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은 문학 생애 평생동안 인종차별과 그에 수반되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토니 모리슨이 죽기 3년전에 나온 이 책에서도,

토니 모리슨은 인종 차별의 기저와 메커니즘을 철처히 탐구합니다.

미국에서 백인은 흑인이라는 '타자' 없이,

백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며,

토니 모리슨은 백인들이 인종적 권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지른 일들을

문학을 통해,

린치 같은 폭력적인 사건들을 제시하며 알려줍니다.

자신보다 열등한 타자를 설정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권력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과연 미국만의 일일까요?

저는 그게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곳 어디에서라면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기원>에서 토니 모리슨이 말하는 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걸 안다면,

우리는 이런 타자화에 저항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해답이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토니 모리슨이 말한대로

인간에게 주어진 이상적인 과제를 떠올리며

비인간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정도는

슬며시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22-07-24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돼버려서 비판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SNS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밝히면 대부분 사람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라는 식으로 반응을 드러내요. 그렇게 되면 개인의 비판적 의견은 고립되기 쉽고, 저항하는 힘을 얻지 못하게 돼요.

짜라투스트라 2022-07-24 18:01   좋아요 2 | URL
제가 sns를 안해서 뭐라 말하기는 어렵네요.^^;; 원래 역사를 보면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화하는 것이 너무 일반적인 일이고, 발전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는 법이거든요. 뭐, sns라는 매체의 특성상 무력감을 느낄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너무 허무함에 빠지지는 마세요. 세상 일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도 않는데다 내가 지금 비판하는 게 반드시 동의를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예전에도 제가 누군가에게 한 말이기는 한데 소걸음으로 천리를 걷는 것처럼 차근차근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희일비 하지 않기, 내 비판이 언제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자각하기,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생각하기, 그리고 내가 하는 사고와 말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사고와 말을 끊임없이 피드백해가기 등을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이 급진적으로 확 바뀌는 게 참 드문 일이거든요. 조금씩 바뀌어나가거나 아니면 드물지만 안 바뀌는 듯 보여도 어느 순간 확 바뀌기도 하거든요. 그때를 대비하면서 준비해야 할 듯 합니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급진주의자나 래디컬은 안 되나봐요.ㅎㅎㅎ 뭐 어쨌든 저는 cyrus님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언젠가 해 뜰 날이 오겠죠. 아니면 우리가 그런 순간을 위한 토양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해봅시다. 제가 너무 긍정적인가요? ㅎㅎㅎ 예전에 하도 절망을 많이 해서 가지게 된 심리적 메커니즘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오랜만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을 읽었습니다.

아 맞다... 이런 느낌이었지...

유머가 가득하고 풍자가 넘쳐서 재미있었습니다.

보르헤스를 제외하고 남미를 대표하는 3명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마르케스, 푸엔테스, 요사 중에서

가장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작가답다고 해야할까.

읽는데 막히는 것 없이 술술 넘어가서 당황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푸엔테스의 소설 읽을 때는 책장을 넘기기기 쉽지 않았는데,

요사는 너무 잘 넘어가서 '이 작가 페이지터너 작가'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요사도 읽기가 만만치 않은 소설들이 있는데,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읽기 쉬운 소설이라고 해야겠죠.

18살과 32살의 연애와,

라디오 통속극 작가의 통속적인 이야기가 교차하는

소설 속에서 읽기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를 읽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습니다.

내가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술술술 읽고 있다는 점.

이거 뭔가 이상한데...

분명 처음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었을 때는,

읽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겨웠는데,

왜 이제는 이렇게 쉽게 읽히지.

그 동안 나의 독서력이 증대한건가?

아니면 번역이 좋아서?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확실한 건,

버지니아 울프를 어렵게 읽던 시절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좋은 작가인지 잘 몰랐는데,

잘 읽히는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가 확실히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oolcat329 2022-07-23 15: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훌리아 저도 갖고 있는데 책장이 훌훌~넘어가는군요! 저도 조만간 읽어야겠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이 참 좋은 거 같습니다.

짜라투스트라 2022-07-23 15:42   좋아요 1 | URL
아 제가 그렇게 읽긴 했습니다^^;;
 

요새는 다시 프랑스 작가들에 눈을 뜨고 있습니다.

한때 열심히 읽었지만, 그동안 멀리 거리를 두었던 작가들을...

프랑수아즈 사강, 아니 에르노, 조르주 페렉, 마르그리트 뒤라스...

또 크리스티앙 보뱅 같은 새로 찾은 작가들의 책도

함께 읽어봅니다.

다분히 프랑스적인 현학적이면서도 성찰적인,

그러면서도 심리를 세밀하게 파고들고 프랑스 당대의 현실과 밀접한,

책들의 재미를 다시 찾은 것 같아 좋습니다.

점점 읽을 게 많아 지는 것 같아 부담스러우면서도 설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근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들 '다시 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예전에 좋은 기억이 있던 책들을 다시 읽으니,

예전에 그 책에 대한 좋은 기억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요소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더군요.

