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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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들이 있다. 읽었다고 착각하는 책들. 까뮈의 《이방인》이 그랬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그랬으며, 나의 최애 중의 하나인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마저도 그랬다. 이 뿐만 아니다. 책장에 고이 꽂혀 있는 책들 중에는 그런 책이 한둘이 아니다.

귀에 딱지가 일만큼 너무 자주 들은 탓에 책 내용을 술술 이야기할 정도가 되다보니 그래서 읽었다 착각하는 경우가 있고, 또는 하도 많이 회자되다보니 사람들 속에서 나의 무식함을 감추기 위해 귀동냥으로 들었거나 짤막하게 알고 있는 정보들을 주절거리다가 결국에 책을 읽은 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살면서 이런 경우들을 종종 접하다 보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하게 된다. 카프카의 《변신》이 내게는 그런 생활 속의 한 예가 된 셈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그렇게 읽지도 않은 것이 읽은 것으로 ‘변화‘되는 오류는 독서의 절대적 필요성 보다는 정보의 단순편의적 검색성에 더 치중하는 꼴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러한 오류에서 벗어나 카프카의 《변신》을 읽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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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은 1915년에 발표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된 이야기다. 하지만 《변신》은 100년 이상의 물리적 거리를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동시대성의 힘이 강렬하다. 오늘은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해도 거부감 내지 저항력이 없을 정도다. 이것이 고전의 힘일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동시대적 감화능력.

📖 109쪽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는 것으로 채워가길 바라는 마음에 요약만 하자면,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의 변신이라는 직접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후 한 가족이 잠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 149쪽
그레고르에게 한 달 이상이나 고통을 주었던 심한 상처는-아무도 사과를 빼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는 눈에 보이는 기념품처럼 살 속에 박혀 있었다- 그레고르의 현재 모습이 비참하고 역겹게 보일지라도 그 역시 한 식구이니 원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고 증오심을 억누르고 참고 또 참는 것만이 가족이 지킬 의무의 계명이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족 구성원 하나가 고통을 당하는 것은 ‘원수처럼 취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참고 또 참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그러질 못한다.

📖 161쪽
˝저것이 두 분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할 거예요. 저에겐 그렇게 되는 게 뻔히 보여요. 우리는 전부 힘들여 일을 해야만 하는데, 집에 저런 끝없는 두통거리를 감당할 수는 없어요.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요.˝

그레고르가 소중하게 여기던 여동생 크레테마저 그레고르를 향해 ˝없어져야 해요.˝라는 충격적인 외침까지 쏟아내는 변화의 과정에는 자본주의 논리도 개입한다. 그레고르가 해충으로 변한 일보다 더 끔찍한 것은 당장에 먹고 사는 일, 생존의 위기에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라는 인식은 이 작품이 던지는 극한의 우울함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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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을 해충으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이 작가적 상상력은 오늘날 ‘카프카적‘이라는 멋진 상용구를 지적 사치로 남발하게끔 만들어 놓았다.

카프카적 상황. 이 말은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서도 언급긴 하는데, 뭐 그건 그렇다치고라도, 만일 눈을 떠보니 해충이 되었다... 만일 내가 그런 상황에 봉착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라면 당장에 죽고 싶겠지... 그래서 죽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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