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울리히 벡과 앤소니 기든스와 함께 후기 근대론을 대표하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탈리아의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집인 이 ‘위기의 국가’를 읽었는데요. 안규남씨가 번역을 맡았고, 반가운 출판사인 동녘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여기에 참여한 두 사람이 뛰어난 논리로 대담을 진행하는데요. 그 주제들의 범위는 정치학 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 역사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난해하지 않았던 것은 역자의 노력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편집상으로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한 군데 있었는데, 그것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책의 제목인 ‘위기의 국가’는 간단히 말하면, 개인들에게 근대화 이후의 국가가 약속하고 보장했던 여러 안전 장치가 철회되고, 그것의 원인이라 볼 수 있는 무덤에 있는 ‘애덤 스미스’를 다소간 시장에 유리하게 해석해 자본주의가 국가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시장주의가 점진적이기 보다 배타적으로 발전시켜왔던 상황과 그 결과를 앞서 언급해 드린대로 정치와 사회학, 역사, 철학 등으로 여러 방면에서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 한가지 명쾌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많은 학자들이 오도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과잉’이라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데요. 사실상 인간의 역사에서 민주주의가 과잉된 시기는 없었고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의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민주주의가 과잉되었던 시기가 있었는지는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역설적이게도 모두에게 주어진 투표 권리가 그것을 통해 선출된 정부나 권력이 우리들에게 항상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만연해진 반정치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시민들에게 선출된 권력 혹은 정부가 항상 시민들을 위해 일하지 않는 현실은 전세계에서 너무나 많이 목격되어 도저히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1장과 2장이 위기가 닥친 국가, 정치가 없는 권력의 원인과 과정을 잘 설명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3장은 조금 더 심화된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니까 핵심은 대처와 레이건의 신자유주의가 위기의 국가를 초래했으며 그것의 종말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였다고 결론이 납니다. 인간의 역사가 근대성을 획득함으로써, 자유와 보장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진자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래서 사실상 진보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지 현세대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게 되었다는 바우만의 입장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시장과 결탁한 정부에 시민의 안전 보장과 복지와 관련된 문제에 진보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한데요. 자유와 보장의 양 가치는 높은 수준으로 서로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속성을 지녀서가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속성이 뿌리깊게 전 사회적으로 내리면서, 바우만은 “1퍼센트의 최상위 부자들이 부의 90퍼센트 이상을 가져가버리는 걷잡을 수 없는 불평등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과시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훨씬 더 수치스러운 시대이다” 라고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가진자들의 자유와 욕망은 더할나위 없이 충족되고 그 반대에 있는 삶의 보장조차 확실할 수 없는 계층의 자유는 그만큼 희생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일견 관찰해봐도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과잉’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죠.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의 비판은 많이 나오는데요. 특히 경제적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프레카리아트’는 핵심입니다.

이렇게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비정상적으로 대두할 가능성이 있고, “기득권자들은 유권자들에게 충성을 하거나 그들의 불평불만에 귀 기울일 의무도 없고 그들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할 생각도 없는 시대”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상황이 될 따름입니다.

3장은 과거의 근대는 공리주의가 주장하는 공공선을 바탕으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되는 책임을 인지하고 있던 시대였으며, 탈근대화와 포스트 모더니즘, 포스트 모더니티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소 이론적이어서 읽기가 난해하긴 했습니다만 1장과 2장의 연계된 논의가 이론적으로 보충되면서 결론이 난다는 점에서 다소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더군요.

약간의 논외지만, 앞 장에 메르켈 독일 총리에 관해 다소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요. ‘메르키아벨리’ 라는 우리가 아는 마키아벨리를 연계시켜 군주의 무자비하고 가공할만한 비결의 최신판이라는 수식어를 메르켈에게 더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략을 희화화 하면서 EU 가맹국에게 가혹한 수단을 적용하고 있는 행태를 꼬집고 있는 듯 합니다. 이 ‘메르켈 현상’은 오롯한 경제 일방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메르켈과 그녀의 독일이 주변을 강제하는 불통의 대표적 현상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 책은 몇번이고 계속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권력에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지식인들이 태반인 시대에 이 두 사람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