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기 활동 마감 페이퍼를 작성해주세요!



1. 14기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소년이 온다>, <무의미의 축체> 

리뷰를 이렇게 못 쓸줄 몰랐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읽기와 쓰기가 즐거웠고,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잘 읽힙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본 느낌. 

<느리게 배우는 사람>은 흥미로웠지만 보다 더 정갈한 다음 작품을 보고 싶었습니다. 

<자유로운 삶>은 무척이나 무미건조한 소설입니다.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가지 써는 것"

<소년이 온다>는 가장 여러 번 읽었습니다.

<미국의 목가>는 읽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웠습니다. 아주 불편했던 책입니다. 

<기 드 모파상>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인데, 그 매력의 반에 반도 쓰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투명인간>은 읽을 거리가 무척 많은 소설입니다. 어렵지도 않고요. 뒤가 좀 허술하지만 그것도 매력같아요. 

<무의미의 축제>는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은 단편으로도 좋지만 전작을 더 그립게 하는 힘이 있었고 

<제르미날>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고래를 정말로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 14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소년이 온다>,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제르미날>입니다.



3.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REBBP 2014-10-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은 평이 좋네요. <무의미의 축제>를 가장 좋은 책으로 꼽으셨는데.. 할말이 없다는 면에서는 격하게 공감해요 ㅎㅎ

봄밤 2014-10-15 14:48   좋아요 0 | URL
으앗!!! 가장 ˝기억˝에 남는 책입니다. 그 책은 정말이지 할말이 없어요. 아 ㅋㅋㅋ

알라딘신간평가단 2014-10-2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봄밤은 제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단어라 봄밤님이 괜히 더 좋은!)
좋은 활동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래는 읽으셨나요? 정말 재밌는 책인데, 꼭 읽어보세요!! :)

봄밤 2014-10-31 00:37   좋아요 0 | URL
더 미룰 수가 없군요. 고래를 읽어야겠습니다! 정말로. 신간평가단 님(ㅠㅠ)의 추천까지 받았으니, 꼭 읽어볼랍니다! 14기,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10-31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 추천합니다.
 

 

 

 

 

 

 








벽 위의 국화 그림자

 

 

국화가 다른 꽃들보다 뛰어난 점이 네 가지 있다.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아름답지만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지만 차갑지 않은 것, 이 넷이다.

 

국화를 사랑하기로 세상에 이름이 났거나 국화의 멋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그 사랑하는 점이 이 네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네 가지 외에 벽에 비친 국화 그림자를 특별히 좋아한다. 밤마다 국화 그림자를 보려고 벽을 치우고 등촉(燈燭)을 켜고 고요히 그 앞에 앉아 스스로 즐겼다.

 

하루는 윤이서*에게 가서 말했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자면서 함께 국화를 구경합시다."

이서가 말했다.

"국화가 아무리 아름답지만 어떻게 밤에 구경할 수 있겠나?"

그러면서 몸이 좋지 않다고 사양하므로, 내가 말했다.

"한 번만 구경해 보십시오."

그러고는 굳이 청하여 함께 집으로 왔다.

 

저녁이 되자, 일부러 동자에게 국화분 하나 앞에 등촉을 가까이 갖다 대고 있게 한 다음, 이서를 이끌고 가 보여 주면서 말했다.

 

"기이하지 않습니까?"

이서가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자네 말이 이상하이. 나는 기이한 줄 모르겠네."

그래서 나도 그러시냐고 하였다.

 

조금 뒤에 다시 동자에게 제대로 한번 해 보게 했다. 옷걸이와 책상같이 어수선하고 들쭉날쭉한 물건들을 치우고, 국화의 위치를 벽에서 약간 떨어지게 정한 다음, 적당한 곳에다 등촉을 둔 뒤, 불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기이한 무늬, 이채로운 형상이 홀연 벽에 가득했다.

 

108

 

 

(중략)

 

국화 그림자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즐기는 다산. 33세 때의 글이다.

