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 세계대전에서 냉전까지, 20세기 미국 외교 전략의 불편한 진실
조지 F. 케넌 지음, 유강은 옮김 / 가람기획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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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소간의 냉전이 첨예하게 전개될 시기에 소위 ‘냉전의 아버지’ 혹은 ‘냉전의 설계자’ 라는 평가로 유명했고, 미국 외교 역사상 현재에도 중요한 평가를 받는 조지 F. 케넌의 강연록을 엮은 이 책을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American Diplomacy 인데요. 지난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이듬해인 2013년 가람기획에서 한국어판으로 최초 번역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가람기획이라는 출판사가 내심 반가운데요. 제 서가에도 역사와 관련한 이 출판사의 책들이 제법 꽂혀있습니다. 지난 대학 시절에 관심깊게 읽었던 여러 역사물이 이 출판사의 출판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존 J. 미어샤이머가 친히 서문을 썼는데요. 케넌의 이 책은 엄밀히 따지면 일종의 연구물일 수는 없지만, 강연록의 형태임에도 꽤나 지난 사반세기의 국제 정치와 관련하여 꽤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얼마전에 리뷰했던 리처드 돕스의 ‘1945’에서도 짧게 이 케넌이 언급되어 나오지만, 과거 헨리 키신저와 같이 국제 정치에서 면밀한 현실주의자로 개인적으로 그를 해석하고 있었는데요.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와같은 제 생각이 조금 짧지 않았나 싶습니다. 국제 정치를 대하는 이들을 크게 자유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나뉜다면 이 책에서 보여지는 케넌은 엄밀히 완벽한 현실주의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의 1부는 찰스 R. 월그린 재단에서의 강연을 실고 있는데요. 크게 6개의 부분으로 1898년 대 스페인 전쟁과 아편전쟁 즈음에 중국에 대한 서구 열강의 침탈의 시기,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후의 일본의 대두, 양차 대전, 그리고 짧은 현대 세계의 외교를 담고 있습니다. 찬찬히 소개를 해 드리자면, 1898년 스페인과의 짧은 전쟁 당시 쿠바의 정권 사태와 메인호의 침몰로 인한 신속한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 필리핀을 스페인으로부터 양도 받는데요. 케넌은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서술합니다. 당시 미국인들이 다소 제국주의적 분위기의 열망에서 시급하지 않은 필리핀을 손에 넣고,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였던 필리핀을 병합한 것이 과연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미 태평양의 거점으로 하와이를 두고 있으면서 앞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중국 진출에 대한 거점지로 필리핀을 택하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면이 분명 있다고 보고 있는데요. 하와이를 점령하면서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을 나치의 유대인 청소만큼 적극적으로 격멸하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답습해 오늘날 “무기력하고 치욕적인.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전락시킨 것”으로 히틀러의 독일과는 달리 민주주의의 미국은 설사 패망하고 좌절하더라도 최소한 반성할 수 있는 기회는 있을 것이다라고 그가 말하는 것은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탈을 받을 찰나에 미국이 개입해 ‘문호개방’이라는 기본적 조건을 설정해 관리한 사실이라든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이후 그 지역에서의 일본의 기득권과 영향력을 인정했지만 미국이 추구하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목표는 결국 2차대전 이후 일본을 중국과 만주, 한국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달성했는데 베를린의 독일과는 어떻게 도쿄가 그 전후처리가 달랐는지에 대해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태평양을 내해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일본을 자신들의 영향력에 두고 소련을 상대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인데, 그것을 굳이 지정학적인 관점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뻔히 보이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 부분에서 케넌은 명확히 ‘미국의 전통적인 민주주의의 설계자’의 입장에서 전후의 일본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열강의 공세에서 무력했던 중국을 정당한 무역 권리라는 이름으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던 미국의 입장이 바로 케넌이 말하는 방식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미국인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옹호가 그러한 사고방식의 근본 같습니다.

그리고 양차대전에 대한 입장에서도 ‘1차대전은 무모한 살육의 한 가운데 있던 파괴적 전쟁’ 이었고, ‘2차대전은 독일을 바꾸기 위한 싸움, 독일의 행동을 바로잡고, 독일인들을 다르게 만들기 위한 것’ 으로 이미 뮌헨 협정 이전에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이 관여하여 ‘역겨웠던 히틀러 정권’을 유하게 만들 수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고, 오로지 무조건적인 항복과 그를 위한 무차별적인 나치 독일과의 총동원적인 전쟁이 ‘무조건 정의로운 전쟁 만은 아니었다’는 케넌의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과 케네디 정부 하의 쿠바 사태에서 핵무기 사용을 입에 담았던 ‘커티스 르메이’ 와는 달리 조지 케넌은 원칙주의적이고 도덕적인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이는 키신저와도 다른 부분입니다. 양차대전 이후 소련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고 숙고하는 자세로 봉쇄에 나서야 한다는 것과 처칠에 이어 다음 영국 수상에 오른 ‘사회주의자’ 애틀리가 소련을 극도로 혐오했던 것과는 달리 케넌은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세밀한 분석과 소련 자체를 독재 권력에 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미국 정부가 적절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입장도 케넌의 실용주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 말미에 아이젠하워와 마찬가지로 ‘군산복합체’에 대한 일종의 우려와 경고, 미국 내부에서 불타오를 수도 있는 막연한 애국주의 등에도 경고를 하는 것에서 그가 원칙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반대로 여기에 보이는 도덕과 법치주의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국익을 고려하고, 너무 이상주의에 몰입하지 말고, 세력 균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등의 주장들은 그가 기본적인 현실주의자의 표면도 보였습니다. 다만, 과거 태프트-가쓰라 밀약을 일정부분 인정했다는 측면과 세력 안정을 위해 1차대전 이후의 일본의 기득권을 인용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쾌하지 않은 부분일겁니다. 개개인에 따라 이 책의 여러 주장들에 대해 호불호나 상반된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 미국의 외교와 정치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곁가지이긴 하지만 케넌이 생각하는 외교와 국제정치에 대한 일면을 또 엿볼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저에게는 꽤 정형화되어 있던 그간 케넌의 이미지가 (일정 부분) 제대로 이해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앞으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좀 더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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