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라는 소제목처럼 분리배출에 대해 아주 세심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우리는 흔히 분리수거한다고 하는데, 이 말의 정확한 표현은 분리배출이라는 것. 이런 표현의 부정확성처럼 우린 쓰레기 분리배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흔한 예랄까? 택배로 받은 종이박스는 종이로 그냥 버려도 될까? 그렇지 않다. 우선 운송장부터 떼어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도 문제지만 송장의 접착제가 재활용 과정에서 문제가 된다. 또한 박스를 칭칭 감은 테이프도 분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테이프의 접착제가 수거 후 재활용하는데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이유로 종이테이프도 제거해야만 한다. 또한 종이박스는 다른 종이들에 섞이지 않도록 박스만 따로 모아 버려야 한다. 종이박스와 일반 종이는 재활용하는 업체가 다른 만큼 재활용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종이박스만큼은 그러한 작업 없이 그냥 버려도 되는 쓰레기이기도 하다. 왜?폐지 줍는 분들의 노고 덕분이다. 단 아파트 단지는 제외고 죽 단지만 그렇다. 주택가에서 우린 쉽게 폐지를 줍는 분들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 분들이 우리가 해야할 수고로움을 대신 해주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새삼 깨달아야 할 일이다.단 하나의 예만 들었을 뿐 이 외에도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다는 분리배출에 대한 오해가 부지기수다.쓰레기는 아예 없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쓰레기는 버리는 입장에서 제대로 잘 버려야 한다.이 책은 단순한 분리배출 안내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쓰레기 대란에 몸서리치는 요즘, 환경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지구를 지키는 일에 가장 직접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그야말로 필독햬야 할 지침서이다.......
희곡 《사랑의 기원》은 그 자체만으로도 별 다섯를 온전하게 준다해도 모자랄 작품이다. 희곡이라는 글쓰기가 여느 글쓰기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뿐이 아니더라도 희곡으로 쓰여지는 모든 작품들은 글쓰기 행위 자체만으로 별 다섯개를 받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희곡은 상연(공연화)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선택적으로 읽히게 되어 있다. 그 선택은 공연을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즉 기획자, 연출가 등 제작을 책임지거나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뜻이다. 더러 연극을 전공하거나 연극 분야에 발을 디디려는 학생들에 의해 선택되어 읽히거나, 일부 일반인들에게도 읽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호프 등과 같은 일부 세계적인 작가의 희곡들에 국한되어 있을 뿐 모든 극작가들에게 그 선택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런 만큼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며, 대놓고 이야기하자면 돈이 안 되는 가난을 전제로 하는 글쓰기인 셈이다.희곡이라는 글쓰기가 이미 공연화의 사전약속이 이뤄진 채 진행되는 경우도 긴혹 있지만, 대부분의 글쓰기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 욕구에 기인한다.가난한 글쓰기이자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글쓰기이자 진정 작가의 소명감이나 순수한 창작욕구에 기댄 글쓰기인 만큼 희곡이라는 글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숭고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럴진대 어찌 희곡이 별 다섯개만으로 충분하다랄 수 있을까.그런데 나는 왜 별 3개인가? 이는 다분히 개인적 취향일 뿐이다. 꼴에 연극을 좀 안다는 오만함과 아마추어이지만 현재진행형으로 연극을 하고 있다는 불손함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사랑의 기원》은 상징적인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문학적으로 진부한 주제라는 점에서 나름으로 별 3개를 주게 되었지만, 연극적으로는 폭넓게 열려있는 작품이라 별 3개는 너무 야박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에게 추천할 만하냐는 점에서 별 3개를 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무대와 조명의 시공간화와 배우의 소리와 몸짓의 시청각화가 하나의 언어로 조합될 때 발휘될 연극적 기호가 기대되는 작품이지만, 다분히 희곡읽기라는 행위적 관점에서는 연극적 상상력이 없이는 소화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