짜 '소리'를 들을 것이다. 내가 아직 지구에서 작게 서 있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림은 기다리는 '행동'을 하는 ''만은 동그랗게 그곳에 분명히 놓을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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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11-1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 님의 시 읽기를 늘상 기대하는 1인입니다.

syo 2017-11-12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인입니다.
 
검은색 문학과지성 시인선 473
송재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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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애하는 것을 거리두는 일에 대해




무엇이 되기 전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음가'로 수 놓는 시가 있다. 때문에 의미가 나중에야 오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사방에서 보고 되뇌인 후에야 쓰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끼는 것을 대할 때 간신히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안감힘이 있는지. 다행히 둘 수 있는 그 짧은 곳을 '거리'라고 하자. '거리' 두고 싶은 시. 이 의미를 안다는 듯 저자는 초엽에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를 놓았다. 햇빛을 길게 읽는다. 그것이 어딘가를 통과하는 '긴 장소'는 어떤 것일까.  



햇빛의 혼잣말을 알아듣는다

불투명한 분홍 창이

내 손 일부이기 때문이다

(중략)

이토록 섬세한 공소(空所)의 햇빛이 키우고,

분홍 스테인드글라스가 가꾸는,

인동초 지문이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햇빛은 어딘가 통과하는 게 아름답다」 부분.


햇빛이 창에 내리고, 창을 짚는 손가락이 있고, 창 밖에는 창을 올라타는 인동초가있다. 겨울일 것이다. 그러므로 햇빛 아스라한 정도도 알겠다. 바깥의 인동초와 안쪽의 손가락은 지문으로 만난다. '손가락뼈의 고딕을 따라간다' 부분에서는 숨을 죽이게 된다. 창을 스미는 손가락과 인동초는, 어떤 애니메이션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로 화해 아주 오래된 건물 한 채를 올릴 것 같기 때문이다. 햇빛이 어딘가 통과하는 것은 통과가 떠올리는 '장소'뿐만이 아니라 예사 시간을 포함해 '역사'에 이른다. 송재학이 천작하는 '예스러움'의 기미가 바로 이거다. 고어와 고문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들어 스스로 발화하는 문장의 유별함. 한 번에 읽어내릴 수 없는 특유의 호흡이 여기서 온다. 해서 이 시는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수평선의 직선은 표정이 좋다 곧장 아침에 일어나

서 지평선 시렁 위에 이불을 반듯이 개어 쌍희[囍]

자가 보이도록 올렸더니 구름처럼 가볍다 그렇다면

수평선 위에 다락의 속셈도 있겠구나 지난여름에 보

아둔 물웅덩이를 그곳에 옮겼다 어김없이 점심 무렵

여우비가 흩날렸다 수평선의 직선이 구불구불해졌

다 수평선 위로 속이 훤히 보이는 남해의 기차가 오

래 정차해서 눈이 부셨다 수평선이 멀어 이별의 모

서리는 생략되었지만 직선이 파르르 떨린다 일몰이

번지기까지 직선은 짐짓 침묵이다


「수평선이라는 직선」 부분.


유쾌한 것은 예스러움의 정서에 천진한 발상이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이다. 전작을 불러보자. '너가 인편으로 부친 보자기에는 늪의 동쪽만 챙긴 것이 아니다 새털 매듭을 풀자 물 위에 누웠던 항천 하늘도 한 웅큼, ' 늪의 내간체를 얻다 부분. (언니가 여동생에게 보내는 내간체의 느낌을 살린 시에서 시인은, 아니 화자는 완전히 '언니'에 이른다)보자기에 '늪의 동쪽'을 챙겼다거나 새털 매듭을 풀자 '하늘이 한 웅큼' 나왔다는 천진한 부분은 딱딱한 문체와 극으로 어울린다. 지난여름에 보아둔 '물웅덩이'를 그곳에 '옮겼다'는 구절에는 '~은 ~다'는 단순한 구조에서 생동감이 더한다.


