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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 - 시적 풍경과 회화적 풍경 아시아의 미 (Asian beauty) 6
박은영 지음 / 서해문집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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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庭園)이란 말 역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용어이다. 우리는 원래 원림(園林)이란 말을 사용했다. ()은 마당과 동산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며 저자는 우리의 원()은 원정(園亭), 중국은 원림(園林), 일본은 정원(庭園)으로 호칭한다.

 

저자는 원정(園亭)을 보는 두 가지 풍경을 제시한다. 하나는 시적 풍경, 다른 하나는 회화적 풍경이다. 시적 풍경은 문학적 상상을 통해 채색되는 것이고 회화적 풍경은 그림으로 채색되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시인은 계절이라는 시간을 마음대로 불러온다. 그런가 하면 화가는 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15 페이지) 시는 공간적 한계가 전제되고 그림은 시간적 제약이 전제된다.(37 페이지)

 

풍경으로 본 동아시아 정원의 미는 시와 그림이라는 두 얼굴을 통해 세 나라 정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간 여정을 담은 책이다.

 

경관(景觀)을 이해하는 것은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 과학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려는 태도이다. 풍경은 상대적으로 감성적이며 정감(情感)에 의존하기에 주관적으로 그려지는 하나의 심상이라는 의미가 있다.(25, 26 페이지)

 

시적 풍경은 마음의 그림이다. 시적 풍경은 상상에 의해서, 회화적 풍경은 연상에 의해 생명을 갖게 된다.(27 페이지) 우리의 원정에서 연못에는 시적 풍경과 회화적 풍경이 공존한다.(29 페이지)

 

시와 그림은 원림을 만드는 과정에서 중요한 개념적 골격을 제공했다. 그리고 완성 이후에는 원림의 자연미를 완상(玩賞: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할 수 있게 했는바 완상한 원림 곳곳을 다시 시와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이 원림의 역사였다.(29 페이지)

 

회화적 풍경은 화가의 눈과 보는 이의 마음 사이에 만들어지는 또 다른 풍경이다.(39 페이지) 그림이 창조한 풍경을 회화적 풍경이라 한다.(41 페이지) 시적 풍경은 반드시 시를 읽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55 페이지)

 

그림은 표현된 사물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도록 유도하지만 시는 독자에게 언어를 던져줄 뿐 더욱더 상상을 유발하게 해 이미지 층을 두껍게 형성한다.(60 페이지) 그림은 정태적이고 평면적인 예술이어서 동태적이고 입체적인 내용을 한 폭에 모두 담기 힘든 경우가 많다. 제화시(題畫詩)는 바로 이런 결점을 보완한다. 시와 그림이 한 화면 속에 있는 이상 제시(題詩)의 위치는 당연히 전체 화면의 구도에 영향을 준다.(61 페이지)

 

우리 선비는 기화요초(琪花瑤草: 옥같이 고운 풀에 핀 구슬같이 아름다운 꽃)를 멀리했다. 조선의 문사는 꽃과 나무를 감각적인 매력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인격을 부여해 그 소재를 사람이 지켜야 할 유가적 덕목의 상징으로 보았다.(87 페이지)

 

자세한 관찰을 통해 특징적 형식(패턴, 정형, 규칙)을 찾아내는 과정을 과학에서는 일반화라 하고 예술에서는 추상화라 한다. 예술 역시 추상화를 통해 사물의 여러 얼굴을 읽으려 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의 속성은 언제나 불완전해서 그 일부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나머지 속성은 추상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92 페이지)

 

예술에서 추상화의 길은 필연적이다. 자연의 추상화는 예술에서 이른바 틀 짜기(프레이밍)라는 방법으로 구현된다. 틀 짜기는 제약이 없는 열린 주위 환경의 맥락(context)에서 특정 부분(텍스트)을 잘라내는 행위를 말한다. 예술가가 주위의 모든 사물로부터 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이를 추출하는 과정이다.(93, 94 페이지)

 

세계를 전체로 바라보지 않고 부분을 통해 전체를 조감하는 것이 틀 짜기이다. 부분의 조합을 통해 인식되는 전체는 처음의 전체와 다르다. 예술적 상상력은 이런 틀 짜기에서 발생한다.

