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 Sex, Lies, and Video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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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면, 아니 이제 사회가 발달하고 인간의 성장 속도도 빨라져서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눈뜨게 되는 것. 하지만 막상 이성 간에 말하기는 정말 꺼려지는 것. 그렇지만 어느 순간(?)을 넘으면 자연스런 담론이 오갈 수 있는 것. 과연 뭘까? 그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인간 내면 깊숙이 내재된 욕망인 '섹스(Sex)'다. 

혹자는 더럽고 불결한 것이라 말하고, 혹자는 사랑의 완성이라 말하며, 혹자는 삶의 희망이자 소통의 최고점이라고까지 말하는데.. 이러한,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을 담담히 그러나 섹시하게 담아낸 영화가 있다. 바로 1989년 제4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2001년 제73회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차지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데뷔작이어서 더욱 화제를 몰고 왔던 작품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당신은 영화 제목만 보고 어떠한 상상을 했는가? 무언가 굉장히 야한 베드신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베드신 장면을 비디오로 찍는? 땡! 영화는 일반 사람들의 기대(?)를 보기좋게 빗겨간다. 대신 그보다 더 '은밀한' 섹스의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섹스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왜 사람은 섹스를 하고, 섹스는 왜 터부시되며, 왜 특히 여성은 수동적인 입장이어야만 하는지, 왜 섹스에 대한 욕망은 남성이 더 많다고 여겨지는 건지, 섹스는 그냥 육체적 몸놀림에 불과한지 등이 영화 내내 다루어진다. 그것은 마치 섹스에 대한 철학 영화 같고, 때로는 그저 그런 섹스에 관한 삼류 영화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가 '섹스'라는 화두를 수면 위로 들어올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제와 섹스하는 남편이라는 인물을 설정했겠는가? 여성들의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비디오로 찍는 남자가 주인공이 되었겠는가? 남편의 친구에게 자신의 성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는 여자가 출연할 수 있었겠는가? 참 신선한 충격이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웠다.

섹스를 하는 각자의 목적이 다른 것도 인상적이다.

남편 '존'은 성적 욕망 부분에서 아내가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처제로부터 발견하여 섹스를 한다.
처제 '신시아'는 잘 나가는 언니로부터 느끼는 열등감을 형부와의 섹스를 통해 극복하려고 그 짓을 한다. 
아내 '앤'은 남편이 자신과 같이 섹스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마침 만난 남편의 친구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새로운 세계로의 소통을 위해 그와 섹스하려 한다.
친구 '그레이엄'은 어느 순간 불능이 되어 오직 성생활을 고백한 여성들을 녹화한 테이프를 보면서만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앤의 유혹과 맞딱뜨리게 되는 상황이다.

이토록 섹스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 있어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게 참 독특했다.

머, 아직 섹스에 관해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것도 많고, 고정관념이나 오해도 많다. 체위나 자위에 관해서도 그렇고,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해서도 그렇다. 흠.. 난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그것에 대해 왈가불가할 수는 없겠다. 다만 여성의 성적 욕망이 남성의 그것보다 적다는 게 사실인지와, 이성과는 섹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기가 정말 힘든 건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다.

아무튼 여성들의 노골적이어서 더 솔직한 섹스가 화두가 된 『미쓰 홍당무』, 그리고 섹스를 통한 소통을 추구한 『숏버스』와 닮은듯 다른듯한 모습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이런 파격적인 영화가 2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8일 만에 썼다는 소더버그 감독, 참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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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트 가드너 - The Constant Gard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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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신나게 웃고 떠들며 즐길 수 있는 코믹 영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판타지 영화, 미래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 SF영화, 아름답고 눈물겨운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성적 욕망을 과감히 드러낸 에로 영화, 그리고 사실을 위주로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영화 등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일반 할리우드 영화가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영화의 힘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콘스탄트 가드너』가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영국 외교관 '저스틴'에게는 아리땁고도 열정적인 인권운동가 '테사'가 있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저스틴의 일 때문에 같이 아프리카 케냐로 가게 되는데..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곧 테사의 힘든 삶과 저스틴이 짊어질 버거운 운명의 서곡이었을 줄을.

