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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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과 앤소니 기든스와 함께 후기 근대론을 대표하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집인 이 ‘위기의 국가’를 읽었는데요. 안규남씨가 번역을 맡았고, 반가운 출판사인 동녘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두 사람이 뛰어난 논리로 대담을 진행하는데요. 그 주제들의 범위는 정치학 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역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난해하지 않았던 것은 역자의 노력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편집상으로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책의 제목인 ‘위기의 국가’는 간단히 말하면, 개인들에게 근대화 이후의 국가가 약속하고 보장했던 여러 안전 장치가 철회되고, 그것의 원인이라 볼 수 있는 무덤에 있는 ‘애덤 스미스’를 다소간 시장에 유리하게 해석해 자본주의가 국가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주의가 점진적이기 보다 배타적으로 발전시켜왔던 상황과 그 결과를 앞서 언급해 드린대로 정치와 사회학, 역사, 철학 등으로 여러 방면에서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 한가지 명쾌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많은 학자들이 오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과잉’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사실상 인간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과잉된 시기는 없었고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민주주의가 과잉되었던 시기가 있었는지는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역설적이게도 모두에게 주어진 투표 권리가 그것을 통해 선출된 정부나 권력이 우리들에게 항상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만연해진 반정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시민들에게 선출된 권력 혹은 정부가 항상 시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현실은 전세계에서 너무나 많이 목격되어 도저히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1장과 2장이 위기가 닥친 국가, 정치가 없는 권력의 원인과 과정을 잘 설명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장은 조금 더 심화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핵심은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가 위기의 국가를 초래했으며 그것의 종말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였다고 결론이 납니다. 인간의 역사가 근대성을 획득함으로써, 자유와 보장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진자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사실상 진보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지 현세대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바우만의 입장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시장과 결탁한 정부에 시민의 안전 보장과 복지와 관련된 문제에 진보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한데요. 자유와 보장의 양 가치는 높은 수준으로 서로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속성을 지녀서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속성이 뿌리깊게 전 사회적으로 내리면서, 바우만은 “1퍼센트의 최상위 부자들이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가버리는 걷잡을 수 없는 불평등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훨씬 더 수치스러운 시대이다” 라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가진자들의 자유와 욕망은 더할나위 없이 충족되고 그 반대에 있는 삶의 보장조차 확실할 수 없는 계층의 자유는 그만큼 희생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일견 관찰해봐도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과잉’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죠.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의 비판은 많이 나오는데요. 특히 경제적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프레카리아트’는 핵심입니다.

이렇게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비정상적으로 대두할 가능성이 있고, “기득권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충성을 하거나 그들의 불평불만에 귀 기울일 의무도 없고 그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할 생각도 없는 시대”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상황이 될 따름입니다.

3장은 과거의 근대는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공공선을 바탕으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되는 책임을 인지하고 있던 시대였으며, 탈근대화와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티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난해하긴 했습니다만 1장과 2장의 연계된 논의가 이론적으로 보충되면서 결론이 난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더군요.

