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의 휴식 -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은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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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내내 철없이 소리지르고 돌아댕기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지내다, 28년째에 사회생활이란 걸 하게 되었다. 이게 왠걸,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또 항상 함께 해야 하는 게 익숙치 않았다. 마음은 조급했고, 몸은 따라주지 않았고, 쉽게 지쳤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꿀맛 같은 설 연휴에 읽은, 지금 나에게 딱 어울리는 책이 바로 「30년만의 휴식」이었다.

책은 정말이지 마치 지금의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마음의 평안과 자유를 얻은'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책을 덮은 후에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이었는지, 내 안에 자라던 어린아이는 어땠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며 읽다보니 어느새 하루만에 다 읽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해주는 이야기는 정통 이론이 풍부한 경험과 접목하여 은은하면서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얼핏 평소에 알고 있었던 것 같으면서도 저자가 글로써 썰을 풀어내는 것을 보면 '아, 이거였구나! 나는 그때 그랬지..'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글을 통해 자연적으로 정신이 치유되는 것이다.

또한 그가 사례로 언급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 '누구나 다 고민은 있고 힘들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진리 같다. 자신만 고통이 있는 게 아니다. 그 고통을 누군가는 발전적으로 풀어내고,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표출한다. 그래서 전자는 마음의 평안을 얻고, 후자는 더 괴로워하게 된다.

물론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면, 스스로가 자유로워짐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 자신 또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조급한 아이와 의존적인 아이가 조금은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그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내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진정한 휴식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어릴적 경험이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벽으로 쌓여 후에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간의 어릴적 경험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다. 사랑과 신뢰를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건강한 내면을 갖고 자라지만, 부모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거나 부모 성격대로 성장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내면에 남은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부정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자신의 아이일수록 더욱 신중히, 소중히 키워야겠다. 

그래, 내 자신, 특히 나의 내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며, 평안과 자유를 찾고 더욱 강해지자. 어떠한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 탓을 하기 이전에 내 자신의 내면에 이상이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라는 말,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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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Mr. Know 세계문학 44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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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명작', '수작', 또는 '최고봉'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고유의 장르에서 최고라고 칭해지는 작품은 그 가치를 더한다. 탐정 소설에도 세세하게 놓고 보면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그 중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 장르의 으뜸이라 칭송받는 작품이 있다. 바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다.

모든 탐정 소설이 그렇듯, 그의 작품에서도 범상치 않은 탐정이 나온다. 바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순발력과 대범함 그리고 열의로 똘똘 뭉친 탐정 '샘 스페이드'다. 조수 '에피 페린', 그리고 동료 '마일스 아처'와 함께 일하는 그에게 어느날 '원덜리'라는 여인이 찾아와 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래서 마일스가 몰래 미행하기로 했는데, 그날 밤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바로 마일스가 살해된 것이다! 게다가 원덜리가 동생과 같이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 '서스비' 또한 살해당했다. 과연 두 사람을 죽인 인물은 누구일까? 이런 가운데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새로운 의뢰인 '조엘 카이로'가 찾아와 조그만 새의 조각상을 찾아달라며 샘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나 샘이 누구던가, 천하의 콧대높은 탐정 아닌가! 결국 카이로를 잘 구슬려 원덜리의 정체도 알아내고 새 조각상 찾기에도 나서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결국 쫓고 이어져 다다르게 된 인물, '거트먼'. 그는 바로 17년 동안 그 새 조각상을 찾아다닌 인물이었다. 그렇다. 새 조각상이야말로 제목 그대로 '몰타의 매'였던 것이다. 과연 그 새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추적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걸까? 과연 새 조각상은 어디에, 혹은 누구에게 있을까? 누가 새 조각상을 손에 넣을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일스와 서스비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의 사건으로 출발하여 점점 더 놀라운 사건으로 발전하는 것이나, 마치 돋보기로 뚫어지게 보듯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섬세히 묘사하는 것은 은근 독특하다. 이런 게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만의 모습 아닌가 싶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러한 점이 과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 아니면 거부감을 일으키고 따분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었다. 내가 탐정 소설을 깊이 사랑하게 된 게 <소년탐정 김전일> 때문이었고, 그 이후 - 사건이 벌어지고 독자들에게 사건을 풀 힌트를 던져주며 탐정은 기막힌 두뇌와 감각적인 관찰력 등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은 의외의 인물인데다가 범인의 사연 또한 기구한 형태의 이야기를 접한 후 - 나에게 '탐정 소설은 이래야 재밌다'는 인식이 박힌 게 사실이다. 거기에 반전이나 로맨스 요소 같은 게 있으면 금상첨화지.

