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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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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프레임의 책상은 산 지 오년 쯤 되었다. 오른쪽에 책장이 역시 철제로 가늘다. 시원하게 트이면서도 책을 넉넉히 수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는 당시 막혀 있는 것에 대단한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산 책장과 책상은 모두 뒤가 오픈되어 있다. 철제 프레임으로 폭을 만들고 책을 올릴 수 있는 상판만을 갖춘 구조다. 흔히 떠올리는 책장처럼 뒤가 막혀 있는 구조는 내겐 불안하다. 뒤편의 보이지 않는 무엇을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하찮치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세계라서 괴롭다. 보지 못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주 피곤한 일이었다. 아주 좁은 틈에 빛이라고는 들지 않는 뒤편을 거느리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불안은 이정도다. 불안이 없는게 아니다. 그것을 다 쓸 수 없을 뿐이다. 불안이 없는 내가 나일 수 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불안은 중요하지만 불안을 말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창피하며 부끄럽다. (한숨) 그만하기로 하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정직한 제목의 책이 있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저자는 불안에 패대기쳐지거나 울고 싶었던 날을 유머러스하게 적어 '나 이러고 산다'며 보여준다. 2살때부터 불안과 함께한 이력이 여간하지 않다. 적당히 불안에 대해서 쓴 서술이 아니라서 허리를 꼿꼿히 펴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일대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붙들게 된다. 불안이 엄습했던 상황과 불안으로 나타난 심경과 신체의 변화를 상세히 적어서 자신을 관찰한 성실한 일지로 생각해도 좋다. 저자는 자신에게서 시작된 뜻모를 불안에 대한 물음에 꼬리를 이어 '불안'의 역사와 문화를 탐사하고 '불안'을 쓴 문학이나 '불안'을 생각하는 과학 저변을 돈다. 오백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되었다. 그 여정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이라는 부제가 얼마나 겸손한 말이었는지. 1부를 키르케고르와 프로이트의 '불안'에 대한 문장으로 '배치'하고 곧바로 자신의 결혼식에 불안으로 거의 죽을 뻔한 일을 상세히 적는다. 결혼식만 망쳤나, 자신의 생에서 셀 수도 없이 수치스럽고 겁났던 일과 많은 것들을 버리거나 망쳐왔는지 이야기한다. 이쯤되면 아, 위로할 말도 마땅찮다. 그가 이렇게 긴 책을 쓰는 '불안'에 대해 생각하면 '승리'라는 단어가 슬몃 생각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불안의 역사와 문화를 거슬러 살핀다. 경험이 아니라면 이런 쓰기는 가능치 않았을 텐데 어떤 연구를 소개하면서 그에 따른 자신의 증상을 함께 엮어 더 깊은 이해를 구한다.


종내에는 불안은 하나의 선물일 수도 있다(!)며 이야기 하는 저자의 글을 마지막으로 둔다. 인생을 못살게군 불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내리는 최대의 찬사일 것. 눈물겨운 불안에 대한 이해여.


적어도 내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동전의 뒷면일 것이다. 어쩌면, 부족하나마 나에게 어떤 도덕감이 있다면 그것이 불안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따금 걱정으로 나를 미칠 지경으로 몰고 가는 상상력이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나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비해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

421~422


불안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남의 불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면 안되지만)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저자의 따뜻한 인성이 자신의 삶을, 그리고 이 책을 집어든 불안에 고통받고 있을 사람을 시종 유머로 토닥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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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5 1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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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2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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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에 대해서 무얼 알겠느냐만
<의례와 놀이> <문학에서의 시간모델들>
<아름다운 것과 위험한 가상> 같은 소제목들은 참 
궁금한 챕터 아니겠습니까.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애처로운 얼굴이로군요.
'불안과 함께'
사는 것이 살아있는 모든 것의 공통 분모 아닐까요













9월 뿐만이겠습니까. 
9개월, 아니 9년을 두고도 읽을 수 있을 두께로군요.
사실 이 책이 신간도서로 선정될 일도 없거니와(라고 추측)
선정되도 이 책으로 하여금 무언갈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선정되지 않기를 바라며 추천하고 있는 이상한 마음입니다.












인간의 어떤 한 시기를 
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시선이 놀랍습니다.
동등한 한 표씩 다섯 권을 담은 것 같지만
실제로 세 표는 이 책의 지분입니다.