 

원림(園林)은 자연을 가두는 일이다.(100 페이지) 한국 원정에서 틀 짜기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녹색의 자연 뿐이다. 문틀 자체에 특별한 장식이 없고 바라보는 그대로의 자연을 감상하게 되어 있다. 변하는 것은 사시사철의 색깔, 바람, 안개, 그리고 눈(snow)이다.(105 페이지)

 

정원에서는 자연미를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체험한다. 정적인 상태에서 자연미를 읽는 정관(靜觀)과 원로를 따라 움직이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동관(動觀)이다.(111 페이지) 정관과 동관은 본질적으로 상대적 개념이다. 정지의 뜻이 없는 움직임이 없듯 움직임 속에 머뭇거리는 정지 개념이 없는 동적 풍경 체험은 불가능하다.(112 페이지)

 

저자는 다비드상을 예로 들며 그 상()에서 대리석이 갖지 않는 다른 성질(다비드라는 인간의 성격)이 나타날 때 우리는 이런 현상을 예술적 창조 또는 재현이라 말한다고 설명한다.(117 페이지)

 

원림은 인간의 우주에 대한 이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심미적 수단이다. 고대부터 중국의 통치자는 원림을 지상의 신선세계로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봉건제 하의 민가에서는 대규모로 원림을 조성할 수 없어 점차 작은 규모 안에 거대한 자연을 끌어들이는 수법을 발전시켰다.(129 페이지)

 

원림은 그림과 시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예술 분야다. 시화서가 일체라는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시대 변천에 따라 자연스럽게 융합된 것이다.(159 페이지) 원림은 가장 완벽한 공간예술이며 원림 조성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의미를 재현하는 예술행위다. 즉 원림은 자연을 통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나에 관한 생각이 공간에 나타나는 예술이다. (162 페이지)

 

지배계급에 의해 향유되었던 시, , 서의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면 동아시아 원림문화의 진정한 미적 표현과 정서, 나아가 미적 체험을 경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원림을 보고 느끼기 이전에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163 페이지)

 

원이라는 개념은 회화에서 추구하는 미학적 사유이면서 동시에 공간 구축에도 적용되는 예술적 사고방식이다.(167 페이지) 중국 원림 속 자연이 인간에 의한 자연이라면 한국 원정에서 자연은 자연 속의 자연이라 할 수 있다.(175 페이지)

 

일본의 정원은 불교의 선종과 관련이 깊다.(175 페이지) 일본 정원에서 자연은 인간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관조(觀照)의 대상이다.(176 페이지)

 

선비가 관직에서 물러나 칩거하면 은둔이고 세속을 멀리해 별서(別墅)를 짓고 살면 복거(卜居)라고 한다.(203 페이지)

 

한국에서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귀거래(歸去來)와 도원경(桃源境)에 대한 향수는 점차 그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같은 귀향이지만 과거에는 정치적, 사회적, 제도적 모순에 대한 해결책으로 귀거래를 택한 반면 지금은 건강, 가족, 직업, 안전, 소통 등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인간성의 회복이라는 목표에 따라 움직인다.(286 페이지)

 

현대 정원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를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회가 변하고 문화적 가치가 변화하는 보편적 추세에 따라 서서히 변할 것은 틀림 없다.(287, 288 페이지) 정원이 자연을 가두고 그 속에서 자연을 다시 생각하는 공간적 장치라는 개념은 아마도 앞으로 변하지 않는다고 전제할 때 미래의 정원에서 시적 회화적 풍경은 어떻게 전개될지가 곧 미래 정원의 형식과 내용이 될 것이다.(288 페이지)

 

저자는 21세기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각국의 문화가 거로 충돌하고 섞이는 정도가 심대하다고 전제하며 그러므로 한 나라의 원림문화를 독자적, 배타적으로 말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원림미를 조감하는 데 큰 의미가 없다고 결론짓는다. 상대적으로만 구별할 수 있는 미묘한 형식과 상징의 차이만이 있기 때문이다.(293 페이지)

 

물론 저자가 말했듯 사람들은 한마디로 그 특징을 말하고 듣기를 원한다.(293 페이지) 동아시아의 원림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 요소는 종교이다. 중국의 경우는 도가 사상이 지배했고 일본은 불교 특히 선불교가 크게 작용했고 한국은 그 위에 유가적 가치관이 덧씌워져 발전해왔다.(294 페이지)

 