평범하던 어느 날, 저스틴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든 것이다. 바빠보이던 아내가 동료 '아놀드'와 일 때문에 출장을 간 뒤 며칠 후 사망했다는 소식은 저스틴을 뒤흔들고, 도저히 납득이 안 되어 아내가 한 일들을 다시 돌아보며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그렇다. 테사는 케냐에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일을 바로잡으려다 거대한 힘에 의해 사라진 것이었다.

그 거대한 힘은 바로 막강 제약회사 '쓰리비'였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일이란 에이즈에 걸린 수백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불법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판 전 임상 실험 형태로 쓰리비는 약을 투여했고, 아무 것도 모르는 환자들은 그저 약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개같은 현실을 가만히 못봐주는 테사가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고, 어쩌면 쓰리비 측에서 테사를 막은 것도 어쩔 수 없었을 게다.

아무튼 저스틴은 자신의 직책까지도 포기하며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다가갈수록 높은 벽을 느끼면서도 추악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영국 정부 관료까지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가히 충격이다. 그래서 어쩌면 저스틴의 결심은 더욱 이해가 간다.

하.. 이게 정말 사실인가 싶다. 다행히도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누가 알겠는가.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을 줄. 참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고, 기업 이익을 위해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일이 벌어지다니, 아직도 분노가 치민다.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 해서 약간 과식한 게 보이지만, 추악한 권력의 실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현실, 그리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개인 또는 NGO의 눈물겨운 노력까지 표현되어서 더 괜찮았던 듯. 정말이지 아프리카 국가의 에이즈 환자들은 약은 있는데 살 돈이 없는 현실에 목숨을 연명하며 사는 처지다. 그런 사람들에게 약을 파는 제약회사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 소비자일 뿐인가?! 게다가 정부는 겉으로는 도와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 실속을 챙기는 황당한 짓을 한다. 그러한 은폐 사건을 파헤치려는 개인은 죽어나고, NGO는 힘겨워한다. 이런 모습들이 버무러져 나타나니 진짜 남 일이 아닌 것만 같다. 

분명 영화는 파급력도 대단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을 게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하는 거대 제약회사들, 중간에서 주선을 담당하는 선진국 관료들, 실제로 에이즈에 걸렸거나 걸릴 위험이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 에이즈 치료제가 제대로 잘 쓰이나를 감시하는 개인 및 NGO들에게 참 시사하는 바가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에이즈로 인해 신음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단기적으로는 값싸고 질좋은 에이즈 치료제가, 장기적으로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는 콘돔, 교육 및 예방제가 절실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제약회사나 정부에 악마의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장 큰 시장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양심을 지키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질 것은 분명하다. 그들을 감시하는 개발 혹은 인권NGO는 너무 버거운 상대 앞에 절망하기 쉽다.  


제발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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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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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행복을 느끼면 그야말로 좋고, 느끼지 못하면 인생이 참 힘들어지고 슬퍼진다. 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언제 가장 행복할까? 사람마다 물론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사랑할 때야말로 행복하다고 말할 듯하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모습을 잔잔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그려낸 작품이 바로 허진호 감독의 『행복』이다.

몸이 아파 요양원에 간 영수. 부모를 여읜 채 8년간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밝게 살아간 은희. 두 사람의 만남은 차라리 운명이었다. 공기는 맑고, 마음은 편안하고- 그렇게 두 사람의 가슴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만의 삶이 시작된다. 같이 살자는 은희의 말에 행복을 느낀 영수는 집을 차리고, 그렇게 1년 동안의 행복한 인생은 꿈만 같이 흘러가는데= 그러나 이미 서울맛을 보고 온 영수에게 시골의 소박함과 은희의 순수함은 빛을 잃어갈 뿐이다. 그래서 결국 터진 한 마디, '제발 좀 헤어지자고 말 좀 해줘'..

