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 일족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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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인이 안된 나에게 경이로운 충격과 감동을 안겨줬던 작품, <소년탐정 김전일> 시리즈. 추리라는 게 이렇게나 흥미진진한줄 몰랐고, 사람들의 심리 게임이 흥분과 땀을 가져다주었으며, 저마다의 살인 동기는 때론 가슴을 에이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거기에 김전일-긴다이치 하지메 특유의 유머와 재치 그리고 냉철함까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던 작품이었기에 만화.소설.퀴즈 등의 작품을 모두 섭렵한 나였다.

그런 김전일 시리즈가 2부도 흐지부지 끝나서 너무 아쉽던 찰나, 어둠 속 한줄기 빛 같이 접한 소식이 있었으니 바로 김전일이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라고 그토록 외치던 그 '할아버지'가 맹활약하는 추리소설이 국내에 신판 출간되었다는 소식! 그것도 제목부터가 피를 부르는 「이누가미 일족」이다! 1976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대박을 터트렸다고까지 하니, 아- 한치도 주저할 수 없었다.

사건은 말 그대로 이누가미 가문을 중심으로 벌어진다. 당대의 저명한 제직공이었던 '이누가미 사헤' 별세 후, 유산을 놓고 그 자식들과 손자·손녀들, 그리고 주변 인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물고 물리는 혈전과 살인, 그리고 각종 증거들. 작품은 그렇게 정통 추리 형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어수룩하지만 머리 하나만은 비상한 그는 가문 주변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사건 해결에 몰두하는데..

유언을 관리하던 변호사가 죽임을 당하면서 가문에는 회오리가 몰아친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헤 옹의 유언, 그 유언을 둘러싼 사람들은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유산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기에 바쁘다. 그 누구든 살인동기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둘 죽는 사람들.. 그것도 가문의 가보라 불리는 '요키(도끼)', '고토(거문고)', '기쿠(국화)'에 의미심장한 상징이 담겨 나타나는데- 

사헤 옹의 서로 배다른 첫째딸 '마츠코', 둘째딸 '다케코', 셋째딸 '우메코'. 그리고 마츠코의 아들 '스케키요', 다케코의 남편 '도라노스케', 아들 '스케타케'와 딸 '사요코', 우메코의 남편 '고키치', 아들 '스케토모'. 나중에 알려지는 사헤 옹의 생전 연인 '아오누마 기쿠노'와 그 아들 '시즈마'. 사헤 옹이 어릴 적 큰 은을 입었던 '노노미야 다이니' 가문의 손녀 '다마요', 그녀의 영원한 보디가드 '사루조'.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남자 '야마다 산페이'. 마츠코의 거문고 스승 '미야카와 고킨'.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 진범은 누구일까?!

아- 역시, 역시, 역시!! 내 입에서 '역시'라는 감탄사가 끊임없이 나왔다. 작품에는 내가 <김전일> 시리즈에서 느꼈던 그 모든 감흥과 희열과 탄성 그 모든 게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욱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만화가 아닌 글만으로 이렇게 두꺼운 추리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한 힘은 그 자체로도 경외스러울 뿐.

도대체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는 어떤 재주와 능력을 지녔길래 이리 완벽한 추리소설을 쓴단 말인가?! 정말 놀랍기 그지없다. 엄청난 역사적 굴레나 획기적 사건은 없지만, <김전일> 특유의 매력이 작품에서도 되살아나 무척 반가웠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독특한 살인방법, 도저히 범인이 보이지 않는 완전범죄형 살인들, 그리고 갖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물들과 말들과 행위들.. 이런 것이 어무러져 하나의 가치있는 작품이 완성되었으리라 본다.

범인은 대충 예상은 했으면서도 보고나니 더 놀랍다. 완벽한 해답은 범인을 맞추는 것보다 왜 그 사람이 범인인가를 꼼짝 못하게 설명할 줄 아는것인데, 그런 점에서 코스케는 하지메보다 덜 밀어붙이면서 범인 스스로 죄를 자백하게끔 하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그러한 점이 이 탐정한테 무척 끌린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이 칭찬해야할 것이 시점 활용의 극대화와 맛깔나는 번역이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게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 작가는 노골적으로 탐정이 출연한 작품을 늘어놓는가 하면 사람들 마음 속을 헤집어 풀어놓기도 하고 독자가 되어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도 한다. 작품 속 인물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제3의 주체가 되는 작가(혹은 서술자 혹은 극중 캐릭터)의 능수능란함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러한 맛과 멋을 한국어번역에서 잘 살린 번역가에게도 무궁한 영광을 표하는 바ㅡ

아무튼 참 엽기에 가까운 기구한 운명들이 모여 죽음의 화음을 자아내고, 결국 진실과 진실이 엇갈리고 엇갈려 최악의 결과까지 얻은 상황들은 좀 많이 안타깝다. 극 중 서술자가 얘기했지만 살인도, 방어도 다 한순간인듯 싶다. 그때 그 사람이 말을 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이 좀만 더 신중했더라면.. 하긴 이미 일을 저지르고 난 후의 후회야 아무 필요 없지만-

오랜만에 정통추리극에 푹 빠져서 즐겁고 짜릿했던 시간이었다. 올해가 한국 추리소설사 100주년이라는데, 일본에 비하면 기도 제대로 못 편채 아직 먼 것 같다. 요새 재밌는 추리소설은 내로라하면 다 일본 작품들이다. 무언가 사람의 호기심과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참신한 소재와 작품 구성이 필요할듯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작으로 길이 남을 이 「이누가미 일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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