그래서 「장미의 이름」을 보며 의아했었고, 「벤슨 살인사건」을 보고서는 실망했었다. 그 느낌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초반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 의지는 강한데 스스로 사건에 깊이 관여하려고 하지는 않아보이는 거만한 탐정의 모습,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사건의 매력 반감, 그대로 드러나버리는 범인과 사건의 진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사건을 풀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전혀 던져주지 않는 무미건조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수긍하게끔 만든다. '와우, 그랬어?'라는 감탄은 끝내 나오기 힘든 것이다.

머, 각자 나름대로 취향이 있듯 탐정 소설(혹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세부 장르가 따로 있을 게다. 그냥 나에게는 그랬다는 것이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련다. 그나저나 샘 스페이드, 참 샘나면서도 약간 띠껍네. 외모를 이용해 여자들을 유인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도박을 거는 무모함까지- 나는 이런 완벽하고 운 좋은 탐정보다는 약간 허술하면서도 인간미 있는 탐정이 더 좋은데. ^^;

아무튼 '최고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라는 평가에 조금의 기대와 약간의 불안을 안고 독파한 작품인데, 역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적중한 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죽을뻔한 일을 겪고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플릿크래프트' 이야기를 유려하게 할 줄 아는 샘 스페이드여, 당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짧은 인생에 그렇게 자신의 두뇌와 외모 그리고 무모한 용기만 믿지 말고 좀 더 사건을 부드럽고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연구해보지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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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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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수작이 추리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을 뒤흔들었다. 소리소문없이 인기를 끄는 성향답게 어느새 혜성처럼 나타난 작품은 바로 「용의자 X의 헌신」이다. 자, 과연 용의자 X란 누구고 그의 헌신은 어떻게 표현될까?

생각보다 의외로 빨리 용의자 X는 밝혀진다. 그래서 보통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맞추는 추리소설과는 달라서 조금은 맥이 빠진다. 하지만 범행을 감추려는 범인의 심리와 행동이 이 소설의 백미다. 이 점에 주목해서 보면 작품은 정말 빛을 발한다.

딸 '미사코'와 함께 단란히 살며 벤덴데이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는 '야스코'. 평범하지만 안정적인 그녀의 일상에 또다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가 있으니, 바로 전남편 '도미가시'다. 뻔하게도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 전남편이 야스코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급기야, 집에까지 찾아온 도미가시를 딸과 협력해 죽이고 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누워있는 건 시체. 이 상황을 어찌할꼬!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바로 옆집 수학 선생 '이시가미'다. 야스코에 반해 매일 도시락 가게를 들리는 이시가미. 그에게는 이번 사건이 오히려 일생에 한번 올까말까한 기회이다. 결국 이시가미는 스스로 용의자 X가 되어 범행 은폐와 시체 처리를 돕는다-

당연히 시체는 발견되고, 형사들은 뭉개진 얼굴과 상처난 지문에도 불구하고 용케 시체가 도미가시임을 알아낸다. 그리고는 유력한 용의자인 야스코를 탐문하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그녀를 범인이라 몰기에는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다. 바로 천재 이시가미가 미리 모든 준비를 지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이 완벽을 기하려 해도 세상은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뜻밖에 형사 '구사나기'의 친구이자 이시가미의 동창인 또 한 명의 천재 '유가와'가 사건을 파헤치고, 야스코에게 호감 있는 남자 '구도'가 나타나면서 이시가미가 짜낸 완벽해보이는 계획은 조금씩 흐트러지는데.. 과연 용의자 X의 헌신은 이대로 무너질 것인지?!

아- 단순하고도 강력하도다! 400쪽에 이르는 분량 가운데 사건은 딱 하나가 벌어진다. 그러나 이 사건을 길게 가져가는 작가의 역량이 참 대단하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과 비밀에 싸여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정말 타에 추종을 불허한다. 지키려는 자드러내려는 자, 감추려는 자밝혀내려는 자의 두뇌 및 감정 싸움이 볼만한 것이다.

그리고 점점, 의문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드러나는 진실들은 무척 흥미롭게 다가온다. 용의자 X의 과거는 어떠한가, 왜 용의자 X는 헌신을 하게 되었는가, 용의자 X의 헌신은 어디까지인가, 유가와는 어디까지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것인가, 유가와와 이시가미이고 누가 승리할 것인가, 구사나기를 비롯한 형사들이 놓치고 있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등이 한꺼풀씩 벗겨지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 

그것은 어쩌면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경험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헌신이 이해가 가고, 동감이 간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방법은 틀렸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한다면 어떻게 하는게 옳은지, 왜 그토록 냉정하고 머리 좋은 그가 생각해내지 못했는지 참으로 안타깝다. 미사코를 자신이 맡으면 되지 않았겠는가..

