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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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지가... 3주 정도나 지났는데, 이제야 이 책을 놓고 질척거린다.

아니 에르노.

알베르 까뮈를 시작으로 앙드레 지드를 지나 앙드레 드 리쇼를 거치는 무순위적 독서를 통해 프랑스 소설에 대한 나름의 애착이 생기던 즈음, 우연찮게 독서토론모임 덕분에 만났던 아니 에르노였다.

에르노의 작품은 많은 분들이 그의 첫 작품인 <빈 옷장>부터 읽어보라는 추천을 하지만, 나는 그런 충고(?)를 접하기 전에 <세월>을 먼저 읽게 되었었다. 책 표지에 홀로 걸어가는 노년의 옆모습이 인상 깊어 무턱대고 구입했고 무작정 읽었다가 ‘뭐야?‘ 했다.

늦깎이 책린이였던지라 소설도 아닌 것이 자서전도 아닌 것이... 에세이라기엔 분량이 엄청나고... 이게 무슨 형식의 글인지 감을 잡을 수 없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음에도 아랑곳 않고 <빈 옷장>을 만나고, 독서토론에서 <얼아붙은 여자>를 읽고, 이후로 <사진의 용도>, <한 여자>, <남자의 자리>,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로 이어지는 무순위적 독서를 한 후 한참 지나 이번에 <집착>에 손을 댔다.

와... 많이도 읽었다 싶은데 정작 아니 에르노에 대해 할 말은 빈약하다.

지금 책상 위에는 아직 에르노의 작품, <탐닉>과 <카사노바 호텔>, 그리고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이 무섭게 나를 손짓하고 있다.

아니 에르노는 이미 프랑스에서는 아니, 이제는 세계적으로 그가 바로 장르라는 찬사를 받고 있고,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몰아가는 분위기다.

아니 에르노에 대해 또는 <집착>에 대한 나름의 아는 척을 하자면, 딱 하나의 문장,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라는 에르노의 말이다. 그의 소설은 그의 경험들의 산물이고 현장이고 그 이전에 날 것 그 자체로 그의 삶 그대로이다. 그래서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읽는 것이 아니라 만나다는 또는 대화한다는 표현이 어울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그 자신이며 그 자체로 장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11쪽)‘이었던 에르노가 W에게 여자가 생기자 시작된 질투로 말미암아 빚어진 집착에 대한 이야기다.

에르노의 글들이그렇듯이, 역시 적나라하다. 자신을 하나 숨김 없이 드러낸다. 여과작업도 없이 솔직 그 이상으로 자신을 오롯이 발가벗겨 놓는다.

에르노의 글을 만날 때마다 그의 그 과감한과 솔직무구한 감정표현이 참으로 부럽기 그지없다. 닮고 싶지만, 아니 흉내라도 내보고 싶지만... 나의 이번 생에는 어림없는 일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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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성적 쾌락에서 모든 것을, 그것 자체를 넘어서는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성적 쾌락으로부터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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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 개정판 그림책이 참 좋아 1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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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을 내다보니,
커다란 달이 똑똑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
기발한 아이디어다. 달이 녹아내린다니...

달이 녹아내린다는 설정은 이 책의 핵심이 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책은 32쪽 분량, 23개의 그림 장면에 약 35개의 문장만으로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환경의 위기적인 문제들을 함축적으로 모두 담아 놓은 듯하다. 단순한 문장들의 조합으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수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하다.

이것을 단순히 그림책 또는 동화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느껴질 정도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이 꼭 읽고 지금을 반성하고 미래를 위한 깊은 고민을 해야할 것만 같은 지구환경 교과서 같다.

✏️
그림책이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읽었다가 큰 코 다친 격이다. 지극히 유명한 백희나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예전에 《나는 개다》를 읽고 신선한 재미를 만끽한 기억을 되살려 다시금 그 재미를 느껴보겠다고 읽게 되었는데, 《달 샤베트》에 담긴 문제의식에 깜짝 놀랐다. 그 어떤 환경관련 서적보다 울림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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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담이지만,

가끔씩 그림책을 구입하곤 한다. 수백 쪽의 책들에 문득 질릴 때, 기분전환이라고 할까? 후딱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 한 권을 완독했다는 성취감도 금새 얻을 수 있기에 가끔 일탈적 독서를 위해 그러는 편이다.

그런데 일탈이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그림책 또는 동화책으로 얻는 감동이 어떤 때는 고전보다 더 클 때, 그 일탈의 여운은 참으로 더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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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01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림책도 수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전달하죠
저도 그래요
 
신, 만들어진 위험 -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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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번역판 《신, 만들어진 위험》은 애초부터 신(神)을 ‘만들어진 존재‘로 규정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이 위험하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원제 《Outgrowing God》는 ‘성장해서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게 된다‘(책 302쪽)는 뜻이며, 이에 대한 부연으로 ‘물론 똑똑한 아이들은 성장하면 증거를 찾아보고 앞 세대로부터 전해진 나쁘거나 쓸모없는 충고에서 벗어난다. 즉 성장해서 그런 충고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책 302쪽)고 덧붙인다.

이 책의 제목을 두고 단편적으로 종합하자면, 신은 이미 존재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런 일련이 나쁘거나 쓸모없는 것이기에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자 김명주는 이 책의 후기에서

📖 357쪽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신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겠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무신론자가 되어 있지는 않더라도) 신은 어느새 잊고 과학의 마법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라며 아주 자신만만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역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세계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 가장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선 세계적 석학‘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데 여기서 뜨거운 논쟁이라 함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통해 종교의 잘못된 논리가 세계사에 수많은 폐단을 낳았다는 비판으로의 확장이다.


✒️
이 책은 대놓고 신을 인류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종교‘에 근간이 되는 신의 존재와 신에 대한 믿음을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신과 신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그 자리를 합리적인 ‘과학‘으로 대신할 정당성을 피력한다.

그리고 그 정당성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근거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적 진화론‘을 내세운다.

📖 286쪽
그러므로 종교적 믿음을 갖는 경향도 우리에 관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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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가 《신, 만들어진 위험》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제시하는 근거들은 대체적으로, 아니 부정할 수 없으리만치 타당하며 저절로 수긍이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근거는 과학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그래서 과학만이 옳다는 접근.

합리적 이성이 기본이 되는 세상,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시대에서 과학만큼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이런 시대에 종교는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학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그 과학은 신을 대신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 믿음 또한 종교적인 것은 아닐는지...

과학은 왜 탄생했을까? 종교를 대신하기 위해서? 과학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위험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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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을 얻은 인간에게 의무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이 이끄는 곳이면 어디든 그 길을 따라 앞으로 더듬어 나아가는 것뿐, 그 외에 다른 의무란 절대, 절대, 절대로 없었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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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네가 무엇 때문에 술을 마시는지는 우리 둘 다 몰라. 네 안에서 네 삶을 형성하는 것만 이미 알고 있지. 그런 존재가 우리 안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 우리 안에 모든 것을 알고 의도하며,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존재가 있다는 걸 말이야.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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