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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어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9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평점 :
이방의 땅에서 전쟁을 하고 무수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사선의 전장이 가까운 마을.
휴가에서 돌아온 주인공 헨리는 마치 여행자와 같은 태도이다. 군의관 리날디처럼 시시덕거리고 수작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전쟁처럼 심각한 상황에서는 진지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캐서린을 만났을 때도 끌리는 마음을 진지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했던 약혼자를 전쟁에서 잃어버리고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상실에 두려워하는 캐서린에게는 그의 태도가 분노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헨리에게 끌리는 마음조차도 불안이 덮치고 삼켜버린다. 그녀의 불안은 비가 올 때 고조되고, 비는 죽음을 암시한다.
이들의 사랑은 전쟁의 한가운데 있는 드리워진 죽음과 공포, 고통 속에서도 이루어지고, 영화 속 헨리의 대사는 아마도 “I CRUSH YOU!”...
부조리한 전쟁의 한가운데서 도피해 온 헨리. 죽음의 현장에서 도망했지만 죽음은 도처에 있다. 해리 포터 영화를 보면 디멘터라는 존재가 있다. 나타나지 않아야 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나 인간의 행복한 기억을 빨아들이고 불행한 기억만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 그야말로 죽음과 같은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인간의 죽음을 비유할 수 있는 적절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삶의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은 언제든지 인간을 덮쳐오고 그것은 갑작스럽다.
스위스에서의 행복한 두 사람. 잉태된 생명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역설적으로 비극을 향한 긴장을 고조시킨다. 결국 캐서린은 아이를 낳다가 죽고 이야기는 헨리의 슬픔을 공감하기에는 너무나 간단하게 끝나버린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각상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에서 나와 병원을 벗어나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503p
캐서린의 죽음 후, 병원을 나선 헨리를 그린 마지막 장면이다. 소설의 이 마지막이 지나치게 간결해서 허무하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병원을 나온 헨리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길게 남겼는지도 모르겠다. 그 뒷모습은 죽음에 대한 애도도 상실에 대한 슬픔도 전달하지 않는다. 무력감만이 그의 발걸음을 따르는 것 같다. 그가 걸어가는 방향의 소실점 역시 허무를 가리키고 있다.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은 도피도 싸움도 할 수 없는 존재. ‘인간의 죽음’은 실존에 대한 영원한 질문. 아마도 헤밍웨이는 소설을 쓸 당시 어떤 답도 대안도 없었던 것 같다. 던져진 존재가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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