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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생일,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연을 쫓는 아이」. 아동소설인가? 조금은. 성장소설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지.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최초의 영어 소설'이라는 소개답게, 책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생활 모습,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인이 경험하고 바라본 본국과 타국의 세계가 생생히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좀 더 특별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1960년대 아프가니스탄. 평화가 감도는 수도 카불에 살고 있는 '아미르'와 '하산'은 독특한 관계로 엮이며 우정을 쌓아간다. 둘은 단짝으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정말 절친한 사이지만, 친구이기 이전에 둘은 주인과 하인의 관계인 것. 파쉬툰인이자 수니파인 아미르가 주인, 하자라인이자 시아파인 하산이 하인인 것이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에게 신분 관계가 뭐가 중요하리. 함께 놀고 얘기하며 같이 있는 자체로 마냥 좋은걸.
그러나 세상은 변해가고, 현실은 무서우며, 그래서 마음대로 살기 쉽지 않다. 1973년 아프가니스탄은 군주제의 종말과 공화국의 시작을 알렸다. '아세프'는 아미르와 하산을 놀리며 하산을 경멸한다. 아미르의 마음은 복잡하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그래도 꿋꿋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1975년의 연날리기 대회날, 모든 게 날아가버렸다. 대회에서 우승한 아미르 그리고 끊은 연을 쫓아가는 하산. 제일 기쁜 날인줄 알았다. 그렇지만- 사건은 벌어지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으며, 아미르는 더 이상 하산의 미소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괴롭다. 아미르의 선택에 공감은 안 가지만 이해는 간다. 결국 그렇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지나가고, 아미르는 스스로 하산을 떠나보냈으며, 사랑하는 고국마저 떠나게 된다. 1978년 공산당 쿠데타, 그리고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더 이상 살기 힘들게 된 조국을 떠나 아미르와 아버지 '바바'는 미국으로 망명한다. 그리고 시작되는 아미르 인생 제 2막-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때보다는 힘들고 덜 행복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기에, 아미르는 열심히 바바와 함께 살아간다. 평생의 꿈인 작가로서의 길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만나면서 희망이 다시 싹튼다. '소라야'를 만나 사랑에 눈뜨게 된 것.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바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낸다. 그리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바바의 죽마고우였던 '라힘 칸'이다. 내용은 더 놀랍다. 하산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이로써 아미르 인생 제 3막이 시작된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성장소설로서의 매력과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어렸을 적의 순수한 세계가 초반을 주름잡았다면, 사건 이후의 주인공의 변화가 중반을 지휘하고, 또 한번의 인생 변화를 꿈꾸는 이야기가 후반을 꽉 잡고 있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으니 거침없이 쭉 읽힌다. 그것도 남의 일대기를 훔쳐보고 싶은 관음증의 하나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할말은 없다만..ㅎ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한 사람의 인생 역정 속에, 당시의 사회와 역사가 녹아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는 신분 계급, 그 계급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계는 슬프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결국 사람의 인생까지 망쳤으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하긴 어쩌면 그래서 이야기가 소설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또한 가혹한 역사 앞에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도 고스란이 담겨 있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라는 변해가는데, 설량한 국민은 무슨 죄란 말인가... 결국 소련을 피해 미국으로 가서 사는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이렇게 역사를 바탕으로 순수함과 양심, 사죄와 용서라는 아름다운 주제가 잘 맞물려 떨어진 게 이 작품의 묘미인 것 같다.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은 참 보기 좋았는데.. 아미르의 선택을 보면서 '한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고. 하긴, 그래도 선택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평생을 짊어질 마음이 있는 아미르는 그나마 낫지. 그러고보면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노력을 통해 완화시킬 수는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덕분에 순수함과 속죄의 힘을 느낄 수 있어서 참 따뜻하고 훈훈했다. 또한 그동안 몰랐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생활상 등 여러가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참 기쁘다. 역시 무엇이든 본질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배경과 진실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인이 말하는, 생생한 현장처럼 느껴지는 문구들은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포인트다.
이 작품을 읽은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감상을 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만간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니, 참 반갑다. 내 머릿 속으로만 그려보던 아미르와 하산,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이 어떻게 재현될지 자못 궁금하다. 과연 영화에서도 그 말을 들으면 마음이 짠해질까?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