고종석과 언어는 이제 함께 연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네요. 불순한 언어가 아름답다니.

오늘 날씨 보셨어요?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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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비오는 날 종로에서 <논픽션 다이어리>를 봤다저녁은 없었고 약간 지쳐서 나왔다영화가 끝나고 고향 동생과 꽤 오래 전화 했던 기억이 있다종로의 낮은 지붕의 술집이 늘어선 거리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내내였다넥타이를 느슨하게 맨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그때 나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준비'라는 허울의 어떤 교육에 동원되었는데그 결과 그 시간을 조금도 지치지 않고 혐오할 수 있었다나는 내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몰랐으며-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도 알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조금 더 고백하자면 어떤 옷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해야겠다보도블럭의 구역 반쯤까지 플라스틱 의자를 드밀어 술을 먹는 이들 덕분에 종종 도로에 나와 걸어야 했다도로에는 차가 느리거나 없었다아스팔트에 저 멀리서부터 쬐는 노란색 조명은 어딘가 너무 촌스러웠고그럴 때마다 가게 유리문에는 어깨가 좁은 실루엣이 아주 잘 보였다.

 

그것을 보며 언젠가 등교길의 수고를 줄이기 위해 달리던 논두렁을 기억할 수 있었다교복 스커트짧은 숨을 몰아쉬며 차부에 도착했을 때 종아리마다 차갑게 묻어났던 아침 이슬에 양말 언저리가 동글동글 젖었던 느낌도 함께몇 개의 제자리 뜀으로 이슬을 털어냈던 순간도 지나갔다그때 나는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차부의 지져분한 유리 새로 나를 보았던 모양인데. 후에 그 유리간에는 내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그것은 내가 졸업 후 수년이 흘러 도서관 한쪽에 다른 이들의 원고지와 함께 쌓여 있었으며, 버리기 위해 종이류로 분류되던 중 동생이 내 것임을 알아보고 가져왔다. 원고지라는 고전적인 공간에 얼마간의 분량과 연필을 든 행위가 중요했던 고등학교 시절 흔한 과제였다. 

 

다시 스콜같은 비가 내리는 여기는 서울의 변두리. <논픽션 다이어리>의 내용을 적을 정도로 기억이 비상한 것이 아니지만 제목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날 마련됐었던 '감독과의 대화'를 적기 위해서다그는 '19세기의 인물이 20세기에 산다는 것'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고 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1990년대 일어났었던 충격적인 사건, 지존파 살인사건을 축으로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를 다큐 형식으로 연결한다. 다큐가 지존파 살인사건에 대해 짓는 의문은 이렇다. 범죄를 저질렀던 일부 인간의 악마적인 행위의 결과였는지? 1990년대라는 격변의 시간에 대한 논의 없이 충격적인 결과에 대해 몸서리 치는 것이 과연 맞는지? 누군가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19세기라는 시간이 있다. 헌데 저 멀리 변화의 축을 감지할 수 도 없이 다리가 지어지고 건물이 올라서는 변동과 당연하게 따라오는 부의 격차. 압구정동을 향하며, 악에라도 들려서 움직이고 싶었던 것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었던 세기의 차이를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영화에서 주요한 물음은 5명을 직접적으로 살인한 지존파의 빠른 사형과, 무수한 생명을 빼앗고 가족을 파탄시켰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처벌자 없었다는 점을 환기한다. 몰아가기 쉬운 증오와 수많은 고통에서 고통에 함몰할 뿐인 모습이다. 저이들의 얼굴은 이렇게나 잘 보이는데, 수많은 어깨를 걸치고 있을 재앙같은 사건에 가담했던 이들의 얼굴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영화는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의구하며 전개된다. 그러나 나는 벌써 어쩐지 19세기와 20세기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시간의 언급에 감동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새로운 문물의 태동은 극단적으로 절멸하고 시작하지 않는점이 떠올랐다. 대부분 앞 뒤로 꼬리가 어느정도 있으며 가운데 가장 두텁게 발달하는 형상. 이를 '전함형 그래프'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간 군상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두터운 공간, 중심세기에 사는 이들이 있고중심세기보다 앞서 무엇을 선도하거나 선도에 의해 괴리되는 집단이 있다그리고 저 끄트머리에는 그 반대 유형의 인물이 이름없이 살아갈 것이다. 19세기의 인물이 20세기에 살기 위해서