약간의 논외지만, 앞 장에 메르켈 독일 총리에 관해 다소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메르키아벨리’ 라는 우리가 아는 마키아벨리를 연계시켜 군주의 무자비하고 가공할만한 비결의 최신판이라는 수식어를 메르켈에게 더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략을 희화화 하면서 EU 가맹국에게 가혹한 수단을 적용하고 있는 행태를 꼬집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메르켈 현상’은 오롯한 경제 일방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메르켈과 그녀의 독일이 주변을 강제하는 불통의 대표적 현상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책은 몇번이고 계속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에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지식인들이 태반인 시대에 이 두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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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리더는 거짓말을 하는가? - 지도자의 거짓말에 관한 불편한 진실
존 미어샤이머 지음, 전병근 옮김 / 비아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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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치학계에서 손꼽히는 현실주의 이론가이자, 오늘날 새뮤얼 헌팅턴과 더불어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에게 인용되고 있는 이가 이 책의 저자 존 미어샤이머인데요. 마찬가지로 그는 미국 내에서 유명한 중동 정세 전문가이고, 최근에는 G2라는 단어와 함께 대두하고 있는 중국에 관한 여러 글과 논평을 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가까운 미래에) 중국이 평화적으로 부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데요. 저 역시 중국과 관련한 미어샤이머의 주장에 수긍하는데요. 여러 사람들의 평가대로 그는 면밀한 현실주의 이론가지만 동시에 견고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 상당히 설득적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미어샤이머 역시 상당한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요. 과거 네오콘과 관련된 몇가지 평가에 대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글은 저자인 미어샤이머가 서두에 밝힌대로, ‘거짓말’과 관련된 거의 최초의 사회학적 내지는 국제정치학적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주제의 글을 쓰게된 계기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경험으로 역시 밝히고 있는데요. 인간심리학이나 관계학 등의 거짓말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가 관련된 ‘거짓말’에 대해 여러 역사적 사례를 바탕으로 상세하면서 꽤 논증적인데요. 일단 국가와 정치권이 전략적 이익과 여러 가능성을 두고 행하는 거짓말에 대해 미어샤이머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국가 간 거짓말, 공포 조장, 전략적 은폐, 민족주의 신화 창조, 자유주의 규범에 반하는 거짓말로 이것들이 발생하는 요인과 과정, 결과로 인한 이득에 대해 밝히고 있고, 이어 8장과 결론에서는 이러한 5가지 거짓말들이 초래하는 나쁜 영향과 오늘날 민주국가의 리더들이 각각의 이유로 행하는 전략적 거짓말들이 초래하는 위험성으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미어샤이머는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콘인 어빙 크리스톨의 입을 빌어 “다수 대중이 진실에 대처하는 능력이 없다”고 소개하며, 동시에 민주 정부의 엘리트들이 다수의 대중들을 마땅히 통솔해야 하며, 이러한 책임과 역할에는 국가 리더 즉 대통령과 같은 국가 수반들이 자신과 국가를 위해 서슴없이 벌이는 거짓말들에 대해 시작합니다. 이 책에서 지도자는 크게 두 개의 거짓말을 하는데, 첫째는 국가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서이며, 둘째로는 그냥 이기적인 거짓말인데, 아마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함일텐데요. 앞서 언급한 5개의 거짓말에 맞는 사례들을 결과론적인 이익의 차원에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과거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의 선전포고를 이끌기 위한 비스마르크의 책략이라든지,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체코와 폴란드에 관련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기만한 행위, 2차 대전 당시 연합국 내에서도 암암리에 벌어졌던 기만 전술, 미국 케네디 행정부 때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정부가 뒤로는 소련과 협상을 했던 것을 20년간 숨긴 것이라든지, 존슨 행정부의 베트남 통킹만 사건, 루즈벨트가 국민의 참전 동의를 얻기 위해 벌인 USS 그리어호에 대한 거짓말 (이것에 대해 미어샤이머는 적절한 거짓말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와 관련된 수많은 거짓말, 민족주의적 신화 창조와 관련하여 과거 이스라엘이 벌여왔던 거짓말 등을 꼽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거짓말과 관련된 은폐 작전은 많은 민주국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2003년 3월 중순 이라크 전쟁이 시작됐을 때 미국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이라크의 독재자가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다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고 언급하며 정치권의 정당성을 위한 이런 거짓말들이 우리에게 어떤식으로 파생되는지에 대해 그는 명백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 정치에서 국가 리더는 정치적인 이익 등에서 자신의 국민들을 조직적으로 속이기도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러한 ‘국제적 