원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은 그림 같다는 느낌으로 통하고 이것은 곧 원림에서 회화적 풍경으로 인식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경우가 자주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시적 풍경이다. 원정에서는 이 두 얼굴이 서로 교차한다.(295 페이지)

 

그러나 시와 그림이 그 자체로 우리 마음속에 끝까지 남지 않듯 정원미를 음미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다. 이것은 예술이 인간에게 주는 정신적 가치와 동일하다.(295 페이지)

 

원정에서 자연은 그냥 산천에 펼쳐지는 구름과 산과 강과 꽃나무 그대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이 장인(匠人)의 손에 의해 어떻게 달리 아름답게 창조되었는가를 발견하는데 그 가치가 있다.(2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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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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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에게 다 같이 적용되며, 생각하는 것이나 만드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놀이이다. 놀이에는 뜻이 있다. 여기에서 호모 루덴스란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란 호모 사피엔스, 만드는 것은 호모 파베르를 염두에 둔 말이다. 놀이는 본능으로도, 의지나 정신으로도 설명할 것이 아니다.

 

물론 놀이를 인정함에 따라 우리는 정신을 인정한다. 놀이는 총체성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놀이는 어떤 것의 목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한다. 세계가 맹목적인 힘의 작용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보면 놀이는 말 그대로 하나의 과잉(過剩: superabundance)이 된다.

 

abundance(과잉)란 단어의 마지막 부분 즉 dance에 눈이 간다. 다시 말해 superabundance(놀이를 대표하는) dance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놀이는 비이성적인 것이다. 신화도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놀이이다. 온갖 분방한 상상 작용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정신은 진실과 농담의 경계선 위에서 놀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순수한 놀이가 문명의 주된 기초 중 하나라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웃는 동물이란 개념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개념보다 인간을 더 잘 묘사할 수 있다. 놀이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참과 거짓, 선과 악의 대립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놀이는 자발적인 것이다.

 

명령에 의한 것은 이미 놀이가 아니다. 놀이는 언제든 연기될 수 있고 중지될 수 있는 여분의 것이다. 놀이는 문화적 기능이 있기에 사회적으로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놀이는 제한된 시간과 장소 속에서만 존재한다. 놀이는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이다. 놀이는 불완전한 세계 속으로, 혼돈된 삶 속으로 일시적이고 제한된 완벽성을 가져다준다.

 

놀이는 우리가 사물 속에서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두 가지 성질 즉 율동과 조화로 충만해 있다. 제의(祭儀)는 좀더 신성하고 좀더 성스러운 진지함이다. 그런데 이것이 놀이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 제의는 참여자들을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다는 점에서 놀이이다.

 

플라톤은 성스러움을 놀이라고 불렀다. 이는 물론 신성모독이 아니라 놀이의 개념을 정신의 최고 영역에까지 올린 것이다. 놀이가 제한된 공간에서 행해지듯 제의도 성스러운 영역에서 행해진다. 공동체의 종교의식이 고귀하고 진지하듯 무의식적이고 순수한 진짜 놀이도 매우 진지하다.

 

놀이는 자유분방함과 무아경의 두 극단 사이에서 움직인다. 음악은 시간과 공간의 엄격한 한계 내에서 시작되고 끝나며 반복할 수 있고 그 본질은 질서, 율동, 변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청중과 연주자를 동시에 일상적인 생활을 벗어난 기쁨과 평안의 세계로 데려다주기에 청중과 연주자를 매료하고 사로잡는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음악을 놀이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완전히 납득 가능한 이야기이다. 놀이의 반대어는 진지함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두 반대어를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가령 놀이 진지함(Spiel Ernst)이란 말이 그것이다. 놀이는 문화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문화의 초기 단계에 놀이적 성격을 갖는다.

 

하나의 문화가 진행됨에 따라 놀이와 놀이 아닌 것 사이의 본래적 관계는 정적인 상태로 남아 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놀이 요소는 대개의 경우 종교 의식 영역으로 흡수되어 버리면서 점차 그 세력을 잃는다. 물론 어느 시대에든, 고도로 발전된 문명에서까지도 놀이의 본능은 매우 강력한 힘으로 되살아나서 개인이나 대중을 거대한 놀이의 황홀경 속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저자는 포틀래치를 단순한 투기(鬪技) 본능으로 보며 그것에 엄격한 놀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문화는 놀이로서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놀이로부터 시작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놀이 속에서 시작된다. 놀이는 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원초적인 것이다. 라틴어에서 성스러운 경기가 놀이라는 단순한 말로 불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모든 문화에서 투기적 관습으로 특징지어지는 놀라운 유사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인간 정신의 영역 즉 지식과 지혜의 분야이다. 시를 짓는 것도 놀이 기능이다. 그것은 정신의 놀이터 즉 정신이 그것을 위해 창조해주는 그 독자의 세계 속에서 진행된다.

