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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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없으면 소설도 없다.(212p)”

작가는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으로 흩어져 있는 삶의 파편들을 선택하거나 배제하고, 왜곡함으로 소설을 쓴다. 그러므로 독자는 그 파편들 속에 감추어 둔 작가의 내밀한 음성을 발견해야한다. 독서는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맞춰 사실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읽어야 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 형상화되고 발견해 낸 작가이지, 현실의 작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독자는 소설로부터 읽은 작가를 현실의 작가와 동일시하는 오류를 흔히 범한다.

 

소설 중 화자 는 작가로서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한 작가의 문학과 삶을 집중 조명해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내는 작가탐구에 글을 써줄 것을 청탁받는다. 그에게 부여된 글쓰기 대상은 그 작가의 소설이 아니라 바로 그 작가라는 말은 쉬울 수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 없을 수도 있겠다는 인상을 남긴다. “그 작가의 삶의 과정그의 문학이 맺고 있는 인과성(14p)”을 전달하는 작업은 어렵게만 느껴진다.

 

몇 번의 인터뷰와 그의 자전적 소설에서 작가의 의식 안쪽에 단단하게 붙어 그의 삶과 문학을 지배해 온 질기고 억센 몇 개의 큰 흉터들을(19p)” 발견한다. 사실과 진실에 관해 침묵하는 박부길 앞에서 는 어쩔 수 없이 그 흉터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자기 노출적인 소설 <내 속의 타인>에서 마주친 흉터들은 이후 작품들 안에서 질서 없이 몸을 섞고 있다. ‘는 그 흔적들을 찾으며, 어느새 박부길을 소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18p)” 자신을 깨닫게 된다.


가 작품들에서 찾은 파편들로 맞춰진 퍼즐, 그는 이렇게 불행하고 지독히도 외로운 존재가 있을까 생각될 정도로 비극적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모친의 이야기 속에만 존재했던 신화 속 아버지는, 유년기의 그가 목격한 한 남자의 광기와 죽음, 그 남자를 향한 이유모를 끌림, 그의 죽음에 자신이 가담했다는 죄의식, 선산을 태우고 고향을 떠나면서 흉터가 된다. 모친의 사랑 역시 받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향한 사랑을 왜곡된 정서 죄의식과 회환으로만 표현하는 애처로운 어머니를 외면하는 그는 굶주리고 외로운 존재다. 그가 고향(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곧 무극사(신화)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95p)”이지만 그 신화는 무극사에서 끝이 난다.

 

작가탐구를 준비하면서 박부길의 자전적 작품을 <지상의 양식>을 싣기로 한다. 이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고향을 떠난 그의 청소년기와 20대의 삶을 그리고 있다.

외로움 안에 갇혀 있었던 그는 같은 세계에 사는 동질의 원형질을 가진 단 한 사람의 동료를 만나는 것(141p)”이 간절했기에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습관적인 독서 안에서 의도적인 오독을 한다. 골방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철저히 혼자인 존재가 하는 독서란 외부 세계와 개인의 내면 사이에 높은 벽을 세우고 하는 행위이기에 오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나는 오독이 일어나는 상황과 그 빈번함을 소름끼치게 깨달았다. 나의 상황, 기분 안에서 작품들을 읽고 해석했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는 나처럼 이 세상에 잘못 보내진 나의 형제, 나와 동일한 표적을 소유한 나의 동지, 나와 원형질이 같은 단 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159p)” 그러므로 사랑 역시 그 대상을 자신과 같은 세계의 사람이라는 오해로 시작한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 사랑의 불구성을 짐작할 수 있다.(288p)” 사랑을 받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한 그의 사랑은 너무 아슬아슬하고 가학적이었다고, 전쟁처럼 하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사랑은 흉기가 되어 사람을 상하게(289p)” 했다.