 

*윤이서_고산 윤선도의 직계 후손이며 윤두서의 증손으로 다산의 외육촌이다. 다산보다 열 살이 많았으나 매우 친분이 두터웠다.

 

정약용 산문 선집, 박혜숙 편역,다산의 마음, 돌베개. 2008. 6.

 

  












 

 

와유(臥遊)



안현미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

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

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

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에 취하리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 창비, 2009. 9.

 

 



 

다산의 서른 셋. 이마 반듯하고 환한 얼굴로 밤중에 국화를 보자며 형을 이끈다. 그 당기는 팔이며, 벽에 국화 그림자와 함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며, 그 밤 고요했을 불빛이며. 풀벌레 소리여. 흔들림 없는 밤이다. 그 밑에 <와유>라는 시를 문간방에 놓으면 다산이 보시고 좋다. 하셨을 것이다. 이것 좀 보라, 도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 다산의 집 담에 기대고 있으면 홀로 켜진 방안에 그와 윤이서와 벽에 그려진 국화 그림자의 탄성이 말 없이 들릴 것인데. 바다의 바깥으로 밀려가는 물의 움직임처럼 나는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 가을, 옛 글을 앞에 두고 국화 없이 취한다.

 

 

 

국화, 깨끗하지만 차갑지는 않은 것. 목이 가는 국화가 놓이는 모양을 생각하다가 저 멀리 떠내려가 이제는 무엇으로도 잊는지 알 수 없는 사월을 시월에 놓는 일이 있다. 국화나 가을이나 그런 것이 다 무엇일까. 시간 앞에 취할 수 없는 이들이 모여 있다. 그 광장.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곳이 마치 훌쩍 들려 물러났다는 듯이, 작고, 조용하고, 멀다. '그 까닭을 생각한다'. 라고 쓰는 자판의 두드림에 스탠드에 걸린 노란 리본이 가늘게 흔들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4-10-07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밤님, 이 글을 읽으니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술에 취한 것 같습니다.
맑은 술에 국화 한 잎 떨어뜨려 천천히 마시다, 그렇게 취해버린 것 같아요.

봄밤 2014-10-07 12:43   좋아요 0 | URL
진동하나요, 국화가 가을에 피는 탓입니다. 헤헷. 다락방님 취하신 기분으로 조금 더 기분 좋은 하루시기를 바라요. 가을이 이만큼 더 있어도 좋겠어요.
 


















나는 나기철의 시작 태도에서 일종의 문학적 금욕주의랄까요, 염결성과 청빈 등의 고전적 덕목을 떠올리게 하는 시적 태도를 봅니다. 이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상념이든 시적 대상을 대함에 있어 정중함이나 조심스러움을 잃지 않고자 하는 태도로 나타나지요. 또 시어나 표현에 있어서도, 쓰는 사람의 욕구 위주로 일방적으로 언어를 '사

용'하려 하지 않지요. 이런 조심스러움은 얼마간 소극적이거나 소승적인 감각이기 쉬워서 현실의 격동을 시의 문면(文面)에서 실답게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삶과 언어를 대하는 이러한 마음가짐과 품위는 매우 귀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김사인,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대담 중에서. 창작과 비평 2014 여름호.





 그냥 지문 같은 거라고. 인주 붉게 눌러졌으므로 그 결이 나타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노릇이라고. 그래서 느린 산같은 결에는 같이 눕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게 글이 좋다는 게 아닐까. 숙명처럼 말의 부름을 받는 이들의 대관절,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을 읽는 태도는 무엇인가. 여름끝에 받아온 이 차가 영영 식지 않기를. 손을 공손히 앞에 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릅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요. 아름답게요. 바로 당신 입으로, 완벽한, 그리고 전혀 쓸모없는 공연...... 이유도 모른 채 까르르 웃는 아이들..... 아름답지 않나요 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p. 147