거짓말’ 들이 자주 동원되면 자유주의적인 신뢰의 측면이 심각하게 훼손되지만 이러한 거짓말을 함으로써 얻게되는 이익이 국가 리더를 비롯한 정치권의 고려에 있어서 크다고 보는데요. “국가간 거짓말 나라를 목표로 하고, 공포 조장은 국내 전선을 겨냥하는 반면, 전략적 은폐는 보통 국내외 양쪽 청중 모두를 조준한 것”이라고 보는 것 또한 원론적인 신뢰 실격의 가능성 보다 거짓말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이익이 크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번번히 행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익적 고려해서 발생하는 거짓말들이 특히 동맹국들의 신뢰 상실과 관련해서 시사하는 바는 큽니다. “과거 헨리 키신저, 로버트 맥나마라 등은 소련의 대규모 재래식 공격이 닥치더라도 서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소회하며, 당시에는 미국의 핵우산이 서유럽의 동맹국들에게 드리워져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사실상 이것은 보여지는 진실과는 다른 것으로 보여져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양면적인 측면에서 국제적 거짓말은 잠재적인 위험을 야기해 심각한 우려를 낳을 수 있으며, 신뢰가 훼손 상태에서 다른 국가와의 대화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이러한 거짓말에 의한 정치가 비교적 손쉬운 측에 속해 국민들이 정치에 갖는 진정성에 나쁜 영향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겠죠,

결론적으로 무정부주의적 국제 정치에서 스스로의 자립을 위한 거짓말은 매우 필요한 수단일겁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기만과 은폐는 국가 진로에 일정 부분 이득이 될 수 있고, 국민들의 동요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는데 (물론 적법한 수단은 아니지만)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자인 미어샤이머는 헨리 키신저 만큼은 아니지만 국제정치에서 현실주의 이론가로 알려져 있는 관계로 이러한 국제 거짓말의 효용과 이익에 대해 어떻게 보면 필요불가결의 이해를 보이기도 합니다만, 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 W. 부시와 존슨의 통킹만 사례를 들면서 오용된 측면과 전체적으로 국제 정치 무대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인 ‘국제 거짓말’의 판단을 독자들에게 맡기고 있는 듯한 인상도 있습니다만, 아마도 정치와 정치가들의 거짓말 매커니즘에 대한 달갑지 않은 정보와 이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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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 세계대전에서 냉전까지, 20세기 미국 외교 전략의 불편한 진실
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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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소간의 냉전이 첨예하게 전개될 시기에 소위 ‘냉전의 아버지’ 혹은 ‘냉전의 설계자’ 라는 평가로 유명했고, 미국 외교 역사상 현재에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 조지 F. 케넌의 강연록을 엮은 이 책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American Diplomacy 인데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2013년 가람기획에서 한국어판으로 최초 번역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가람기획이라는 출판사가 내심 반가운데요. 제 서가에도 역사와 관련한 이 출판사의 책들이 제법 꽂혀있습니다. 지난 대학 시절에 관심깊게 읽었던 여러 역사물이 이 출판사의 출판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존 J. 미어샤이머가 친히 서문을 썼는데요. 케넌의 이 책은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연구물일 수는 없지만, 강연록의 형태임에도 꽤나 지난 사반세기의 국제 정치와 관련하여 꽤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얼마전에 리뷰했던 리처드 돕스의 ‘1945’에서도 짧게 이 케넌이 언급되어 나오지만, 과거 헨리 키신저와 같이 국제 정치에서 면밀한 현실주의자로 개인적으로 그를 해석하고 있었는데요.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와같은 제 생각이 조금 짧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제 정치를 대하는 이들을 크게 자유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나뉜다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케넌은 엄밀히 완벽한 현실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의 1부는 찰스 R. 월그린 재단에서의 강연을 실고 있는데요. 크게 6개의 부분으로 1898년 대 스페인 전쟁과 아편전쟁 즈음에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침탈의 시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후의 일본의 대두, 양차 대전, 그리고 짧은 현대 세계의 외교를 담고 있습니다. 찬찬히 소개를 해 드리자면, 1898년 스페인과의 짧은 전쟁 당시 쿠바의 정권 사태와 메인호의 침몰로 인한 신속한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양도 받는데요. 케넌은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서술합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다소 제국주의적 분위기의 열망에서 시급하지 않은 필리핀을 손에 넣고,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던 필리핀을 병합한 것이 과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미 태평양의 거점으로 하와이를 두고 있으면서 앞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중국 진출에 대한 거점지로 필리핀을 택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면이 분명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하와이를 점령하면서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을 나치의 유대인 청소만큼 적극적으로 격멸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답습해 오늘날 “무기력하고 치욕적인.