 

이 속에서 사물은 일상생활에서 갖는 외관과는 매우 다른 외관을 갖는다. 시는 진지함 너머에 즉 어린이, 동물, 미개인, 예언자가 속하는 보다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수준, , 매혹, 엑스터시, 웃음의 영역에 속한다.

 

고대 시인의 진정한 명칭은 라틴어로 바테스(Vates) 즉 악마에 홀린 사람, 신들린 사람, 헛소리 하는 사람이다. 이런 자격은 동시에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 원초적 문화 창조 능력에서 볼 때 시는 놀이 속에서, 놀이로서 탄생한다. 그러나 항상 그 신성함에도 불구하고 쾌활한 탐닉, 환락, 흥겨움과 접해 있다.

 

시적 능력은 사교적 모임, 씨족과 부족, 종족 사이의 격렬한 논쟁 속에서도 개화한다. 순수한 미적 욕구의 만족과는 멀리 떨어진 시라는 형식이 공동 사회의 생활을 위해 필수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상태는 오늘날의 진보된 문화 속에서도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세계 어디서나 시가 산문에 선행한다. 진지한 것, 성스러운 것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은 시 뿐이다. 신화는 어떤 형식을 취하든 항상 시이다. 시와 놀이의 유사성은 외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조적 상상력의 구조에서도 그 유사성은 나타난다. 시구의 전환, 주제의 전개, 분위기의 표현 등에는 항상 놀이 요소가 작용한다.

 

그 자체가 경쟁의 한 형식인 시는 고대의 수수께끼 기합과 거의 구별할 수 없다. 후자는 지혜를 만들고 전자는 아름다운 언어를 만든다. 시적 언어가 이미지를 다룬다는 것은 이미지를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어떤 은유의 효과가 사물과 사건을 살아 있는 것과 움직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에 있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의인화의 과정에 접어들게 된다.

 

형체도 생명도 없는 어떤 것을 한 인격체로서 묘사한다는 것은 모든 신화 형식의, 그리고 대부분 모든 시 짓기의 정수(精髓)이다. 기술적으로 하나의 표현 형식으로 간주되는 궤변법은 원시적 놀이와 많은 연관성을 갖는데 그런 연관성을 우리는 이미 소피스트의 전신인 바테스에게서 발견한 바 있다.

 

놀이와 음악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제의(祭儀), , 음악, 놀이의 관계는 플라톤의 에 쉽게 잘 서술되어 있다. 플라톤은 신들이 슬픔을 안고 살아 가도록 태어난 인간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그들이 고통으로부터 잠시 쉴 수 있도록 추수 감사 축제를 제정하고 그들에게 뮤즈들의 우두머리인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를 보내 그들의 친구가 되게 했다고 썼다.

 

음악에 관련된 모든 것이 놀이 영역에 머무는 것이라면 음악의 쌍둥이 자매라 할 무용은 더욱 그렇다. 놀이와 춤의 관계는 너무 밀접해서 거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춤이 그 자체 안에 어떤 놀이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놀이를 이루는 데에 절대 필요한 하나의 구성 요소가 춤이라는 말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직접적인 참여의 관계이며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춤은 특수한 형식의 놀이이며 특별히 완벽한 형식의 놀이이다. 조향 예술의 경우에는 놀이와의 연관성이 시, 음악, 춤의 경우처럼 명확하지 않다. 질료의 구속을 받으며 또한 그 질료가 허용해주는 형태의 한계에 매인다는 사실 때문에 조형 예술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놀이가 될 수 없으며 음악과 시에는 허용된 천상의 공간으로 날아오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춤은 변칙적이 위치에 있다. 춤은 음악적이며 동시에 조형적이다. 리듬과 동작이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음악적이며 불가피하게 물질에 매이기 때문에 조형적이다. 춤은 조각과 마찬가지로 조형적 창조이지만 순간적으로만 그렇다.