엄청난 반전이 가슴을 짓누르는 작품, 「용의자 X의 헌신」. 이러한 신선하고 독특한 방식의 추리소설 또한 언제나 환영이다. 일본 추리문학의 세계는 어디까지일지, 참으로 경이롭고 존경스러우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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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 - 살림의 그물 11
E.F. 슈마허 지음, 골디언 밴던브뤼크 엮음, 이덕임 옮김 / 그물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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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많이 어렵다. IMF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는다고들 한다.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붙었고, 주가와 환율은 들락날락하며, 물가는 오르는데 지갑은 계속 빈다. 시름이 깊어지고 한숨이 는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수입이 없으니 지출을 줄일 수 밖에. 그리고 여기, 그러한 절제를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이 결국은 더 좋다고 주장하는 문구들을 모은 작품이 있다. 갸우뚱해지지만 흥미를 끄는 제목을 지닌 글, 「자발적 가난」이다.

작품은 마치 수기집 식으로 때론 한 문장, 때론 짧은 단편식의 글들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저자도 한 명이 아닌, 저명한 작가에서부터 예술가, 철학가, 신앙인 등 다양하다. 그들은 나름의 삶의 철학을 유려하고 간결한 글귀로 풀어내는데, 생각을 모아보면 하나로 통한다. '덜 풍요로운 삶이야말로 더 큰 행복을 준다', 즉 'Less is More' 라는 것이다.

얼핏 느끼기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치열한 경쟁 속의 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가난해지라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 누가 스스로 버리고 욕망을 억제하겠는가? 그러나 계속 글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며, 정말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게 만드는 제안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주변에 '정말 필요하지는 않은' 게 얼마나 많은가? 지금 내 주위만 둘러봐도 먼지 쌓인 슬리퍼가 있고, 마음에 안 들어 넘겨줄 옷들이 쌓여 있으며, 잘 쓰지도 않는 모자가 세 개나 있다. 이게 다 부질 없는 욕망 때문에 생긴 덧없는 것들이지. 그런게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고나 할까? 인간의 욕망은 끝없어서 계속 더 좋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만, 조금만 돌이켜보면, 그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잠시라도 생각해보면, 그래서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과감히 내려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분명 결코 쉽지는 않다. 나 자발적으로 가난해질 때 남들은 쭉쭉 치고 올라가는데, 그거 다 감당하고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을까? 워낙 마음대로 사는 나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돈 쓰기 좋아하는데-_-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욕망 충족과 마음가짐에 따른 만족의 구분도 애매하고. 하지만, 책을 보면서 그래도 꼭! 평생의 가치로 생각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 마치 끊임없이 remind하고 싶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절제와 자연스러운 상태를 통한 행복과 평화를 역설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던 듯. 「무소유」가 그랬고, 「지구별 여행자」가 그랬으며,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도 같은 맥락이었고, 「오래된 미래」는 그 자체로 사례를 보여줬다. 그럼에도 잘 감지하지 못했는데, 확고히 한 길을 주장하는 이 작품 덕분에 다시 돌아보게 되고 새로이 짜보는 계기가 되어서 좋고 감사하다.

썩 좋은 곳에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부족하지 않게 살 기회도 주어졌고.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부족하지 않은 것이 넘쳐 너무 과하게 되지는 말았으면 한다. 적당히 만족할 줄 아는 삶, 한번 더 생각해보고 필요하지 않은 것- 쓸데 없는 욕망에서 우러나온 것은 과감히 내치는 삶을 살고 싶다. 더 얻기보다는 더 베풀고, 더 지니기보다는 더 나누고 싶다. 인간은 마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스스로 '자발적 가난'이라는 가치의 삶을 통해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길 원한다. 

 
그야말로,
자발적 가난은 마음의 평화
라는 신념을 지키며 산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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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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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인이 안된 나에게 경이로운 충격과 감동을 안겨줬던 작품,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 추리라는 게 이렇게나 흥미진진한줄 몰랐고, 사람들의 심리 게임이 흥분과 땀을 가져다주었으며, 저마다의 살인 동기는 때론 가슴을 에이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거기에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 특유의 유머와 재치 그리고 냉철함까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작품이었기에 만화.소설.퀴즈 등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나였다.

