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인간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만엔 원년의 풋볼, 아름다운 에너벨리 싸늘하게 죽다를 이어서 읽었지만, 이 작품들의 메시지를 내 것으로 하기가 어려웠다. 일본의 역사, 지역 공동체나 가계 또는 개인의 서사라는 프레임 안에서 메시지를 찾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 특별히 그의 작품 곳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성행위 장면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것은 섹슈얼리티라기 보다는 오히려 비참하고 그로테스크한 욕구영상이라면 눈을 질끈 감게 되는로 다가온다. 개인적인 체험에서 그려지는 성행위 장면 역시 불편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비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조금 더 선명하다.

 

그는 소설의 방법에서 문학표현과 낯설게 하기라는 소제목으로 구조화에 대해 설명한다. 말과 단어, 문장과 분절화된 문단들은 중립상태로 있을 수 없다. 소설 안에서 문장은 문체화된 전략적인 문장이 되어 그 문장이 표현하는 사람의 상황을 다 끌어들인다. 그 문장이 그 사람이 갖는 정황, 태도를 표현한다. 그렇게 문장은 낯설게 되고 상황들과 관계를 맺고 여러 의미의 층위를 형성한다.

 

문학표현의 말은, 말과 단어의 수준에서 벌써 이 사회가 세계 나아가서는 우주적인 것으로 넓혀 가는 구조적인 양상에 대하여 그 쓰는 사람이 어떠한 태도로 실재하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힘을 갖고 있다.(소설의 방법오에 겐자부로 28p)”

 

작가는 굳이 구조주의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가 말한 구조화라는 것은 구조주의적 해석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스럽고 친근하던 표현들이 그의 작품 안에서는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다.

 

진열장 안의 아프리카 지도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버드는 병원에서 출산 중인 아내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낯설다. 도대체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남자가 왜 이런 곳에서 아프리카 지도를 바라보고 있을까? “아프리카 대륙은 고개를 수그린 남자의 두개골 모양과 닮았다(8p)”고 한 문장은, 이 소설의 1/3 정도를 읽고 나면, 주인공 버드가 특수아실 유리 너머로 아들의 기형적인 머리를 보며 구토를 일으키는 장면, 진열장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고 수치심을 느끼는 장면을 지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임을 알게 된다.

 

사실 결혼 후, 나는 그 감옥 안에 있는 것이지만 아직 감옥의 뚜껑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태어날 아이가 그 뚜껑을 꽝 하고 내리덮어 버릴 것이다. (14p)”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그의 심정을 그리는 이 글에서 감옥 문이라고 하지 않고 감옥 뚜껑이라고 한다. 관 뚜껑과 죽음을 연상케 한다. 그에게 아이의 탄생이 어떤 의미와 중압감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불만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그에게 뇌헤르니아라는 질병으로 기형의 외형을 지닌 아기는 더 깊이 있던 부정적 감정들을 드러내게 한다.

 

원장의 겐부츠(現物)라고 하는 단어가 버드에게 가이부츠(怪物)’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괴물이라는 단어에 들러붙은 가시가 버드의 가슴에 온통 할퀸 자국을 냈다. 버드가 자기를 소개하고, 내가 아버집니다, 했을 때 의사들이 동요했던 것은 그들의 귀에 그것이 이런 식으로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괴물의 아버집니다.(37p)”

 

그는 아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곧 죽을 것이란 의사의 말을 듣고 안도감과 죄의식을 느낀다. 어차피 식물아기이고 곧 죽을 것이라는 자기합리화의 방어기제도 작동한다. 아기가 죽기를 바랐던 그는 자신의 에고이즘에 수치심을 느낀다. 그의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온다. 아기가 쇠약사 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는 대학 친구 히미코를 찾는다. 그녀는 그의 섹스 엑스퍼트가 되어준다. 이 지점에서 나는 독자로서 주인공의 심리를 쫓아가는데 실패할 뻔 했다. 그런데, 지나가듯 말한 이 두 사람의 공감대를 인지하면서 겨우 그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히미코는 남편의 자살 후 여러 남자들과 가벼운 관계만을 이어가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냐는 질문을 했다가 뺨을 맞은,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인, 버드, 그의 자기 몸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은 거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대학원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후 2년 동안 만취 상태로 살았었다. 그는 술에 취함으로 도피하려 했던 절망적인 자포자기로 몰아가는 근원적인 불만이(17p)”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술을 끊었다. 이 근원적인 불만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 채, 어쩌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 더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그의 근원적인 불만과 함께 그의 수치심에서 몸에 대한 사회의 근대적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장애에 대한 혐오는 자신의 몸을 근대적 시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대한 혐오를 갖고 있는 그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음은 당연한 것이다. 작가는 이 몸에 대한 근대적 사유를 주인공을 통해 부각시키고 낯설게 함으로 고통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고통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그가 처한 비극과 대비되지 않았다면 그 문장들이 그렇게 비수처럼 아름답게 느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건물 안의 상냥한 밤의 자취에 취해 있던 버드의 동공에, 젖어 있는 길 표면과 더없이 무성한 가로수가 반사하는 아침빛이 서릿발처럼 선열하게 닥쳐온다. 그 빛을 거슬러 페달을 밟으며 달려 나가려던 버드는 마치 도약대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42p)”

 

도약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희망조차 느끼게 하는 풍경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의사를 만나 아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큰 병원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 글은 비극적 상황에 낀 낯선 문장이 되어버린다.