리뷰 못 쓰는 이야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은 그것을 독서라고 불러도 될까 싶을 정도로 몸과 마음을 꺼내 놓아야 했던 '일'이었다. 이상한 체험이었다. 이것을 쓴 사람의 기운을 생각하고 읽는 것만으로도 깔아졌던 '나'까지 생각하는 일은 쉬웠으나. 이때를 지나온 사람들과, 그때 있었으나 이곳으로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 역시 사람. 임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거대한 마음에 대하여. 악다구니. 내 손으로 활자를 만들어 소화시킬 여력이 없었음을 고백한다. 읽느라고 모두 소진된 마음은 그것에 대해 한 바닥 써야 할 이유도 알기 어려웠다. 나를 통과해서 다른 색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느니만도 못한 것이 될 염려가 아주 컸던 책이었다. 한 달 동안 세 번 읽었으나 세 번 모두 책을 읽는 것으로 그냥 끝났다. '그냥'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만 역시 마땅히 설명을 붙이기 어렵다. 이 마음에 듦을 나중에 자세히 설명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리뷰 못 쓰는 이야기 2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역시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좀 더 리뷰를 쓸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으로 기운다. 독서 외에는 이 글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내게 없고, <소년이 온다>와는 다른 이유에서 "리뷰를 쓰고 싶지 않음" 거부, 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소년이 온다>를 이해하기 위해 내 몸을 나 이상으로 부풀려서 읽었던 것에 비해 이 책에게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 보통의 나보다 아주 협소한 부분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배꼽'이란 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웃지 않은 것임을 생각하면 나의 움직이려 하지 않음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는 있을 것이다. 책에 대해 다르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마음 너머로 이해할 수 있고, 하려는 이가 있고 책이 읽으라고, 친절하게 써 내려간 제목조차도 이해하기 어렵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다. 아둔을 고백하고 싶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에 대해서는 후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뻣뻣하게도 다시 공들여 읽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서툴게나마 확신하는 것은, 쿤데라는 자신의 짧은 글을 어려운 행간에 버려 둠으로 인해 이해 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는 책 이상의 독서를 선사하려던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뿐이다. 두 번 읽었고 두 번 그리워졌다. 폭 좁은 행간을 만들어 주느라 많은 말을 쏟았던 그와 두꺼운 독서에서 마음 충분히 흔들렸었던 날들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오랜만에 기억했다.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고 한다. 내게는 몇 개의 밤이 더 필요합니까. 




*김경주,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허기를 견뎠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빵 봉지는 안이 투명했다구겨진 포장에 빛이 잘 들어왔고 작게 쓰인 글씨가 흔들렸다입가에 묻은 우유속이 빈 것들을 앞에 두고 말이 없었다참이 끝나가는 오후골판지 위에 드러누운 황갈색 작업복은 몸을 하나 둘 일으키기 시작했다. “백주대낮에는하느님이 정하신 일만 일어나므로” 교실에서부분현장은 다시 흙먼지와 날것의 온도로 뒤섞였다. 천안 아산역에는 하루 열 세대의 기차가 지났다.


어떤 구절은 어느 날의 신문기사처럼 간결하게 '그날'이었다현장은 도로가 잘 보였다. “앰뷸런스와 소방차로 거리는 활기차다열차는 수백 명을 태운 채강물로 뛰어들 뻔했다” 그것은 아주 흔한 소리여서 어쩌면 도로의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문장으로 시마이 할 때까지 다시 부푼, 빵 봉지만큼의 허기를 대신해 견뎠다고 할 수 없겠으나. 그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은 가질 수 있었다. 컨테이너 숙소 이불에 피곤을 뉘이고 무엇을’ 알기 위해 시집을 피곤했다그러나 우리는 책을 덮고 창가로 가서 밖을 바라본다” 로 시작하는 시시가 책을 덮으라고 하는 것인가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 며칠 밤을 졸았었나. “하루종일 침묵한 일을 위해우리는 서로에게강철로 된 드롭프스를 넣어준다” '달콤한 사탕'이 아니라, '강철로 된 드롭프스*'라고 쓴 '폭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그런 날들에 기대 읽기 시작했다.