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시킨 것”으로 히틀러의 독일과는 달리 민주주의의 미국은 설사 패망하고 좌절하더라도 최소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있을 것이다라고 그가 말하는 것은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을 찰나에 미국이 개입해 ‘문호개방’이라는 기본적 조건을 설정해 관리한 사실이라든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이후 그 지역에서의 일본의 기득권과 영향력을 인정했지만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목표는 결국 2차대전 이후 일본을 중국과 만주, 한국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달성했는데 베를린의 독일과는 어떻게 도쿄가 그 전후처리가 달랐는지에 대해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을 내해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일본을 자신들의 영향력에 두고 소련을 상대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지정학적인 관점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 부분에서 케넌은 명확히 ‘미국의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설계자’의 입장에서 전후의 일본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열강의 공세에서 무력했던 중국을 정당한 무역 권리라는 이름으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던 미국의 입장이 바로 케넌이 말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옹호가 그러한 사고방식의 근본 같습니다.

그리고 양차대전에 대한 입장에서도 ‘1차대전은 무모한 살육의 한 가운데 있던 파괴적 전쟁’ 이었고, ‘2차대전은 독일을 바꾸기 위한 싸움, 독일의 행동을 바로잡고, 독일인들을 다르게 만들기 위한 것’ 으로 이미 뮌헨 협정 이전에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이 관여하여 ‘역겨웠던 히틀러 정권’을 유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로지 무조건적인 항복과 그를 위한 무차별적인 나치 독일과의 총동원적인 전쟁이 ‘무조건 정의로운 전쟁 만은 아니었다’는 케넌의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과 케네디 정부 하의 쿠바 사태에서 핵무기 사용을 입에 담았던 ‘커티스 르메이’ 와는 달리 조지 케넌은 원칙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이는 키신저와도 다른 부분입니다. 양차대전 이후 소련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고 숙고하는 자세로 봉쇄에 나서야 한다는 것과 처칠에 이어 다음 영국 수상에 오른 ‘사회주의자’ 애틀리가 소련을 극도로 혐오했던 것과는 달리 케넌은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세밀한 분석과 소련 자체를 독재 권력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미국 정부가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도 케넌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 말미에 아이젠하워와 마찬가지로 ‘군산복합체’에 대한 일종의 우려와 경고, 미국 내부에서 불타오를 수도 있는 막연한 애국주의 등에도 경고를 하는 것에서 그가 원칙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반대로 여기에 보이는 도덕과 법치주의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국익을 고려하고, 너무 이상주의에 몰입하지 말고, 세력 균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은 그가 기본적인 현실주의자의 표면도 보였습니다. 다만, 과거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일정부분 인정했다는 측면과 세력 안정을 위해 1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기득권을 인용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쾌하지 않은 부분일겁니다. 개개인에 따라 이 책의 여러 주장들에 대해 호불호나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 미국의 외교와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곁가지이긴 하지만 케넌이 생각하는 외교와 국제정치에 대한 일면을 또 엿볼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에게는 꽤 정형화되어 있던 그간 케넌의 이미지가 (일정 부분)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앞으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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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생각 - 오늘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 My Little Library 1
김선욱 지음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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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에게 한나 아렌트는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선욱 선생이 쓴 글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와 관련된 유일하고 고유한 해석과 정치철학과 관련된 통찰력으로 유명한데요.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기다란 담배 연기와 함께 흑백으로 잡힌 한나 아렌트의 사진이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대학 시절엔 얼마간 한나 아렌트에 매료되어 있었는데요. 인간의 조건과 전체주의의 기원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습니다.