한 권의 책이 있다. <지배받는 지배자>라는 유려한 제목이었다논문을 거의 그대로 실어 유연한 제목이 주는 내용의 인상은 거의 받을 수 없었다교육이 계급을 만들고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권력화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으며어쩌면연구 결과 전에도 공공연히 알고 있던 사실을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책에서 오히려 실감났던 부분은 유학생활을 하며 느낌 어려움긍정적이었던 부분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유학이후 미국에 남거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인생의 비교를 인터뷰를 통해 실제적인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 유학을 하면서 완벽한 소통을 구축하지 못해 그들의 리그, 엘리트에서 제외되었던 이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계급의 정점에 가는 모순을 확인한다. 유학이 갖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인프라부터 학구열, 보장의 격차 등을 하루아침에 수정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이 책도 대안을 갖는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 유학에서 느끼거나 겪게 될 일을 미리 선행하는 인터뷰집실용서로 읽는 점에 대해서 희망은 유학을 준비중이 이들이 이런 내용을 숙지 후 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바꿔야겠다는 의지를 품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이 알 수 없는 지점을 시간이 흘러 확인케 된다면그것이 이 책이 가져갈 최대의 수확이 아닐런지.

 

책이 어떻게 읽히는지 책이 정할 수 있는 운명은 아니겠으나 이 책을 대하는 태도와 <논픽션 다이어리>를 마주하는 시선에는 동일한 부분이 흐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시간의 전함 가장 안전한 곳에서 타고 노는 것을 상상했던 십대가 있었다그러나 세기의 전함가늘어지고 끝내는 소멸될 끄트머리에서 언제나 부족한 시간을 터무니 없이 살아내고 있는 무명자가 바로 나임을 느낀다. 9호선을 탈 때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자리에서 무거운 다리, 내가 미쳐 몰랐을 죄를 생각한다. 그러나 서늘하면서도 청량하게 종아리를 흐르던 아침 이슬을 기억하는 고등학생때로부터 나의 몸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20세기도 아니고 그대로 적기에는 촌스러운 이십일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저 끝에서 이끌려지는 시간에 못견디는 19세기의 사람들이 말이다. 그것은 아주 가까운 얼굴로부터 시작한다한때는 글을 잘 썼으나 이제 글을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아주 슬픈 사건이 벌써 수년전의 일이다매일 일기를 쓰지만 그 내용이 한 줄이나 길어야 쉼표로 구분되는 분절을 넘지 못하는 이가 있다내가 가로질러 뛰어갔던 시퍼런 논두렁, 테두리를 이루는 다각의 균절에서 자신의 시절을 다 보내야 했던이의 이야기다어떤 감정이 개입할 대상이 아니며 아무도 모르게 잊혀질 페이지도 아니다눈물과 감동회한과 아픔으로 소비되는 것은 지친다. 그들의 말이 아주 작으며, 작게 위치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것을 읽는 위상이 제목보다 더 강렬한 부제<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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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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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시작한다태어나는 것문득 일곱 살이 되는 것낮은 계단에도 다리를 다치고 마는 것몇 번의 연애가 언제나 이별로 돌진 중인 것무성의한 월요일 아침이 또 온다그것을 인내하는 것으로 삶은 끝을 향해간다우리가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이 이어진 단 하나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은 지진한 일 같지만어쩌면 열네 살과 열다섯 살을 통과했던 이해 불가한 사건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것인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막무가내로 벌어졌던 사건을 단지 위로하고 싶은것은 아니다이어진 단 하나의 시간을 산다는 삶의 형태는 내 자신이 직접 살아왔음에도 그 때에는 알 수 없었던 소의 되새김질처럼 반복으로만 가능한 삶의 이해 '방식'을 불러온다.