그 저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잠이 들 수 있겠니

진은영은 서른 살에 등단했다그리고 3년 후첫 시집을 냈다이 시퍼런 시집을 보면서 벽과 머리의 관계를 생각한다물렁한 살로만 지탱된 생이 없듯이 내게도어떤 굳건함이 있을거라 믿었던 것은 모두 착각인 듯 싶어서시는 너에겐 어떤 방패도 없다는 듯 작정하고 들어왔다가령 이런 물음들. "자 그러니 말해봐 너에게 저녁은 어떻게 오지고요한 저녁의 시부분그 저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잠이 들 수 있겠니찧지 않고서 견딜 수 있겠니그러니 벽과 머리의 관계를 생각하고비로소 머리의 쓸모를 생각한 것이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부분.


모름지기 시인의 포부란 고작 일곱 개의 단어로 사전을 만들고 고작 몇 마디의 말로 거대한 이름을 설명하려 드는 것세상에 사전만큼 무모한 노력도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그러나 어떤 사전보다 깊은 갈래를 냈으니이 두 쪽 짜리 사전에 금방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슬픔이라는 말에서 물에 불은 나무토막을 부르는 걸 보자처참함나무는 쓸모를 잊어버리고 물속에서 헤풀헤풀 풀어질 것이다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그것도 모자라 그 위로 ’ 비가 내린다참혹함몇 마디 하지 않았으나 그 몇 마디조차 막아버리고 싶은 구절이다잊지 말아야 할 것은 '슬픔다음으로 오는 단어가 자본주의라는 점인데오늘이 외면하는 '오늘'을 시가 바로 보겠다는 선언 아닌가시가저 나약한 가지가,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긴 손가락의 부분이라며 머리가 아니라 ''으로 온다.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시는 주소가 없다당신의 기억이 그렇듯 장소보다 시간에 기대 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보았다는 회상의 흔적은 그의 영혼 속에 있고그의 지적 활동의 발현이 작용한다는 것은 그의 행동에서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 앞을 보태줄 수 있을지.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부분이처럼 있다는 곳에서 살지 못하는 것이 또 하나 있어서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름 '가족'이다누구나 긴 말 하나씩 품는 단어시인도 한 마디 했다긴 말 할 것 없다는 듯 간단히.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 다 죽었다” 가족」 전문이렇게 쉬운 비유가 이때까지 어디에 있었나밖에서 빛나는 것이 어째서 한 집에 들어가면 서로를 쏘아보는 날이 되어야 했나이 짧은 시를 쉽게 넘길 수는 없다. 

 

너는그곳에 살지 않는다.

센 언어는 기세가 꺾이지 않고 1,2장 내내 읽는 이에게 처들어 온다가족에서의 충격은 청춘에서 다다르는데, 청춘」은 연작이다아마도 더용서 할 수 없었던 모양인가익지 않아 무서운 말들에 흠씬 두들겨맞는다서른 세살에 나온 시집이므로서른 세살 이후에 쓰인 단어는 이곳에 하나도 없다분명하게 금 그어진 서른 셋 이전의 날들은 독자와쓰는 이를 따라 무섭도록 쪼아댄다.

 


청춘 2


맞아 죽고 싶습니다

푸른 사과 더미에

깔려 죽고 싶습니다


붉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

떨어집니다

가을날의 중심으로


누군가 너무 일찍 나무를 흔들어놓은 것입니다


「청춘 2」 전문.