분명 천하의 나쁜 남자 영수이지만, 솔직히 이해가 간다 머리로는. 자신의 몸도 좋아지고 서울에는 친구들도 있는데 시골 생활이 지겨울만도 하지. 함께 있는 사람은 매일 아파서 오늘만 바라보고 말이지. 그래서 그렇게 떠날 만도 하지. 하지만 갔다가 자기 아프니까 다시 돌아오는 건 참.. 그렇드라.

그래도 인간인데 어떻하겠어.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 한없이 외로움에 못견뎌 싸우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걸. 욕망이 채워져 행복해지면 또 다른 욕망을 그리워하는 존재 또한 인간.

참, 허진호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지만. 다분히 현실적이어서 더욱 가슴이 멍들게 만드는 영화 같다. 평생 행복하기만 하면 인생이 무슨 재미겠어, 때론 힘들고 불행을 느낄지라도 그것을 이겨냈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끼는거지..라고 자위하며 사는 게 삶이라지만, 그래도 한없이 행복하게 지내고만 싶은걸-

행복한 순간과 행복하지 않은 순간을 절묘하게 그려낸 허진호 감독과, 연기가 아닌 생활을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 배우 황정민 임수정 공효진 김승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고보면,

사람의 인생이란 끊임없이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고,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일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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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 Watch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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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히어로물이야?' 잊을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영화 장르가 있다. 바로 (거대한 자본이 집중 투자되어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 히어로물. 평소에는 평범히 살다가 세상이 위기에 빠지자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 혹은 보통 인간들과 다르다는 생각으로 그들만의 세계를 꾸려 몰래몰래 인간과 접촉하는 정도? 로 여겨지는 게 바로 히어로 아닌가. 그냥 단순하게 아무 생각없이 보면 되겠지. 이 영화도 '~맨'으로 끝나니까 현란한 액션이나 기대해야겠다!

그런데, 얼라? 제대로 음울하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보통의 인간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따돌림 당하는 존재들이다. 아니면 닥터 '존 맨해튼' 같이 신적 존재로 추앙받기까지 한다. 인간들과 아주 동떨어지거나 아니면 인간들의 세계에 깊숙이 파고들거나. 거 참, 일반적인 히어로물을 조금씩 빗겨가네?!

히어로가 한 명이 아니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엑스맨』시리즈와 비슷한가? 그것도 조금 아닌 것 같네. 먼 히어로들이 그리들 심각한건지. 그냥 착한 일 좀 해주고 악당 물리쳐주면 될 것을. 근데 악당이 왜 안 나오지? 어라? 지네들끼리 싸우네? ㅋㅋ

무엇 때문에 싸우는고 하니,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인간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논의하는 거구나! 역시 히어로들이라 논의도 무시무시한 주먹으로 하는구나! ㅎㅎ 머야, 히어로가 죽기도 해? 감옥에도 가? 뭐니, 이게 먼 히어로야~

아.. 흠. 그래, 히어로가 뭐 따로 있나. 더 나은 인간 세상을 꿈꾸며 몸소 실천하는 모두가 다 히어로인게지. 그래, 영화 속 히어로들이 진정한 평화를 꿈꿨던 우리도 인간 세계에서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한번쯤 얘기해보자구!

컵에 물이 반절 남았어. 반절밖에 안 남았을까, 반절이나 남았을까?

반에서 1등을 했어. 기분이 좋았어. 반 친구들을 제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기쁜걸까, 내가 목표한 점수에 도달하다보디 어쩌다 1등이 되었고, 목표에 도달한 자체가 기쁜걸까?

9.11테러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었지. 부시는 (미국인들이 당한 것에 대한 복수 같지만 끝까지 아니라 우기며) 진정한 세계 평화를 내걸고 전쟁을 일으켰어. 잘한 짓일까, 잘못한 짓일까?