다시 읽기가 주는 묘미가

과거의 좋음과 현재의 새로움 사이의 조화라고나 할까...

또한 예전에는 읽고자 했으니 읽지 못했던 책들 읽기도

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읽으려고 했으나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어 나가기

성취감이 있어서 좋습니다.

항상 아쉬움과 후회의 대상이었던 책들을 읽는다는 게

내 마음속에 어떤 응어리를 해소해버리니까요.

요새는 이렇게 '다시 읽기'와 '반드시 읽기' 사이를 맴돌며

독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책들의 서평이나 리뷰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점.

이것도 고치면 참 좋을텐데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허상의 어릿광대-히가시노 게이고

 

N, 오늘부터 너에게 계속 편지를 쓰게 될 거 같아. 너는 아마도 어리둥절하겠지. 내가 왜 계속 편지를 쓰는지. 카카오톡으로 해도 될 것을, 왜 편지를 쓰는지. 니 생각이 맞아. 편지라는 글의 형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못해 죽어버린 장르야. 아무도 쓰지 않는 편지라는 장르를 굳이 너에게 쓰는 이유를 너는 알 수 없을 거야. 하지만 N, 나도 사정이 있어. 나도 매일매일 글을 쓰겠다는 맹세를 하지 않았다면, 너에게 편지 같은 걸 쓰지 않았을 거야.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쓰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맹세를 해버린 탓에 어쩔 수 없어. 뭐라도 해야지. 되도 안되는 몸부림이라도 치고, 생쇼라도 해야지. 맹세라는 이름을 빌린 저주를 벗어나려면(^^;;) 주술적인 행동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야. 다행인 건 나에게 너가 있다는 점이야. 나는 종종 너에게 쓰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서평을 쓰곤 했어. 심심풀이삼아, 똑같은 서평을 쓰는 게 지겨워서, 가끔식 쓰던 이 서평을 이제는 지속적으로 진행해보려 해. 쓰기도 편하고, 할 말도 많아지니까. 편지를 보내는 사람만 있고, 편지를 받는 사람은 자신한테 편지가 오는지도 모르는, 편지를 쓴 사람에게 계속 되돌아오는 이 일방향의 편지는 계속될거야. 내가 힘들어질때까지.

 

이 시리즈의 첫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허상의 어릿광대>. <용의자 X의 헌신>이 포함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7편이야. 7편까지 나온 거 보면 이 시리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가가 형사 시리즈와 더불어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표하는 시리즈물이야. 형사 냄새 물씬 풍기며 인간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가가 형사 시리즈와 달리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주로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추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어떻게 보면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최초의 추리소설인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에서 이어지는 흐름에 호응하고 있어. 포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어. 닫힌 밀실에서 벌어진 수수께끼의 살인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여주며. 근대가 아닌 전근대였다면, 닫힌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은 귀신이나 유령, 악마의 소행 혹은 신의 벌 같은 미신적이고 종교적이며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원인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을 거야. 하지만 근대는 다르지.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인간이 홀로 스스로 세상을 밝혀나가며 세상의 원리를 파헤치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는 과거의 사고방식이 설 자리가 없어. 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기반하며,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거기에는 신이니 천사니 악마이니 기적이니 하는 것들이 설 자리가 없어. 거기에 있는 건 이성적인 인간과 그런 인간이 밝혀낸 인과관계가 있을 뿐이야.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도 마찬가지야. <탐정 갈릴레오>에서 시작된 이 시리즈에서 유가와 마나부 교수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과학자 특유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기반하여 해결해나가. 불가사의하고, 말도 안 되며, 초현실적인 사건들은 그의 머리 앞에서, 인간들이 저지른 단순한 사건이 되어버리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시리즈가 무조건 과학적인 사고방식에만 기대고 있냐? 그것도 아니야.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이 시리즈는 인간의 감정, 인간의 삶에도 관심을 주고 있어. <용의자 X의 헌신>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덮으려는 천재 수학자의 계획을 천재 물리학자가 파헤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소설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건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이야.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걸 건 수학자의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파토스가 책의 핵심에 있다는 말이야. <허상의 어릿광대>에서도 나는 이것을 느꼈어. 책은 유가와 마나부 교수가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여기에서도 여전히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의 사건들을 해결하는 유가와 마나부 교수의 과학적인 추리도 중요하지만, 빠질 수 없는 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의 삶이야. 단지 추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로서 인간들이 이용되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서 이끌어나가는 인간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의 힘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야. 이성적인 로고스와 인간의 삶이 불러일으키는 파토스의 공존이야. <허상의 어릿광대>에서 내가 본 건 그거야. 아마도 이 경향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가 계속되는 한 이어지겠지.

 

첫 편지는 여기서 마쳐야겠어. 조만간 다음 편지로 만날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구.

-너의 친구MN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