 

어질한 뒷목을 쓸어 정신을 차리면 다른 시. 이제는 더 정확히 '서른 살'이라고 겨눈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뜻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죽을 때까지 기억난다서른 살부분서른 살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당신이 생각해야 하는 거고내가 알려 줄 수 있는 말은 다만 이것 뿐이다.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죽을 때까지 기억난다스무살의 끝에 몰린 이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하나도 없다. 시인이 말하는 방식이 이렇다이런 일갈이 어디 청춘에게만 한정돼 있으랴뒤를 넘기면 "유신론자는 매일 확인한다어디에나 똑같이 찍힌 신의 엄지손가락 지문을무신론자」부분. 보우하사유약한 나를 또 꾸짖고 뱉고 달린다. 시인은 달려서 마침내 이 세상에 없던 포도송이를 하나를 그리는데. 이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이『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 시집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첨탑 끝에 매달린 포도송이"일 것이다. 처참하게도 무용한 시가 폭력에 부딪힌다. 일어났던 폭력과 그것을 침묵했던 폭력, 모두에게 말이다.

 

 ...

 첨탑 끝에 매달린 포도송이

 네가 흘린 눈물은 다 어디로 갈까

 네가 떨어뜨린 물방울은 다 포도송이가 되었다

 건물들 사이로 솟은 첨탑 꼭대기에

 매달린 포도송이

 누구의 그늘이 될 수 없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입을 축일 수도 없다

 열매가 투명해서 아무도 따먹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쓴다

 너에게 수천 개의 물방울이 모여든 이유를

 

 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사람들이 학살되었다 이곳에서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노동자들이 분신했다 이곳에서

 스무 살이 된 이후로도 다른 스무 살들이 어디론가 끌

려갔다 이곳에서

 빈방의 아이들은 불타 죽고 이곳에서

 철거촌 사람들은 깡패에게 맞아 죽고 이곳에서

 라고 나는 쓴다 이곳은 조용하다

 라고 쓰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않겠다

 라고 쓴다 보랏빛 젖은 안개로 쓴다

  

 네 투명한 포도알 위에

 스무 살 메마른 입술 위에

 

첨탑 끝에 매달린 포도송이부분.


''는 누구인가너는 스무 해 첨탑 꼭대기 매달린 포도송이이고포도송이가 떨어뜨린 물방울이다스무 살 메마른 입술을 가진이다그래서 너는 스무 해 동안 일어났던 이 땅을 모두 알고 있거나전혀 알지 못한채로 그 땅을 걷는이다너는 누구인가그러나 너는 누구인지가 중요한가중요한 것은 시인이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잊지 않겠다며 투명할 포도알과스무 살 메마른 입술 위에 이 일들을 '쓰는 행위'나는 포도를 알고 있다포도는 작고물이 많고입에 쏙 들어간다그러나 이것은 열매가 투명하다포도라고 할 수 있을까까맣게 가지에 차 오르는 풍성한 부풀음이 아닌 것을 말이다열매가 투명한 포도는 원래 알알이 있다고 믿어졌던 것이나 점차 흐려졌다. 학살과 노동자들의 분신과 다른 스무 살이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보지 못하면서, 그 모든 일이 있었던 이곳을 조용하게 만들면서. 이 투명한 포도는 언제 과육과 검은 껍질을 갖게 될 것인스무 살이 되어 그곳을 걷는 '그'가 마침내 한 개의 '몸'을 채워가고 있을것인가절망에 몰린 희망을 시인은 "보랏빛 젖은 안개로"쓴다. 그것 참 지워지기 쉬워라처음으로 돌아가시는 책을 덮으라고 했다. "교실 밖에서"일어나는 삶을 보라고 했다. 배움에 뜻이 있다면 "하루종일 침묵"하느라 "메마른 입술"에 "보랏빛 안개"로 이곳의 일을 말하는 것이다보랏빛 안개가 내 입술 위에도 내렸을 일을 생각한다. 조용히, 입을 벌려 따라 읽는다.***

 

 

 

 *사탕

**프란시스 위스타슈, 이효숙,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알마. 26p

원문 : "그 사람을 보았다는 회사의 흔적이 그의 영혼 속에 있고, 그의 지적 활동의 발현에 이런저런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그의 행동방식 속에서 알아볼 수 있다."


***따라 읽는 글 

진은영,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 계간 문학동네 2014 가을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