 

이런 삶 옆에서 소설은 더욱 극단적인 선택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뜨악하게 하지만놀람을 걷어내고 보면 생을 그대로 본뜬 모양으로 한 장 한 장 넘어간다소설 <그믐>에는 시간이 지나 남자로여자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어른이 되어 훌륭하게도 남자와 여자는 다시 만나게 되는데그 사이에는 다 자라지 못하고 죽음을 맞았던 남자의 친구 '영훈'이 있다남자와 여자라는 대명사로 주인공을 배치시키는 것과 다르게 영훈’은 고유명사로 가장 중요하게 소설에서 움직인다. 소설의 인물이 영훈을 대하는 태도는산 이가 죽은 이를 이해한다는 불가함을 은유하면서도 소설의 바깥에서 독자는 소설의 화자처럼 똑같이 시험당한다


소설은 진심으로 상대를 알아봤을 때 일어나는 감정의 교류가(남자와 여자얼마나 상대를 변화 시킬 수 있는지무한한 감정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면서그 마음이 비틀려 이해되었을 때(남자와 영훈막을 수 없던 과거의 비극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져서 미결인 상태로 얼마나 아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남자를 알아본 단 하나의 개인이었다는 것은 여자와 영훈의 공통점이다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는 사랑을영훈에게는 죽음을 준다이 불공평한 관계는 후에 공평하게도 같은 비중의 비극으로 마무리 되지만남자가 극단적으로 대했던 이 둘의 '관계'는 어떤 차이들로 비롯되었던 걸까또한 남자가 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벌였던 소설 끝은 남자에게 진정한 ''이 될 수 있었을까소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선 관계에 선행되는 알아보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가자.

 

알아보기 위해서는대상에 대한 관심(사랑)과 함께대상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지혜)이 필요하다둘 중에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이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여자와 영훈에게는 모두 남자의 글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다그러나 남자를 알아본 둘은 글을 알아보고 이야기 하는 위치가 달랐고그로인해 남자가 느낄 온도차가 현저했다여자는 교지 편집위원으로 그의 글을 읽고 비평하며 여자는 또한 둘 만의 장소에서 남자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한다그러나 영훈은 일진은 아니지만 노는 애들의 축에 속하는 아이로어느 해 남자와 사이가 틀어졌으나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교지에 실린 남자의 글을 보고 영훈은 '작가'라며 놀린다’. (물론 놀린다고 느끼는 것은 남자의 시선이다)

 

영훈과 남자의 틀어짐에 대해 소설은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다영훈과의 관계에서 그저 영화 <파수꾼>에서 보여주는 그 나이의 남자가 갖고 있는 예민함말로 소통할 수 없는 오해와 무력이 벽을 친 것이 아닐까 짐작만 할뿐이다.

 

이렇게 남자의 유년에 그를 알아본 두 개의 사건이 있어 여자와의 일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용기 이상을 얻었지만영훈과의 일로는 마음을 깊게 다쳐 파국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 영훈이 남자를 향해 보였던 알아봄에 사랑이나 지혜가 얼마나 진실로 포함되어 있었을까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진실에 정량이 있어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에 따라서 차이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영훈의 마음을 알아챌 수 없던 남자의 맹목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영훈은 죽었지만 소설 전체를 지배한다그는 남자가 아이였을 때 죽인 친구이자남자를 끈질기게 쫓는 아주머니의 아들이고여자가 남자와 함께 가고 싶은 미래의 길목을 막는 치워지지 않는 흙더미다소설은 남자가 이영훈을 왜 죽였어야 했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설명하지 않는다대신 남자가 과거의 말을 번복하는 것으로 그가 영훈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남자가 9년 동안 지켜왔던 주장영훈이 평소에 남자를 괴롭혀왔으므로 일정부분 참작되어야 하는 우발적인 살인이었다는 주장이것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여자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던 힘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가 자신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설계할 수 있었던 길이었다그러나 후에 남자는 이 주장을 번복한다동시에 여자와의 관계를 버리며, 자신의 미래 역시 닫는다. 

