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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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기자 출신이자, 미국에서 냉전과 관련된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마이클 돕스의 ‘1945’를 일독했습니다. 원제는 ‘Six Months In 1945’ 인데요. 부제로는 ‘From World Wat To Cold War’를 달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무척 기대를 했는데요. 주를 포함한 600여페이지 분량을 소화하는데 5일이나 걸렸는데요. 좀체 시간이 나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완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전사의 측면에서 2차대전사로는 앤터니 비버와 존 키건이 국내외에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이 두 사람의 유명한 저서를 읽었는데요. 마이클 돕스의 이 글은 전자의 글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부터, 포츠담 회담을 거쳐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시기까지 연합군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와 각 3개국에 속한 정치인들과 외교관, 고위 군인들의 복합적인 의미의 행적들을 짚으면서 이 시기의 역사적인 의의와 변화 및 전환 등을 아주 상세하게 담고 있습니다. 특히 루즈벨트와 트루먼, 스탈린과 처칠의 사소한 성격과 습관, 말투 등을 꽤 자세히 서술하고 있어서 당시 역사의 방향타를 잡았던 이들의 모습을 보다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었는데요. 또한 마이클 돕스의 친절한 나레이션은 특정한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번역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는데요. 다만, 제가 발견하기로는 한 곳의 오탈자가 있었습니다.

여러 사료나 유명한 학자들의 글들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영도자’ 스탈린에게 적잖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달리 말하면 현실적이고 매우 복잡한 정치적 식견 갖고 있던 것으로 유명했던 루즈벨트가 스탈린에게 보인 인간적인 신뢰가 저로서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요. 처칠은 스탈린에게 ‘전시 동맹이기는 했지만 그야말로 제국주의 화신이라 할만큼 이념의 적’이라 평가받았던 반면에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양자간에 완벽한 신뢰는 아니었지만 꽤나 서로간에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돕스의 이 글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스탈린의 교묘한 전술’에 루즈벨트 뿐만 아니라 후임인 트루먼까지 국익과 외교적인 측면에서 정확한 판단을 유지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탈린은 “영토를 재편하고, 민족 간 마찰을 부추기며, 분리주의 운동을 약화시키거나, 말 안듣는 민족을 강제 이주시키고, 영토 수복 명분을 지어내는 데 이골이 났다”고 평하는데요. 이처럼 스탈린의 가장 두드러진 성격은 불신과 냉소주의라고 루즈벨트 역시 인정하지만, 거대한 파시즘을 제거하는데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가치가 중요했던 것 만큼 루즈벨트 역시 이런 점에서 스탈린을 국익과 정치적인 측면에서 또한 배려를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루즈벨트는 쟁점이 되는 부분에서 선의를 갖고 스탈린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3개국 정상 간에 얄타회담이 결정되고 나서 심각한 신체적 문제를 안고 있던 루즈벨트는 주위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비행을 무릅쓰게 되는데요. 회담장 안에 소련측의 도청 가능성을 알면서도 당시 중요한 ‘원자폭탄 개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정도에서 미국측은 개의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현실주의를 민감하게 인식하던 루즈벨트와 트루먼이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낭만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은 오늘날 미국 외교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얄타회담이 진행되기 전, 독일의 대 소련과의 동부 전선이 자국의 2000만을 희생시키는 등의 인명 피해를 감수하고 스탈린은 결국 전세를 역전시켜 독일로의 공세를 전환시킵니다. 미국과 영국의 서부 전선과 소련의 동부 전선으로 이원화 된 독일은 양 전선에서 전력이 붕괴되며 독일 본토로의 진공이 시작되는데요. 여기에 소련은 건장한 독일 민간인 남성들과 포로들을 확보하고 특히 소련군에 의한 약탈과 독일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자행되는데요. 돕스는 그 수치를 최소 200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00만의 민간인 여성이 강간을 당했다는 것에 충격이었고, 체코 지역에서는 독일인은 뜻하는 ‘N’을 가슴에 달고 수용소에 수용되거나 분리되었다고 나오는데요. 저로서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독일 점령 초기에 미영과 소련간에 긴장감이 지속되었고, 소련이 점령한 지역의 민간인들에 대한 약탈과 지속적인 강간에 미영은 크게 항의하지만, ‘희망이 안 보였던 극심한 전투에서 전우들을 뒤로하고 독일군과 치열하게 싸우며 서진했던 소련군들이 독일 여자들을 대상으로 강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당시 고위 소련군 장교들의 그 변명 아닌 변명을 보니 전쟁의 참혹함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있어서 자유 선거를 통한 정부 수립을 강조했던 미국과 영국의 요구가 사실상 무산되고 소련이 냉전 초기에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 연방 휘하에 두는 위성국가화의 시작이 되었고, 앞서 스탈린의 전술적 측면에 기인하는 거짓과 기만을 서슴치 않는 전략에 미국과 영국 양측이 물리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사할린 남부와 소련의 영유권과는 상관없는 일본측이 주장했던 북방 4개섬을 할양받으며, 오호츠크해를 내해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냅니다. 다만 이란에 있어서는 이러한 ‘살라미 전술’이 실패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스탈린은 특히 미국의 양보를 많이 얻어내며 영토확장과 세력확장에 성공합니다. 많은 사료와 전문가들의 발언으로는 소련의 일본 진공을 위해 미국이 크게 양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이처럼 만주에서도 일제가 만들어놓은 각종 군수 물자 및 시설 기반, 산업 기계 등을 가차없이 징발하고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국에 필요한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실어가게 됩니다. 전쟁에 패한 독일이 정말 어떠한 댓가를 치렀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더군요.

전후 질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으로 인해 마무리 되고, 1949년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하기 전까지, 미국은 짧은 핵독점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비로소 조지 케넌이 경고했던 냉전이 시작되고 미국의 자유 세계의 리더와 군산복합체가 대두하고, 소련은 더할나위 없이 견고해지는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강회됩니다. 처칠은 특유의 통찰력으로 스탈린에 의해 세워지는 철의 장막을 통해 전후 피도 눈물도 없는 거대한 전세계에 냉혹한 시기가 도래할 것을 짐작한 듯 보입니다. 돕스 역시 수차례 얄타회담 이후의 분위기를 통해 냉전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평가하는데요. 곳곳에 흥미로운 분석과 차분한 서술이 돋보이는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하셨으면 합니다. 다만 600페이지 분량과 약간 부담되는 책 가격이 약간 문제이긴 합니다만 평소에 2차대전의 전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접근에 대한 내러티브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꽤 즐거운 독서를 충족시켜 드리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부족한 글은 이쯤에 마무리 해야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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