비를 피하려고 우산을 만들었다고, 아니 비를 응

시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한 산족(傘族)도 있었다 고

대 언어 우산은 얼굴의 물기만 슬쩍 가린 셈이다 언

필칭 비와 눈[目]의 고독한 간격을 위해 우산이 필

요했다 물기 머금은 눈동자의 다른 이름인 우산이라

는 여린 글자는 비가 숭숭 새기도 하거니와 경사면

을 집적거리는 빗물을 어쩌지 못한다 아랫도리가 심

하게 젖어버리는 우산은 그야말로 나긋나긋한 물건

이다 왜 비에는 응시가 필요했을까 빗방울을 통해

거미줄을 알게 되었다는 우연도 있지만 대체로 비

에 젖은 것은 번지니까 비의 화석은 먼 우레의 핏방

울처럼 남겨져서 석기시대의 사료(史料)를 대신했다

비의 빗장을 뽑은 후 우산 그늘이 생겼다는 반성처

럼 오늘 비를 대신해서 '우산'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우산에게 들킨 비, 비에 들킨 우산의 말들은 교감 중

이다


「우산」 전문.


손잡이가 있고, 팡 하고 펼쳐지는 우산보다 더 현물일 수 없는 '우산'이 여기 있다. 이 시는 우산의 탄생같다. 나중에 비를 좀 맞게 되더라도 글자가 더 실체가 되는 순간을 믿어야겠다. 비로부터 시작된 물건이었을 우산에 대한 탐사는 '비를 응시하기 위해' 우산이 필요했으리라는 '우'산족의 이야기를 전하며 시작한다. '눈[目]의 고독한 간격을 위해 우산이 필요했다'는, 글자의 뜻을 만든 마음을 올리고 글자의 생김에 침전한 부분은 우산의 어디를 이루는 것일까. 메기고 받는 문장에서 의외로 빛나는 부분은 또 이런 것이다. '대체로 비에 젖은 것은 번지니까' 욕심 없이 평범하게 풀어버리는 순간. 제 힘으로 얼레를 푸는 연처럼, 시는 멀리 날아간다. 


시인은 시간의 눈금을 세기 위해 '석기시대', '구석기'등의 실제 사용되는 연표를 사용한다. 긴 시간을 더듬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얄지만, 셈했던 그 시기가 '진짜'인듯 매기는 부분에서 슬몃 웃음이 가는 것도 사실. 어울리지 않는 단어로 애써 조상한 마음을 더 읽는다. '비'와 '응시' 그리고 '우산'으로 이어지는 회로에서 마지막은 약간 아쉽다. 송재학의 시 대부분에서 오는 감정이다. 아쉬운 마무리. 어쩌면 아름다움이 의미 그 자체인 지경에서 더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은 무의미가 되기 때문일지도.


그런가 하면 이렇게 긴 문장에서도 엉키지 않고 '결빙음'이 '청유형 거울'을 끌어오는 힘이란 여간하지 않다. '결빙음은 자문자답, 얼음덩어리 저수지를 통째로 끄/ 집어내어 읽으시라는, 꽝꽝 얼어붙은 갑오년 달성판/ 방각본을 삼동 내내 읽으시라는 청유형 거울이다' 겨울 저수지가 얼면서 울부짖는 소리는 군담소설과 다를 바 없다」부분.


『검은색』은 다른 색을 흡수하고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림자, 다른 것을 통과하고도 남는 색이다. 제목을 이리 단 것은 자신을 어쩌지 말아달라는 SOS요청인가. 검은색을 대하는 마음으로 거리를 지키며 더욱 읽는 대는 것이 이 제목에 대한 대답이 될 것 같다. 물러서고 싶은 한 걸음의 거리에는 '빙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지나간 옛 정서를 살려내는 말씨가 있고, 이 시집에서만 생생해 대하기 어려운 살아있으며-동시에 죽은 기이가 있다. 등등을 찾아내지 못한 아쉬운 글은 저수지를 싣고 가는 밤의 트럭」으로 닫는다. '5톤 트럭에 세상의 짐을 다 싣고도 여유롭다고 생각한 건 저녁 식사 때의 반주 탓이겠지'로 입을 떼는 어쩌면 비극의 순간, 혹은 꿈이라고 믿고 싶은 위험한 운행이다. 송재학은 그저 저수지를 지나가는 트럭의 풍경에서도 '생명의 서사'를 발견한다. '틀림없이 모서리가 약간 젖었을 짐 속의 모든 생명도 속도에 의해 순해진다/ 별빛을 기준으로 어딘가 멀어진다는 것의 순수,/ 새벽이면 가장 밝은 별 아래쪽에 저수지의 날것들을 부릴 예정이다' 저수지를 싣고 가는 밤의 트럭」부분. 







아침도 겨울이라 작년에 썼던 리뷰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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