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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의 매 ㅣ Mr. Know 세계문학 44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흔히 '명작', '수작', 또는 '최고봉'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고유의 장르에서 최고라고 칭해지는 작품은 그 가치를 더한다. 탐정 소설에도 세세하게 놓고 보면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그 중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 장르의 으뜸이라 칭송받는 작품이 있다. 바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다.
모든 탐정 소설이 그렇듯, 그의 작품에서도 범상치 않은 탐정이 나온다. 바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순발력과 대범함 그리고 열의로 똘똘 뭉친 탐정 '샘 스페이드'다. 조수 '에피 페린', 그리고 동료 '마일스 아처'와 함께 일하는 그에게 어느날 '원덜리'라는 여인이 찾아와 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래서 마일스가 몰래 미행하기로 했는데, 그날 밤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바로 마일스가 살해된 것이다! 게다가 원덜리가 동생과 같이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한 '서스비' 또한 살해당했다. 과연 두 사람을 죽인 인물은 누구일까? 이런 가운데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새로운 의뢰인 '조엘 카이로'가 찾아와 조그만 새의 조각상을 찾아달라며 샘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나 샘이 누구던가, 천하의 콧대높은 탐정 아닌가! 결국 카이로를 잘 구슬려 원덜리의 정체도 알아내고 새 조각상 찾기에도 나서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결국 쫓고 이어져 다다르게 된 인물, '거트먼'. 그는 바로 17년 동안 그 새 조각상을 찾아다닌 인물이었다. 그렇다. 새 조각상이야말로 제목 그대로 '몰타의 매'였던 것이다. 과연 그 새가 뭐 그리 대단하길래 추적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걸까? 과연 새 조각상은 어디에, 혹은 누구에게 있을까? 누가 새 조각상을 손에 넣을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일스와 서스비를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의 사건으로 출발하여 점점 더 놀라운 사건으로 발전하는 것이나, 마치 돋보기로 뚫어지게 보듯 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를 섬세히 묘사하는 것은 은근 독특하다. 이런 게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만의 모습 아닌가 싶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러한 점이 과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 아니면 거부감을 일으키고 따분하게 느껴지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었다. 내가 탐정 소설을 깊이 사랑하게 된 게 <소년탐정 김전일> 때문이었고, 그 이후 - 사건이 벌어지고 독자들에게 사건을 풀 힌트를 던져주며 탐정은 기막힌 두뇌와 감각적인 관찰력 등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은 의외의 인물인데다가 범인의 사연 또한 기구한 형태의 이야기를 접한 후 - 나에게 '탐정 소설은 이래야 재밌다'는 인식이 박힌 게 사실이다. 거기에 반전이나 로맨스 요소 같은 게 있으면 금상첨화지.
그래서 「장미의 이름」을 보며 의아했었고, 「벤슨 살인사건」을 보고서는 실망했었다. 그 느낌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초반에 일어나는 살인 사건, 의지는 강한데 스스로 사건에 깊이 관여하려고 하지는 않아보이는 거만한 탐정의 모습,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사건의 매력 반감, 그대로 드러나버리는 범인과 사건의 진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사건을 풀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전혀 던져주지 않는 무미건조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아, 그렇구나'하고 그냥 수긍하게끔 만든다. '와우, 그랬어?'라는 감탄은 끝내 나오기 힘든 것이다.
머, 각자 나름대로 취향이 있듯 탐정 소설(혹은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세부 장르가 따로 있을 게다. 그냥 나에게는 그랬다는 것이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련다. 그나저나 샘 스페이드, 참 샘나면서도 약간 띠껍네. 외모를 이용해 여자들을 유인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면서도 도박을 거는 무모함까지- 나는 이런 완벽하고 운 좋은 탐정보다는 약간 허술하면서도 인간미 있는 탐정이 더 좋은데. ^^;
아무튼 '최고의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이라는 평가에 조금의 기대와 약간의 불안을 안고 독파한 작품인데, 역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적중한 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죽을뻔한 일을 겪고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플릿크래프트' 이야기를 유려하게 할 줄 아는 샘 스페이드여, 당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짧은 인생에 그렇게 자신의 두뇌와 외모 그리고 무모한 용기만 믿지 말고 좀 더 사건을 부드럽고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공부하고 연구해보지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