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감금광기 그리고 독립된 주체, 이 소설의 플롯을 짜나가고 담론을 형성하는 주제들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희생과 억압에 순응하지 않고 분노로 저항할 때, 감금당하고 감금은 광기를 일으킨다.

 

제인은 사촌 존 리드의 폭력에 저항하다 붉은 방에 갇히고, 공포로 인해 정신을 잃는다. 제인이 갇혔던 붉은 방은 로우드 기숙학교를 거쳐 버사 메이슨이 감금된 손필드 저택 다락방으로 연결된다. 제인은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하지 않다. 다른 여성들처럼 시대가 요구하는 태도를 거부한다. 강압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는 말로든 침묵으로든 분노를 표시한다. 그녀가 붉은 방에 감금당하고, 수용소와 다름없는 기숙학교에 보내지는 까닭이다.

 

기숙학교 교장 브로클허스트와 세인트 존은 그녀를 억압하는 초자아의 화신이다. 그것은 그녀를 둘러싼 여성에 대한 편견, 관습, 관념 등이다. 그들의 말이나 요구는 그녀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샌드라 길버트는 제인 에어가 발표되었을 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경악한 것은 제인의 분노였다고 말한다. “억압된 분노를 신화화하는 것과 억압된 섹슈얼리티를 신화화하는 것은 유사할지라도 억압된 분노를 신화하는 것이 훨씬 더 위험(다락방의 미친여자601p)”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샬럿 브론테의 분노에 대해 거론한다. “개인적인 비탄에 신경은 쓰느라 마땅히 자신이 전념했어야 할 이야기를 그만 내버렸다(자기만의 방4. 버지니아 울프)”고 말한다. 제인이 지붕 위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자유를 꿈꾸는 아름다운 장면에 이어 작가의 감정을 개입시킨 문장들이다.

 

여성들이란 집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제인 에어1199p 12)”

 

버지니아 울프는 샬럿이 자신에게 적합하고 응당 누려야 할 경험에 굶주렸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세상을 자유로이 방랑하고 싶을 때, 목사관에서 양말을 키우며 침체되어야만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로 인해 상상력이 빗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주인공의 자유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그리는 글 속에서 잠시 멈춘 작가의 그 덜그럭거림에 마음이 움직인다. 이내 작가는 곧 길을 찾는다. 홀로 생각을 이어가던 제인의 귀에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중얼거림을 배치함으로 다락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대한 심리적 층위를 쌓는다.

 

샌드라 길버트는 이 중얼거림은 버사의 것인지 제인의 것인지 모호하고, 다락방에 감금된 것은 제인의 잠재의식이라고 해석한다. 그렇게 보자면 버사가 로체스터의 침대에 불태우려 한 것도 제인의 웨딩드레스를 훼손한 것도 제인의 불안함이나 로체스터에 대한 양가 감정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로체스터는 오만하고 제인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당시 남성들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에게 끌리지만 자신을 지배하려는 태도에 제인은 분노를 느끼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락방에 숨겨진 버사가 그의 아내임이 밝혀진 날, 진실을 듣고 그를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도망을 친다. 이 도망은 너무나 필사적이어서 의문이 생긴다. 다음날 짐을 챙겨서 마차를 부르고 이별을 고하고 조용히 떠나도 되는 것 아닐까? 그녀를 멀리 서둘러 떠나게 했던 원인은 아마도 로체스터의 그녀를 장악하려는 힘이 아니었을까? 그녀를 붙잡으려 하는 그의 태도에서 강압적인 힘을 느낀다. 그의 곁에 머물면 구속되는 것이고 자유는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로체스터를 사랑하는 정도도 저항할 수 없이 크기에 그녀의 도망은 필사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소설은 그날은 산보가 가당치 않은 날씨였다로 시작된다. 그것이 기뻤다고 하는 제인에게 일상의 산보가 즐겁지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자신을 통제하는 하녀들과 유쾌하지 않은 사촌들과 추운날씨에 걷다가 다시 답답한 집으로 돌아오는 산책은 그녀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산책은 로체스터를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걷다가 예기치 않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고, 멀리 가보지 않은 세계로까지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다.

 

손필드를 떠나 마시엔드에 다다르기까지 폭풍우를 만나고 기아 상태에 놓이며 여행한 것처럼 그녀의 욕망은 대가를 치른다. 그녀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가 여성들에게 이러했으리라 짐작한다. 뛰어난 학업적 성취를 이루어도 그녀들이 구할 수 있는 직장은 가정교사 자리에 불과한 것이었다. 제인이 마시엔드에서 생존을 위해 직장을 구할 때 가게 점원과 나눈 대화에서 여성들의 처지를 가늠하게 한다.