 

그의 사랑도 신앙으로 대체되어 있는 갈망도 가짜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신과 인간의 문제를 깊이 천착한 다른 작가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회의와 갈등, 반항과 구원의 드라마로부터 너무 자유롭다.(262p)”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동료들과 공감대를 찾지 못한다. 그가 주장하는 학자적 태도는 불통의 이면을 갖고 있다. 그가 세상을 따돌리는 오만함은 사실 슬픔과 울분, 또는 슬픈 울분이고 그 뿌리는 좌절감(31p)”이다. 그는 세상과 불화하며 부유(浮遊)한다. 많아지는 생각은 결핍으로 향하고, 불화감은 증폭된다. 그 증폭된 불화감은 더 복잡은 생각의 밑천이 되는 악순환에 갇힌다.


이승우 작가는 이 액자소설을 통해 한 사람의 지독한 외로움을 통해 사랑, 신앙심이 진실이 아닌 거짓일 수 있는 인간상황에 대해 그려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면서 그것을 드러내거나 감추고 가장하면서 쓰는 작가의 작업과 그렇게 흩어져 있는 작가의 파편을 읽어내는 독자의 시선에 대해서 생각을 전하고 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이런 소재와 구성을 취한 작가의 글쓰기가 탁월하다.

 

작가는 물론 자신의 삶을 사실 그대로 베끼지는 않는다. 기억되거나 말해진 사실은 결국 발췌된 사실일 뿐이다. 선택과 배제를 통해 사실이 구성된다. 거기에 굴절과 왜곡이 끼어든다. 그것이 작품이다.(210p)”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이러한 글쓰기를 보여주는 백미라 할 수 있다. 어둠이 그와 충분히 친해졌을 때, 박부길은 충동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으로부터 상상력의 위험을 경고 받은 바 있는 작문 <아버지>의 세련된 늘이기에 다름 아닌 이 작품을 씀으로써 그는 막혔던 글의 길을 비로소 뚫는다.(335p)” 그의 글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선생님들의 경고가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그의 잠재된 죄의식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기도하듯 내면의 고백을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왜 기도를 하는가. ‘그것은 자기 이야기를 마음 놓고 솔직하게 늘어놓기 위해서이다.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한없는 끈기와 인내로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들을 들어 줄 상대를 찾아서 사람들은 기도처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지상의 양식>) (331p)“

 

그는 그 죄의식을 노출하여 공식화함으로써 아버지를 인정하고자 했다.(335p)” 어릴 적 뒤뜰에 살고 있던 광인 아버지를 감추려했던 어른들의 태도로부터 전이된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벗어나 아버지의 존재를 시인하고, 아버지로 하여금 그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새로운 신화를 쓰고자 했다는 말에서 뭔가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가 해낸 것은 아버지와의 값싼 화해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교묘한 것이다. 죄의식의 되돌림.(335p)”이라는 말에서 자전적 글쓰기가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회환에 갇히는 작가의 고통을 보게 된다. 작가의 작업은 교묘하다. 드러냄은 전략적이다.

그는 감추기 위해서 드러낸다. (335p)”

작가들은 그렇게 신화를 쓴다. 그러기에 글쓰기가 자유롭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 고통스럽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그 도시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의 감추어진 마음 혹은 무의식 혹은 영혼의 어두운 곳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다. 그것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면이고 그것을 보는 것은 지울 수 없는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승우 작가의 이 책 제목이 생각났다. 누구나 갖고 있을 생의 이면’, 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기억나게 하는 흉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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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2 19: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삶을 사실 그대로 베끼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은 들어갈 것 같아요.
올려주신 기도에 대한 인용문~^
저는 신에게 제 얘기 늘어놓는 게 귀찮아서 ㅋㅋ
남을 위한 기도만 하는 듯요^^

그레이스 2024-01-12 21:56   좋아요 3 | URL
그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그 기도 장면 너무 처절했어요.

혹시 ‘다 아시잖아요?‘
이런 말은 안하시나요?
^^

미미 2024-01-12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죄의식의 되돌림‘, ‘감추기 위해 드러낸다‘ 그런 고된 작업이기에 작가들의 평균 수명이 의외로 낮은가 봅니다.ㅎㅎㅎ
그래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절박함이 느껴져서 슬프기도 하고요. ‘흉터‘맞는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4-01-12 21:57   좋아요 2 | URL
예!
작가의 글쓰기의 고됨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서곡 2024-01-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일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4-01-14 15:39   좋아요 1 | URL

서곡님두요
길 미끄러운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