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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 1892-1940
한나 아렌트 지음, 이성민 옮김 / 필로소픽 / 2020년 8월
평점 :
번역자는 아렌트가 사용한 은유들을 번역함에 있어 어려움이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은유에 대한 통찰이 있었지만, 정교한 은유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평판의 여신 파마Fama를 등장시킨다. 이익을 보아야할 당사자인 벤야민은 죽어있고, 전후 독일에서 발터 벤야민의 이름과 저작을 찾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벤야민이 죽기 전 자신의 원고를 아렌트에게 맡김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명성은 그가 죽은 후 오랜 후에 그에게 돌아간다.
벤야민의 집필은 항상 독보적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시도들이 실패한 이유는 그가 정한 정체성 때문이라고 한다. 아렌트는 이것을 위치로 표현한다. 그가 독일어로 프루스트를 번역하고, 보들레르의 <파리풍경>을 번역했지만 결코 번역가가 아니다. 서평을 쓰고, 작가들에 대한 에세이를 썼지만 문학비평가도 아니다. 바로크에 관한 책을 쓰고, 프랑스에 관한 미완의 연구를 남겼지만 미학자나 역사가도 아니다. 그는 시인도 철학자도 아니다. 그 자신은 어떤 것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했던 것 같다. 유용한 사람이라는 말을 끔찍하게 여겼다는 보들레르의 생각과 상통한다. 드문 순간들에 벤야민은 자신을 문학비평가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시적으로 생각한 반면, 은유를 위해한 언어의 선물로 생각했다. 벤야민이 생각하던 비평조차도 독보적이었다. 잘못된 위치 선정이다.
“비유를 위해, 어떤 자라나는 작품을 불타오르는 장작더미로 본다면, 그 앞에 주해자는 화학자처럼 서 있고, 비평가는 연금술사처럼 서 있다. 주해자에게는 나무와 재만이 분석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반면에, 비평가에게는 오로지 타오르는 불꽃 자체가 수수께께를. 그처럼 비평가는 진리를 묻는데, 이 진리의 살아 있는 불꽃은 존재했던 것의 무거운 장작더미와 체험된 것의 가벼운 재 위에서 계속 타오르고 있다.” (괴테의 친화력 『발터벤야민 선집10』)
아렌트는 벤야민의 삶이 잔해더미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가 천재이지만 동시에 삶에서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루스트의 비유를 인용하면 “불을 어떻게 지피고 창문을 어떻게 여는지 몰랐기 때문에 죽었다”(39p)
그의 태생에 있어서도, 이것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독일 유태인의 가정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프카나 그 외 지식인들과 달리 유대적 유산을 버리지 않았다. 그이유는 가정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의 자리는 어정쩡한 곳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하루 전까지는 그가 갖고 있던 비자로 통과할 수 있던 국경이 그가 당도했을 당시 프랑스 출국 비자 없이는 넘을 수 없도록 막혀버렸다. 걸어서 기진맥진해서 도착한 그는 스페인 국경이 폐쇄되었음을 알고 그날 밤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몇 주 뒤에 다시 비자정지는 해제된다. 하루만 빨랐어도 그는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고, 하루만 늦었어도 소식을 듣고 국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시간의 위치였다.
“삶을 능숙하게 헤쳐 나갈 수 없는 자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절망을 조금이라도 막아내기 위한 손 하나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 손으로 그는 잔해 속에서 본 것을 기록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리고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살아 있을 때 죽었으며 진정으로 살아남은 자다.”(프란츠 카프카 『일기』 1921 10월)
그는 문학비평가로서 글을 썼으나 독일에서는 문학비평이 50년 넘게 진지한 장르로 간주되지 않았다. 또한 세례 받지 않은 유대인이었으므로 연구와 강의를 할 수 있는 대학교수의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정원외교수가 허용되었을 뿐이다. 그는 오랫동안 시온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있었다. 그는 언제나 문학적, 학문적 기득권층 바깥에 있음으로 고립과 외로운 상태였고, 위험을 무릅쓰고 노출된 위치로 나아갔다. 그가 선택한 위치이다.
그의 학문적 연구는 프랑스에서는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있었지만, 그 이전 독일에서 하빌리타치온의 주제는 바로크였다. 독일에서 바로크는 인정받기 힘든 주제였다. 그는 그의 정신세계안에서 소요객이었다. 어느 한 가지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지적인 탐사를 했다. 그래서 그의 장서는 수집가의 그것과 같다. 그의 초기 철학적 사유는 신학적 배경에서 언어철학으로부터 비극이 상연되던 고대로, 다시 실존철학으로 탐험을 했고, 아렌트는 그를 마치 깊은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잠수부에 비유한다.
시로 철학하는 벤야민을 은유로 기록한 아렌트의 글을 읽어가기에 쉽지 않았지만, 벤야민이라는 사람은 조금 알게 된 느낌이다. 시대, 장소, 직업, 시간, 사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한 천재 소요객 발터 벤야민, 머무르려 하지 않았던 그의 걸음이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닐까?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