 

제의, 예술, 놀이 사이의 언어적 연관성을 나타내는 말이 아갈마이다. 환희, 기쁨, 축하하다, 빛나게 하다, 자랑하다. 기뻐하다, 치장하다, 장식, 내보이는 물건, 귀한 물건, 입상(立像), 특히 신상(神像)을 의미한다. 저자는 서유럽 문명을 놀이의 아종(亞種)으로 분류한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은 어느 정도까지 놀이 형식을 유지하고 있는지 묻는다. 저자는 스포츠는 이제 점점 체계화하고 조직화되어 순수한 놀이적 특질의 어떤 부분이 상실되었음을 지적한다. 프로페셔널의 정신은 이제 진정한 놀이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움과 내키는 대로 하는 태평스러움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아마추어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아마추어들은 열등 콤플렉스에 시달림으로써 스포츠를 진정한 놀이 영역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만들어 마침내 스포츠는 독립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정신과 손이 가장 자유롭게 움직이는 분야에서 특히 놀이 기능이 작용한다.

 

놀이는 도덕적 규범의 영역 바깥에 놓여 있다. 놀이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의지가 우리에게 명하는 어떤 행동이 진지한 의무인가 또는 놀이로서 적법한가를 결정해야 한다면 그때에는 우리의 도덕적 양심이 즉시 그 시금석을 제공할 것이다. 행동하려는 우리의 결심 속에 진실, 정의, 동정, 용서가 포함되어 있다면 그 행동이 놀이인가 진지한 것인가, 하는 우리의 걱정스러운 의문은 곧 무의미해지고 만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의 저자 부르크하르트가 중세와 르네상스를 명확하게 대비시킨 데 비해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에서 르네상스를 중세의 결실로 보았다.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문화사 연구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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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 - 정신분석의 역사 속에서 <에크리>, <세미나> 바로 읽기 1
홍준기 지음 / 새물결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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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의미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말을 응용해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는 의미의 여시아해(如是我解)란 말을 해야겠다. 홍준기 교수의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을 다 읽고 하게 된 생각이다.

 

난삽하고 장황한 라캉 정신분석학을 저자가 쉽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그렇다 해도 내 이해가 온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잘못된 이해가 저자의 책을 퇴색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라캉과 알튀세르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저자는 라캉 강의를 하고 있다. 소개 글에 의하면 '라캉, 클라인, 자아심리학'라캉의, 라캉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는 도발적이고 논쟁적인 역작이다.

 

저자는 '에크리''세미나' 바로 읽기를 주제로 한 이번 책에 이어 '세미나 2;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출간을 앞두고 있다. 궁금한 것은 라캉의 독단적 이론 체계에 의해 왜곡된 멜라니 클라인을 저자가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는지, "라캉 이론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상호 인정도, 인간관계도, 사랑도 사실상 모두 불가능하"(404 페이지)다는 입장을 가진 정신분석학자로서 저자가 라캉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등이다.

 

저자의 책은 라캉 비판서이지만 비판이란 기본적으로 자아심리학, 클라인학파 등 라캉주의 정신분석학파의 이론과의 관계에 따라 이루어지기에 언급한 학파들의 사상을 함께 접할 수 있다.

 

라캉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자. 라캉은 자아를 상상적인 것으로 폄하했다.(15 페이지) 짧은(일방적인, 정신분석의 임의로 끝내는) 세션기법을 도입했다.(16 페이지) 라캉은 짧은 세션 외에 어떤 다른 테크닉도 이야기하지 못했다.(157 페이지)

 

라캉주의자들은 침묵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무의식을 드러낸다는 명분으로 급작스럽게 세션을 종료한다.(114 페이지) 라캉을 공부하면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라캉의 독단적이고 형식적인 개념틀에 오히려 포획되기 쉽다.(20 페이지) 라캉 이론은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보수적인 이론이다.(24 페이지)

 

라캉은 프로이트를 수정, 확대하려는 학문적 시도를 자아심리학이라는 애매한 통칭적 표현으로 통렬하게 비판했고 많은 이들이 그러한 구호에 현혹되었다.(32 페이지) 라캉은 자신의 이론 이외의 다른 정신분석학파들은 근본적으로 프로이트로부터 이탈했다고 주장했다.(42 페이지)

 

라캉 이론은 정교한 것 같지만 철저하게 분석해보면 매우 느슨한 방식으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46 페이지) 라캉은 자아의 인식을 망상적 인식으로 보았다.(47 페이지) 라캉의 논리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 없는 정신분열증 환자로 살아야 한다.(48 페이지) 라캉은 자아 자체를 상상계로 본다.