 

병원 2층의 창이란 창 모두, 거기다 발코니까지를 가득 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막 세수를 마친 듯 하얀 맨얼굴을 아침 햇살에 드러낸 임산부들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발코니에 나와 있는 임산부들은 복숭아뼈까지 닿는 기다란 잠옷을 미풍에 나부끼고 있어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들의 무리 같았다. 버드는 그녀들의 표정에서 불안과 기대, 그리고 기쁨까지를 발견하고 눈을 내리깔았다.(45p)”

 

아기와 함께 앰뷸런스에 올라타서 창밖을 내다본 순간에 버드의 눈에 들어온 이 광경은, 이런 상황이 아니라 아들을 맞이해서 기쁜 한 남자가 보는 것이라면, 축복하며 배웅하는 거룩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그러나 그녀들의 불안과 기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독자(讀者)인 나는 그의 격렬한 몸서리침에 공감한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과 달리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아기 때문에 버드는 당황하고, 수치심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수술을 거부하고 아기를 쇠약사할 때까지 한 개인 병원에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약속된 병원에 가는 길에, 우묵배미를 맴돌며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그는 내면의 극심한 갈등이 있음을 보여준다. 차에 함께 타고 있는 히미코와 그는 긴장감 때문에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이 갈등의 고조 상태에서 작품이 끝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작가의 말을 읽다보니, 한 아버지로서 쓸 수밖에 없었던 결말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작가에게 이 글은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과정. 그의 말처럼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고, 자신의 고통을 글로 쓰는 것에도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이지만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던, 한 아버지의 아픔이 보였다.

 

첫아이가 머리에 기형을 지닌 채 탄생하면서 그는 일찍이 없던 동요를 경험하게 되었다.(아사히 신문1994)“고 한다. 그는 거기서 회복되어 가기 위해 이 개인적인 체험을 썼다고 한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아들 히카리와 관련된 소재들이 등장한다. 만엔 원년의 풋볼에서는 아기가 죽은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 고통은 작품에서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은 인생을 아들과 동행했듯이. 음반을 낸 아들 오에 히카리의 음악 안에서 슬픔의 덩어리를 보는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 그의 말에서 그 이야기를 되풀이해 쓰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시 오에 히카리라고 표현된 슬픔의 덩어리는 이전부터 그의 내부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처음 CD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스스로 되풀이해 듣는 것을 포함한 교육으로, 그는 이 덩어리를 비로소 대상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슬픈 마음을 되풀이하여 표현하고 그렇게 하여 인생은 깊어진다. 그 슬픔, 혹은 괴로움과의 만남은 비참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소리를 역시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표현에는 그 자체를 만드는 손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힘이 있다고 나는 경험으로써 알고 있다. (소설의 방법오에 겐자부로, 235p)”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괭 2023-09-04 13: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개인적인 체험이네요?? 오에 겐자부로 말만 많이 듣고 한권도 안 읽었는데 갑자기 관심이 생깁니다. ‘여기서 끝냈으면 좋았을‘ 그 뒤에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궁금해요. 읽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레이스 2023-09-04 13:53   좋아요 4 | URL
가독성은 좋습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잘 읽혀지구요, 무엇보다 난데없이 아름다운 표현들에 감탄하게 되죠. 어떻게 여기서 이런 문장이! 하면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처음 읽으신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미미 2023-09-04 1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그레이스님 만큼 읽어낼 자신은 없지만 몹시 궁금해지는 리뷰입니다.
말, 단어에 대해 그레이스님이 설명하신 부분과 오에 겐자부로의 글 둘다 인상적이에요.

그레이스 2023-09-04 14:04   좋아요 4 | URL
오에의 경험적 내용이어서 그런지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두드러지게 해서, 말과 심상이 낯설게 하는,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작가의 탁월함이 보이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미미님은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시겠죠!

서곡 2023-09-04 16: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체험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을유 번역 전에 나온 고려미디어오에겐자부로전집 걸로 읽었죠 말씀대로 오에의 딴 작품에 비해 술술 잘 읽히고요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기억도 나네요

그레이스 2023-09-04 16:54   좋아요 2 | URL
저도 고려원에서 나온 책 갖고 있다가 을유책 새로 샀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옛날 책들 읽지도 않고 있다가 새로 나온 책들로 바꿨어요.
<일상생활의 모험>은 절판인데, 다시 나오려나 싶네요
조금 충격이어서

서곡 2023-09-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고려미디어가 아니라 고려원이네요 ㅎㅎ 특유의 집요함이 읽다 보면 질리기도 하다가 때때로 생각나는 성실한 작가입니다 9월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9-04 16:57   좋아요 1 | URL
예~
서곡님도 행복한 9월 한달 되세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9-05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에 겐자부로 안읽어봤는데 이 책을 읽어봐야겠네요 ㅋ
요새는 어려운책 못읽겠더라구요 ㅜㅜ

그레이스 2023-09-05 09:43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요즘 바쁘신가봐요.
하루키하고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좋아하실거란 생각이 드네요.

새파랑 2023-09-05 09:41   좋아요 1 | URL
8월에 바빴는데 9월부터는 안바빠서 책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yamoo 2023-09-06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겐자부로 소설 두 권 읽다가 말았어요. 전 되게 재미가 없더라구요. 매우 지루해서 한 내년이나 다시금 읽어보려구요. 그땐 다르겠죠..ㅎㅎ 겐자부로 책은 하도 평이 좋아서 일단 모셔둬요..ㅎㅎ

그레이스 2023-09-06 12:2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 수 있죠.
저도 처음엔 힘들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