일단 김선욱 선생의 이 얇은 글은 지난 2017년 촛불집회와 전체주의,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에 관한 한나 아렌트의 생각을 여기저기에 버무린 것인데요. 1장부터 15장까지의 소제목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주제들은 독립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서로 연계되어 이해를 돕고, 이러한 지류들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본류를 향해 모여집니다. 인간의 복수성이 인간은 개성을 가진 존재이고 인간은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개성이 억압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데, 전체주의가 이러한 개인들의 개성들을 억압하고 악화로 일원화시키며, 국민들의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해 결국에는 모두가 참혹하게 불행지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아이히만과 같은 기계적 복종의 사례가 ‘악의 평범성 내지는 악의 일상성을 대변하는데 이것은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개인들이 사고를 하지 않음에 기인한다고 아렌트의 말을 빌려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재나 아주 사악한 현상과도 어울리거나 화해해야 한다는 아렌트의 말은 그런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더불어 강조합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이성을 통한 사고로 현상이나 논리를 의심하고 성찰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전제는 어쩌면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하는 조건이고 왜곡되고 파멸된 민주주의가 막장의 전체주의로 귀결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거름종이와 같은 것이라고 저는 이해했는데요. 글 중간에 저는 화두라고 느꼈던 것은 우리의 일상에 과연 파시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삶을 이행하고 있는 현대 사회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양 다리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자본주의가 경제 논리로 소외시키는 것들에 대한 성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권위적인 독재와 사회를 모순에 빠뜨리는 정치적 평등의 부재, 기회 균등의 왜곡 등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렌트가 주장하는대로 ‘일상의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독자들과 시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데요. 결론에 저자는 “졸렬한 자신의 해석이 들어가 있으니 쓰레기통에 버리고” 본격적으로 한나 아렌트를 경험해 보라는 권유와 함께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개인적인 소감을 덧붙인다면,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 평등을 소개한 부분을 읽어보니, 문득 예전에 읽었던 로버트 달의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가 생각났습니다. 기본적인 정치학의 개념들은 이처럼 유사한 면이 많은 것 같은데요. 더불어 근래 나온 한나 아렌트와 몇몇 글들을 다시 구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의 특별한 점은 고안하고 주장했던 개념들을 면밀히 객관화시켜 만든 것이겠죠. 그리고 높은 설득력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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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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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자, 미국에서 냉전과 관련된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마이클 돕스의 ‘1945’를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Six Months In 1945’ 인데요. 부제로는 ‘From World Wat To Cold War’를 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대를 했는데요. 주를 포함한 600여페이지 분량을 소화하는데 5일이나 걸렸는데요. 좀체 시간이 나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완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사의 측면에서 2차대전사로는 앤터니 비버와 존 키건이 국내외에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 두 사람의 유명한 저서를 읽었는데요. 마이클 돕스의 이 글은 전자의 글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부터, 포츠담 회담을 거쳐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시기까지 연합군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와 각 3개국에 속한 정치인들과 외교관, 고위 군인들의 복합적인 의미의 행적들을 짚으면서 이 시기의 역사적인 의의와 변화 및 전환 등을 아주 상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특히 루즈벨트와 트루먼, 스탈린과 처칠의 사소한 성격과 습관, 말투 등을 꽤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당시 역사의 방향타를 잡았던 이들의 모습을 보다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마이클 돕스의 친절한 나레이션은 특정한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번역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는데요. 다만, 제가 발견하기로는 한 곳의 오탈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사료나 유명한 학자들의 글들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영도자’ 스탈린에게 적잖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적이고 매우 복잡한 정치적 식견 갖고 있던 것으로 유명했던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보인 인간적인 신뢰가 저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요. 