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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이든 뉴욕이든, 멜번이든 뭄바이든, 여자는 여전히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다.
(4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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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자신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피력해나가는 긴호흡의 글에는 그만큼 작가의 끈기와 노력, 애정이 느껴져 좋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도시 그리고 거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역사와 예술이 재발견 된다. 특히 작가가 예술가들의 자취를 탐색하며 자신의 삶 속에 녹아냄으로써 과거에 살았던 예술가들을 오늘로 소환하는 순간 시간의 동시성을 체험하는 매력이 넘친다.

플라뇌즈는 이 책의 핵심어라 할 수 있다.

˝플라뇌즈, 명사, 프랑스에서 온 말, 보통 도시에서 발견되는 한량, 빈둥거리는 구경꾼을 가리키는 단어 플라뇌르의 여성형.˝ (23쪽)

그럼 왜 플라뇌즈인가?

플라뇌즈는 산보하는 사람(여성)이다. 즉 걷는 사람이다. 걷기 위해서는 길에 나서야만 한다. 그런데 처음에 제시한 문장에서처럼, 그 길을 ‘남자와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 없‘는 여성의 현실에서 길에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래서 산보도 여성의 것이 되기 어렵다.

이 책은 이 지점을 폭넓은 시간과 방대한 자료, 한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았던 다양한 방면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밝혀내고 있다.

김소연 시인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본 적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에겐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로런 엘킨 방식의 기록을 우리 도시에서 우리가 해볼 수 있을 테니까. 우선 집 바깥으로 나가 길을 걸어보자. 예상 밖의 일들과 마주칠 때마다 몰랐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한편으로, 이해 불가능함 또한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경험을 얻는 장소. 길을 만들어가는 삶은 길을 벗어나본 적 있는 경험으로써 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처음 가보는 겔모퉁이에서 문득 느끼게 될 때까지.˝ (책 뒷표지에서)

독자의 몫은 김소연 시인의 말에서처럼 ‘우리에겐 할 일이 생긴 것‘이므로 그걸 해내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것이라기 보다 걷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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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가 묘한 매력이 있다. 책을 고를 때 내용과 상관 없이 표지 디자인만으로 구매할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런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책 중 하나다. 다만, 이 책은 이미 독서토론 목록에 있던 것이라 그러한 선택으로 구매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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