 

저는 조금이라도 감형받기 위해 그런 말들을 지어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들은 제 말을 믿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147

 

소설에서는 남자의 거짓말이 어디서부터였는지 알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영훈의 태도와 관심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도 지키지 못하고 사라진다자신이 진실 할 수 있는 만큼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이 변화 할 수 있다는 교육적인 결말일까남자는 영훈의 장난스러운 말을 뒤늦게 이해했던 것일까

 

이 대목은 난데 없이 소설에 출현한 작가의 말이라고도 생각한다작가는 말을 지어낸다그건 물론 감형이 목적인 것은 아니다작가란자신이 알고 있는 신뢰의 세계를 기반해 끝없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독자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야 하는 것이다소설을 쓰는 것은 이해를 탐하는 일이라고 이해해볼 때외부에 자신을 알리기 전에 죽어버리는 주인공의 자리에 '너는 대체 누구였어?' 라는 대사가 남는 것을 본다이 대사는 환상같은 세계로 초대하고는 금새 자취를 감추는 작가나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지만당신의 이해를 구하고 싶다이것은 어쩌면 글 속에서도 작가이자글 밖에서도 작가인 '남자'의 고백 같은 건 아닐까소설은 관계의 파괴에 대해 윤리적인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자신에게 다가왔던 관계를 책임지며 사라지는 남자의 모습을 남긴다. 이것만은 소설에서 깨어난 우리가 소설 밖으로도 가져가 기억할만한 사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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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제력을 시험하는 계기로 삼을 생각이다. 1기를 약간의 애정과 노력으로 봤다면, 2기는 몸에 잠재한 자성에 놀라며 끌려가는 중이다. 세상에는 참 믿을 수 없는게 많지만, 그 중에 하나를 왕좌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것 같다. 한 화 한 화 끝나는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엔딩이 흘러나올 때 표정을 찍는다면 세상에 못봐줄 그런 얼굴이겠지.

 

믿고 싶지 않은 일이 하나 더 있다.

73일부터 집 앞의 2층의 단독주택은 공사를 시작했다. 앞집과 내가 있는 집은 도로 하나를 둔다. 그 거리는 약 5M 정도. 오늘은 토요일이고, 인부 아저씨 여섯은 아침 7시부터 집 안에 존재하는 모든 유리를 부수기 시작했다. 열두시까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불행'이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9시경에 나와 공사의 기간을 물었다. 주차장이 있는 5층 규모 빌라가 들어설 예정. 공사기간은 3달이라고 했다. 더 뭐라고 물어야 하나. 알겠다며 돌아서는 뒷모습. 영화로 찍는다면 그쯤 되겠지.


집에 들어와도 바깥과 별 차이 없는 소음. 다시 한 번 '불행'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한자를 어떻게 쓰더라. 주변에는 적어도 4동의 빌라가 그 단독주택을 둘러싸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부서지는 뷰가 잘 보이는 집, 우리집이다. 물론 세들어 살고 있으며, 세를 준 집주인의 나이는 13살이다. 조프리 나이가 그쯤 되었던가.

 

왕좌의 게임에서 철왕좌를 찾기 위한 암투에 영주들이 갖고 있는 문장과 가언이 함께 하며, 각자의 지역을 상징하는 '상품'을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모피, , 향신료, 드래곤....은 물론 아니지만, 모피나 철, 향신료 정도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는 누가 먼저냐? 라는 물음. 닭과 알의 선후처럼 풀기 어려운 문제를 탐색한다.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등이 어떻게 세계의 삶을 바꿨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좀 의외였던 상품은 모피였다. 모피는 그 추운 시베리아, 북아메리카 개척을 끌었다. 다이아몬드에는 사람의 피가 묻어 있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갖지 않는것이 자연스럽다. 책을 읽다보니 상품과 세계의 대척점에 빠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닭과 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욕망'이라는 이름이 그 자리에 어떨지. 좀 어울릴 것 같다.

 

상품으로 말미암아 세계가 얼마나 바뀌었나,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를 알아채는 것만이 독서의 일은 아닐터. 상품에 투영된 욕망이 그것을 발견한 이들과 세계에는 부와 행복을 가져다주고, 반대편의 곳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대의 것을 어떤 것을 남겨놓았다. 살풍경을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에 눈이 먼 만큼 세계를 바꾸는 힘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포기했다 싶은 점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찐 감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생각한다. 욕망이 얼마나 뜨거웠기에 그 딱딱한 감자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스러질만큼 부드러운 것이 되었나. 그런데 한자로 어떻게 쓰더라? 욕망은. 그 모양이 불행과 얼마나 닮았었나. 아니 조금도 닮지 않았던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욕망으로 일군 무수한 일에도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돌아가는 사람이다. 세 달간 공사를 진행할 공사장 앞, 즐거운 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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