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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가시
이나미 지음 / 자인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곧 있으면 러시아 가는 마당에, 러시아 생활에 관련된 책 한 권 보고 가면 좋을 듯 싶어서 보게 된 책. 러시아어학원 선생님께서 강추하신 책이기도 하다. 작가 이나미가 쓴 「얼음가시」이다.
얼음가시는 소설이지만, 작가가 직접 러시아에서 유학을 하고 온 체험이 고스란이 녹아있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이야기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자오선', '바비에 레토', 그리고 '얼음가시'.
먼저 '자오선'. '준서'는 러시아의 국립영화예술대학에 다니면서 영화인의 길을 꿈꾼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기에 그는 너무나 가난하다. 급기야 몰래 휴학하고 이혼한 아내의 덕을 보면서까지 비참하게 기숙사에서 살아가지만, 기숙사의 러시아인들은 매몰차고 냉정하기 그지없다. 사감 '베라'는 매일 준서를 다그치고, 절망은 그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는데..
'바비에 레토'는 사랑의 아픔 속에서 하숙집 주인노파 '레나'와 살아가는 여자 '은엽'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옛 사랑의 남자가 자신을 보러 찾아오고, 졸업논문까지 내야 하는 은엽의 마음은 어지럽기만 하다. 그는 은엽의 마음을 후벼 파고, 은엽은 추억을 회상하며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마지막 '얼음가시'는 '노준'의 이야기이다. 러시아 유학생활 동안 환멸을 느끼는 그. 처음에는 한국인 동지들과 어울리지만 이내 가식과 가면, 위선으로 얼룩진 관계는 그를 더욱 외롭게 하는데..'올가'와의 하룻밤, 노인 '미하일'과의 알 수 없는 유대감은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소설은 서로 다른 세 인물의 러시아 생활 모습을 통해서 각각의 생각과 느끼는 점 등을 여실히 드러낸다. 참.. 세 명 다 쓸쓸하고 외롭고 행복해보이지 않는 것이 안스럽다. 백야에다 추운 기후, 쌀쌀맞고 냉정한 모스크비치들, 게다가 부딪히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현실 등이 자연스레 인물들을 고독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들의 힘겨운 삶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것들을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힘들어도, 외로워도, 어떻게든 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그래서 꿈을 펼쳐야 하기에, 주저앉아 절망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고통의 순간을 잘 극복하여 자기 성찰로 나아가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곧 러시아를 가는 나로서는 러시아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나는 단체로 가고 잠깐 있으며 학교의 지원을 받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들처럼 힘들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느낀 것 그들이 러시아에서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나도 마음껏 겪고 싶다. 조금은 마음의 대비도 해두고...
춥고, 쌀쌀맞고, 외롭더래도 결과는 나중에 말해준다.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상대적인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