그런 김전일 시리즈가 2부도 흐지부지 끝나서 너무 아쉽던 찰나, 어둠 속 한줄기 빛 같이 접한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김전일이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라고 그토록 외치던 그 '할아버지'가 맹활약하는 추리소설이 국내에 신판 출간되었다는 소식! 그것도 제목부터가 피를 부르는 「이누가미 일족」이다! 1976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대박을 터트렸다고까지 하니, 아- 한치도 주저할 수 없었다.

사건은 말 그대로 이누가미 가문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당대의 저명한 제직공이었던 '이누가미 사헤' 별세 후, 유산을 놓고 그 자식들과 손자·손녀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혈전과 살인, 그리고 각종 증거들. 작품은 그렇게 정통 추리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어수룩하지만 머리 하나만은 비상한 그는 가문 주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건 해결에 몰두하는데..

유언을 관리하던 변호사가 죽임을 당하면서 가문에는 회오리가 몰아친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헤 옹의 유언, 그 유언을 둘러싼 사람들은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에 바쁘다. 그 누구든 살인동기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둘 죽는 사람들.. 그것도 가문의 가보라 불리는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에 의미심장한 상징이 담겨 나타나는데- 

사헤 옹의 서로 배다른 첫째딸 '마츠코', 둘째딸 '다케코', 셋째딸 '우메코'. 그리고 마츠코의 아들 '스케키요', 다케코의 남편 '도라노스케', 아들 '스케타케'와 딸 '사요코', 우메코의 남편 '고키치', 아들 '스케토모'. 나중에 알려지는 사헤 옹의 생전 연인 '아오누마 기쿠노'와 그 아들 '시즈마'. 사헤 옹이 어릴 적 큰 은을 입었던 '노노미야 다이니' 가문의 손녀 '다마요', 그녀의 영원한 보디가드 '사루조'.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야마다 산페이'. 마츠코의 거문고 스승 '미야카와 고킨'.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 진범은 누구일까?!

아- 역시, 역시, 역시!! 내 입에서 '역시'라는 감탄사가 끊임없이 나왔다. 작품에는 내가 <김전일> 시리즈에서 느꼈던 그 모든 감흥과 희열과 탄성 그 모든 게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욱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만화가 아닌 글만으로 이렇게 두꺼운 추리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한 힘은 그 자체로도 경외스러울 뿐.

도대체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는 어떤 재주와 능력을 지녔길래 이리 완벽한 추리소설을 쓴단 말인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엄청난 역사적 굴레나 획기적 사건은 없지만, <김전일> 특유의 매력이 작품에서도 되살아나 무척 반가웠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독특한 살인방법, 도저히 범인이 보이지 않는 완전범죄형 살인들, 그리고 갖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물들과 말들과 행위들.. 이런 것이 어무러져 하나의 가치있는 작품이 완성되었으리라 본다.

범인은 대충 예상은 했으면서도 보고나니 더 놀랍다. 완벽한 해답은 범인을 맞추는 것보다 왜 그 사람이 범인인가를 꼼짝 못하게 설명할 줄 아는것인데, 그런 점에서 코스케는 하지메보다 덜 밀어붙이면서 범인 스스로 죄를 자백하게끔 하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그러한 점이 이 탐정한테 무척 끌린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이 칭찬해야할 것이 시점 활용의 극대화와 맛깔나는 번역이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 작가는 노골적으로 탐정이 출연한 작품을 늘어놓는가 하면 사람들 마음 속을 헤집어 풀어놓기도 하고 독자가 되어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제3의 주체가 되는 작가(혹은 서술자 혹은 극중 캐릭터)의 능수능란함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러한 맛과 멋을 한국어번역에서 잘 살린 번역가에게도 무궁한 영광을 표하는 바ㅡ

아무튼 참 엽기에 가까운 기구한 운명들이 모여 죽음의 화음을 자아내고, 결국 진실과 진실이 엇갈리고 엇갈려 최악의 결과까지 얻은 상황들은 좀 많이 안타깝다. 극 중 서술자가 얘기했지만 살인도, 방어도 다 한순간인듯 싶다. 그때 그 사람이 말을 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이 좀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긴 이미 일을 저지르고 난 후의 후회야 아무 필요 없지만-

오랜만에 정통추리극에 푹 빠져서 즐겁고 짜릿했던 시간이었다. 올해가 한국 추리소설사 100주년이라는데, 일본에 비하면 기도 제대로 못 편채 아직 먼 것 같다. 요새 재밌는 추리소설은 내로라하면 다 일본 작품들이다. 무언가 사람의 호기심과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참신한 소재와 작품 구성이 필요할듯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작으로 길이 남을 이 「이누가미 일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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