아무리 눈앞에 현실적인 평화가 펼쳐지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 방법 자체가 평화적이지 못하면 과연 그 과정으로 얻어지는 결과인 평화가 진정한 평화일까? 너와 내가 싸웠을 때, 제3자가 억지로 화해를 강요하는 것과 우리 둘이 스스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과,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바라보고, 바라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안개가 자욱할지라도, 안개를 걷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게 우리들의 몫 아닐는지. 얼마가 걸리든,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를 깊이 새기며,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이다-  

그 누구도 내 평화를 깰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먼저 평화를 깨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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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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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고 명작은 많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책이 발간되지만, 그 중에서도 영원토록 고전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진정한 작품은 점점 손에 꼽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그것도 매우 우연히 접하게 된 고전이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주홍색 글씨가 머 어떻길래? 하지만 이 작품 하나로, 주홍색 글씨는 죄를 지은 사람의 치욕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어버렸지..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보니 그 주홍글씨에는 많은 의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300쪽 가까이 되는 글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주홍글씨를 단 여인 헤스터 프린과 그녀의 딸 , 그리고 전남편 칠링워드 의사와 목사 딤즈데일의 외면과 내면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무슨 그리 할말이 많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사람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헤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 작품 「주홍글씨」는 주인공이 주홍글씨를 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인물들의 격동적인 심리, 그리고 변화하는 모습 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인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작품 속 이야기, 특히 주변 환경에 대한 기술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을 살짝 비켜나가면서 때론 비꼬는듯, 때론 신선한 충격을 가하듯 절묘하게 다가온다. 호손의 막강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글씨 하나가 한 인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가져온 막대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쏟아낼 얘기가 많지만, 우선 주홍글씨가 주요 인물들에게 끼친 영향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만약 헤스터 프린이 주홍글씨를 달지 않았다면, 그녀는 주홍글씨 'A'의 의미를 Adultery(간통)에서 Able(능력)과 Angel(천사)로 여겨지게 할만큼 한평생 낮은 자세로 선행을 베풀었을까? 
주홍글씨를 달지 않은 프린에게서 태어난 펄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프린이 주홍글씨만 안 달았어도, 딤즈데일 목사의 고통은 더할지 않았을까?
주홍글씨를 다는 처형이 없었다면, 칠링워드는 전부인 프린을 알아보지도 못했을테고, 그러면 그렇게 일생일대의 처절한 복수를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주홍글씨는 차라리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주요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그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그것은 프린의 선행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고, 목사의 선택에 경악하는 대중들의 심리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넘어가서, 과연 주홍글씨가 필요한 것일까..하는 것이다. 프린이 한 일을 사람들은 몹쓸 짓이라 여겨 죄를 부여하고 치욕적인 상처를 안겨줬다. 그러나 그 누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프린에게 정죄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엄격한 청교도 사회이니 그렇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에서 볼 수 있듯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행위는 차라리 웃음만 사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그 누가 프린보다 착하고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프린같이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그러나 잔잔한 파도같이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 사람이 누가 있나. 그래도 한번 틀어박힌 관념은 무서운 것이어서, 프린이 아무리 선행으로 일관해도 그녀를 이해, 공감 및 용서하고 친구가 되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참, 우습다.

한편 펄이라는 인물의 특성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이름부터가 그렇고, 생김새가 그렇고, 하는 행동이 그런 것이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기와 생기발랄함, 때론 작은 악마 같은 자유분방함이 흘러넘치는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주홍글씨의 결정체인 펄이야말로 프린에게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이자, 프린과 딤즈데일을 이어주는 매개체였지. 작가는 펄과 같은 인물이 존재하기를 꿈꾼 걸까?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와 위배되는 모든 것을 멸시하고 죄악으로 여기던 시대에 참 새로운 발상으로 지금에도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희한하면서도 찬란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사랑과 자유는 어쩌면 극히 상반되는 개념이 아닐는지- 요즘 계속 눈을 끄는 포인트다. 

그나저나 참.. 인간이 위대한 건 스스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인건데. 변화하는 프린의 모습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주홍글씨를 떼어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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