처칠은 스탈린에게 ‘전시 동맹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제국주의 화신이라 할만큼 이념의 적’이라 평가받았던 반면에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양자간에 완벽한 신뢰는 아니었지만 꽤나 서로간에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돕스의 이 글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스탈린의 교묘한 전술’에 루즈벨트 뿐만 아니라 후임인 트루먼까지 국익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정확한 판단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탈린은 “영토를 재편하고, 민족 간 마찰을 부추기며, 분리주의 운동을 약화시키거나, 말 안듣는 민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영토 수복 명분을 지어내는 데 이골이 났다”고 평하는데요. 이처럼 스탈린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불신과 냉소주의라고 루즈벨트 역시 인정하지만, 거대한 파시즘을 제거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가치가 중요했던 것 만큼 루즈벨트 역시 이런 점에서 스탈린을 국익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또한 배려를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루즈벨트는 쟁점이 되는 부분에서 선의를 갖고 스탈린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3개국 정상 간에 얄타회담이 결정되고 나서 심각한 신체적 문제를 안고 있던 루즈벨트는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비행을 무릅쓰게 되는데요. 회담장 안에 소련측의 도청 가능성을 알면서도 당시 중요한 ‘원자폭탄 개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정도에서 미국측은 개의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현실주의를 민감하게 인식하던 루즈벨트와 트루먼이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낭만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오늘날 미국 외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얄타회담이 진행되기 전, 독일의 대 소련과의 동부 전선이 자국의 2000만을 희생시키는 등의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 스탈린은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독일로의 공세를 전환시킵니다. 미국과 영국의 서부 전선과 소련의 동부 전선으로 이원화 된 독일은 양 전선에서 전력이 붕괴되며 독일 본토로의 진공이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소련은 건장한 독일 민간인 남성들과 포로들을 확보하고 특히 소련군에 의한 약탈과 독일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는데요. 돕스는 그 수치를 최소 200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만의 민간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에 충격이었고, 체코 지역에서는 독일인은 뜻하는 ‘N’을 가슴에 달고 수용소에 수용되거나 분리되었다고 나오는데요. 저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 점령 초기에 미영과 소련간에 긴장감이 지속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들에 대한 약탈과 지속적인 강간에 미영은 크게 항의하지만, ‘희망이 안 보였던 극심한 전투에서 전우들을 뒤로하고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우며 서진했던 소련군들이 독일 여자들을 대상으로 강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당시 고위 소련군 장교들의 그 변명 아닌 변명을 보니 전쟁의 참혹함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있어서 자유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강조했던 미국과 영국의 요구가 사실상 무산되고 소련이 냉전 초기에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 연방 휘하에 두는 위성국가화의 시작이 되었고, 앞서 스탈린의 전술적 측면에 기인하는 거짓과 기만을 서슴치 않는 전략에 미국과 영국 양측이 물리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사할린 남부와 소련의 영유권과는 상관없는 일본측이 주장했던 북방 4개섬을 할양받으며, 오호츠크해를 내해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냅니다. 다만 이란에 있어서는 이러한 ‘살라미 전술’이 실패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스탈린은 특히 미국의 양보를 많이 얻어내며 영토확장과 세력확장에 성공합니다. 많은 사료와 전문가들의 발언으로는 소련의 일본 진공을 위해 미국이 크게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처럼 만주에서도 일제가 만들어놓은 각종 군수 물자 및 시설 기반, 산업 기계 등을 가차없이 징발하고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국에 필요한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실어가게 됩니다. 전쟁에 패한 독일이 정말 어떠한 댓가를 치렀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더군요.

전후 질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인해 마무리 되고,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까지, 미국은 짧은 핵독점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비로소 조지 케넌이 경고했던 냉전이 시작되고 미국의 자유 세계의 리더와 군산복합체가 대두하고, 소련은 더할나위 없이 견고해지는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강회됩니다. 처칠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스탈린에 의해 세워지는 철의 장막을 통해 전후 피도 눈물도 없는 거대한 전세계에 냉혹한 시기가 도래할 것을 짐작한 듯 보입니다. 돕스 역시 수차례 얄타회담 이후의 분위기를 통해 냉전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평가하는데요. 곳곳에 흥미로운 분석과 차분한 서술이 돋보이는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하셨으면 합니다. 다만 600페이지 분량과 약간 부담되는 책 가격이 약간 문제이긴 합니다만 평소에 2차대전의 전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접근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꽤 즐거운 독서를 충족시켜 드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부족한 글은 이쯤에 마무리 해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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