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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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적잖이 실망을 했다.

영화는 좋았다. 극찬 또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낼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아냥거릴 거리는 거의 없었다.

다만,

솔직히 박해일의 연기를 한껏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었는데... 분명 연기는 반박할 여지도 없이 박해일다웠음에도 불구하고, 연기력과는 별개로 자꾸 영화 속에서 박해일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지배할 정도로 이건 탕웨이를 위한 영화였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개인적 기대를 채우지 못한 반발감을 위로하고자 ‘적잖은 실망‘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일 뿐...

그럼에도 진한 여운을 남긴 몇몇의 대사들이나 뇌리에 찡하고 박힌 강렬한 인상의 단어들을 발견한 것은 기대도 않았는데 문득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대사들과 단어들의 여운과 인상을 재확인할 겸으로 각본집을 구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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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단어를 뽑아보자면, 뭐니뭐니해도 ‘추앙‘이 아닐는지.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인기도 인기였지만,

˝나를 추앙해요.˝

라는 대사는 그야말로 압권이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회자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추앙‘이라는 단어에 버금가는 단어로 나는 ‘붕괴‘를 선뜻 손꼽는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사랑 때문에 해준이 그토록 철저하게 지켜왔던 직업적 자부심이 붕괴되었다는 말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추앙과 붕괴.

이 두 단어를 천천히 곱씹어 보노라면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참으로 지독히도 외로운가 보다 싶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안고 살기에 극단적인 단어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인지... 어쩌다 사랑과 고통을 대체하는 단어가 이토록 극단적이 되어 버린 것인지... 어쩌다 이토록 그 이상의 단어를 찾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며 이것이 오히려 적절한 표현이 되어버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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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쪽)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 (136-137쪽)
해준
(답답하다는 듯 야깐 톤이 올라가서)
왜 그런 남자하고 결혼했습니까?

서래
(눈에 힘주고 똑바로 보면서)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 (29쪽)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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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본집을 볼만한 매력이 있다. 영화를 다시보기 하는 것도 좋겠지만, 직접적인 영상에 감동의 재현을 의지하기 보다는 책 속의 활자와 행간을 통해 아련하도록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동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영화 다시보기는 도중에 멈추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영상의 흐름이 정지되는 순간 뭔가 끊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읽는 도중에 덮어도 그 이미지가 여운으로 지속된다. 그래서 끊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책을 다시 펴는 순간까지도 이미지는 이어지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이것이 독서의 힘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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