 

혹시 이 근처에서 식모를 구하는 댁이 있는지 모르시나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여기서는 주로 무슨 직업들을 갖고 있나요? 사람들은 대개 무슨 일을 하나요?”

농부도 있고, 올리버 씨의 바늘 공장과 주물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죠.”

올리버 씨는 여자 일꾼도 쓰나요?”

아뇨, 남자의 일인걸요.”

그러면 여자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모르겠어요.”

(제인 에어2178p 28)

 

샬럿이 굳이 이 대화를 넣는 의도를 읽게 된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얼마나 제한적이며, 결혼이나 유산을 받는 것 외에는 그녀들의 경제적 여건을 향상시킬 수 없는 상황을 고발하고 있다. 손필드를 떠났던 제인은 친척의 유산을 받고 부자가 된다. 그녀는 저택을 잃고 장애를 입은 로체스터에게 저는 부자일 뿐만 아니라 독립해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저의 주인은 제 자신이에요.(제인 에어2393p 37)”라고 말한다. 제인이 그리고 그 시대 여성들이 독립된 존재로 살기엔 경제적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보여준다. 오늘날 역시 주체적 삶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긴 하다. 더욱 주목되는 지점은 제인의 욕망이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인 삶이다. 로체스터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서 사랑하기를 원한 것이다.

 

제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로체스터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그의 외모가 어떻게 변했든지 그는 제인의 사랑과 도움을 당당히 요구하고 받아들인다. 사실 이것이 현실적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사랑은 어리기만 하다는 반성을 한 지점이었다.

 

제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려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고난들-게이츠헤드에서의 억압과 감금, 로우드에서의 굶주림, 손필드에서의 광기, 마시엔드에서의 추위-가부장적 사회에서 모든 여성이 직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곤경의 징후(다락방의 미친 여자602p)”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분노하고 그녀는 감금되고 그녀는 광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손필드 저택에 초대된 로체스터의 지인들이 벌이는 놀이에서 유럽 중심의 왜곡된 시선이 포착된다. 로체스터와 잉그램이 연기한 엘리자와 리브가는 족장시대 근동지역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재현한 이 이미지는 당시 사람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동양에 대한 왜곡된 모습이다. 제국주의 시대 오리엔탈리스트 학자들은 식민지에 대한 언어, 문화, 종교, 풍습에 대해 연구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유럽인들에게 참고서와 같은 역할을 했다. 이 문헌은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본 것이기에 왜곡과 폄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1차 문헌들은 또 다른 텍스트가 재생산 되는 근거 자료가 되었다. 이 텍스트는 다시 문학이나 예술에서 재현되었고 이런 왜곡된 이미지는 사람들의 관념 속에 동양의 전형으로 표상되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런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주로 이슬람권 동양에 대한 이런 시각은 그들이 식민지로 삼는 유럽 바깥의 모든 곳을 향했다. 버사 메이슨이 서인도 제도 태생의 크리올’-유럽인과 식민지인 사이의 혼혈 또는 식민지 태생의 유럽인-인 것도 맥을 같이 한다. 광기를 가진 여인이 유럽인이 아닌 크리올이고 어두운 피부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에 오리엔탈리즘이 묻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하는 문학에는 제인 오스틴, 까뮈, 조셉 콘라드, 플로베르 등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샬럿 브론테 역시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러 번 읽고 깊이 들어갈수록 많은 담론과 변주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참고할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났고, 그만큼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읽기 전까지 생각도 못했던 많은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주제들을 얻었다. 그 중 다락방의 미친 여자란 제목은 이 제인 에어와 관련 있다. 소개된 더 많은 작품을 읽고픈 욕구를 일으키는 탁월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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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8-24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인에어를 그냥 재미있게만 읽었었는데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나 봅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연관 책도 더 찾아 읽게 되더라구요~!!

그레이스 2025-08-24 14:24   좋아요 1 | URL
^^
저도 첫번째 읽기에는 그랬어요,,, 너무 오래전 일이네요. 안보이던 것이 보인건 나이때문이기도, 읽어온 책들 덕분이기도 한 듯 해요~♡

젤소민아 2025-08-25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에어, 제 인생소설입니다~. 가장 좋아해요. 그레이스님 후기 읽고 또 읽고 싶어졌어요

그레이스 2025-08-25 21:27   좋아요 0 | URL
인생소설이라고 하시니,,, 후기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