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은 짧고 명작은 많다. 하루에도 수십 권씩 책이 발간되지만, 그 중에서도 영원토록 고전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진정한 작품은 점점 손에 꼽을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그것도 매우 우연히 접하게 된 고전이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주홍글씨」다.

주홍글씨. 주홍색 글씨가 머 어떻길래? 하지만 이 작품 하나로, 주홍색 글씨는 죄를 지은 사람의 치욕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어버렸지..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작품을 보니 그 주홍글씨에는 많은 의미와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300쪽 가까이 되는 글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주홍글씨를 단 여인 헤스터 프린과 그녀의 딸 , 그리고 전남편 칠링워드 의사와 목사 딤즈데일의 외면과 내면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래서 무슨 그리 할말이 많나 싶으면서도, 그렇게 사람의 심리를 치밀하게 파헤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렇다. 작품 「주홍글씨」는 주인공이 주홍글씨를 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인물들의 격동적인 심리, 그리고 변화하는 모습 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인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작품 속 이야기, 특히 주변 환경에 대한 기술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을 살짝 비켜나가면서 때론 비꼬는듯, 때론 신선한 충격을 가하듯 절묘하게 다가온다. 호손의 막강한 능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과연 글씨 하나가 한 인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가져온 막대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쏟아낼 얘기가 많지만, 우선 주홍글씨가 주요 인물들에게 끼친 영향을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만약 헤스터 프린이 주홍글씨를 달지 않았다면, 그녀는 주홍글씨 'A'의 의미를 Adultery(간통)에서 Able(능력)과 Angel(천사)로 여겨지게 할만큼 한평생 낮은 자세로 선행을 베풀었을까? 
주홍글씨를 달지 않은 프린에게서 태어난 펄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프린이 주홍글씨만 안 달았어도, 딤즈데일 목사의 고통은 더할지 않았을까?
주홍글씨를 다는 처형이 없었다면, 칠링워드는 전부인 프린을 알아보지도 못했을테고, 그러면 그렇게 일생일대의 처절한 복수를 할 필요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주홍글씨는 차라리 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주요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그 파급효과가 컸다는 것이다. 그것은 프린의 선행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고, 목사의 선택에 경악하는 대중들의 심리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제 넘어가서, 과연 주홍글씨가 필요한 것일까..하는 것이다. 프린이 한 일을 사람들은 몹쓸 짓이라 여겨 죄를 부여하고 치욕적인 상처를 안겨줬다. 그러나 그 누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프린에게 정죄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엄격한 청교도 사회이니 그렇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에서 볼 수 있듯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행위는 차라리 웃음만 사게 마련이다.

정말이지 그 누가 프린보다 착하고 나은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프린같이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그러나 잔잔한 파도같이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 사람이 누가 있나. 그래도 한번 틀어박힌 관념은 무서운 것이어서, 프린이 아무리 선행으로 일관해도 그녀를 이해, 공감 및 용서하고 친구가 되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참, 우습다.

한편 펄이라는 인물의 특성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이름부터가 그렇고, 생김새가 그렇고, 하는 행동이 그런 것이다. 어머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난기와 생기발랄함, 때론 작은 악마 같은 자유분방함이 흘러넘치는 모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주홍글씨의 결정체인 펄이야말로 프린에게 어쩔 수 없는 모든 것이자, 프린과 딤즈데일을 이어주는 매개체였지. 작가는 펄과 같은 인물이 존재하기를 꿈꾼 걸까?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와 위배되는 모든 것을 멸시하고 죄악으로 여기던 시대에 참 새로운 발상으로 지금에도 놀라움을 가져다주는, 희한하면서도 찬란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사랑과 자유는 어쩌면 극히 상반되는 개념이 아닐는지- 요즘 계속 눈을 끄는 포인트다. 

그나저나 참.. 인간이 위대한 건 스스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인건데. 변화하는 프린의 모습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주홍글씨를 떼어내게 했더라면 어땠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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