 

이에 의하면 분석도 합리적 사유도 불가능하다.(49 페이지) 라캉은 자아의 발달과 성숙, 엄마의 역할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49 페이지) 라캉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말을 파악하기 어렵게 서술했다.(53 페이지) 라캉 이론은 복잡한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매우 단순한, 하지만 단순함을 복잡함으로 은폐하는 모호한 이론이다.(125 페이지)

 

라캉의 말은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그때그때 종종 바뀌었다.(54 페이지) 상반되는 내용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라캉 이론은 상호 모순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상상적 욕망을 투사할 수 있는 빈 스크린으로 작동할 수 있다.(91 페이지)

 

라캉 이론은 근본적으로 가부장적 이론이다.(55 페이지) 라캉의 비판 방식은 비학문적이고 선동적이다.(56 페이지) 라캉 이론은 종합적 평가를 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59 페이지) 물론 라캉 임상론은 복잡한 듯 하지만 매우 단순하고 형식적이고 구조적인 틀을 제시하기에 그의 임상론을 알고 있다면 정신분석 임상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한다.(60 페이지)

 

라캉의 개념을 가지고 분석할수록 분석은 방해받으며 무의미한 언어유희로 끝나고 만다.(67 페이지) 라캉은 다른 사람들의 이론을 이용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버린다.(69 페이지) 라캉은 후기로 갈수록 아버지 이름이라는 기표(언어)보다 충동을 강조했다.(93 페이지) 라캉 이론에서 분석가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사실상 유일한 창문이다.(96 페이지)

 

라캉은 자유, 인격, 감성 등 인간적 가치를 혐오했다.(97 페이지) 라캉 이론은 오직 현실과 무관하게 내면세계만 들여다보고 밑도 끝도 없이 분석 유희를 하도록 만드는,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분석 이론이다.(115 페이지) 라캉 정신분석은 현실을 상상계로만 간주하며 신뢰할 수 있는 좋은 분석가를 내사(內射)함으로써 자아가 성숙해진다는 이론을 전적으로 무가치하게 여긴다.(144 페이지)

 

라캉주의자들의 임상서적은 라캉의 것이 아닌 것들, 즉 라캉 이전에 이미 클라인학파, 자아심리학자, 대상관계이론 등에서 발전시킨 개념들을 암묵적으로 활용하거나 다른 학파의 이야기들을 과도하게 비판하거나 다른 학파들도 다 알고 있는 프로이트의 사례 또는 다른 학파들의 사례를 마치 라캉의 사례인 것처럼 제시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했다.(158 페이지)

 

라캉이 상상계, 상징계, 실재라는 세 범주를 언급한 것은 1953년이다.(174 페이지) 물론 이 개념틀은 정신분석 역사 속에서 암묵적으로(혹은 상당히 명시적으로), 그리고 철학사의 영역에서는 명시적으로 존재했던 개념이다.(183 페이지)

 

(언어)은 상징계다.(184 페이지) 말해지는 대상이 실재이다.(185 페이지) 상상계는 의미의 고정성을 의미한다. 상상계 또는 상상은 허구적 생각 또는 심지어 망상, 환각 등을 떠올리지만 의미의 고정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무한한 기표를 사용해 실재를 설명하려고 할 경우 현실적으로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디에선가 강제적으로(편의적으로) 기표의 흐름을 중단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미가 고정되었다라는 착각에 빠진다.(191 페이지) 우리는 또한 모순된 기표들이 아무 마찰 없이 공존한다고 쉽게 생각한다. 의미의 고정 또는 일관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순적인 기표들의 공존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상상계이다.(192 페이지)

 

우리는 모순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모순을 보지 않으려 한다는ᆫ 점에서, 달리 말해 모순을 알고자 하지 않는 의식적이고도 무의식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상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193 페이지) 실재가 인간에게 의식되고 파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어 행위 속에서 기표로 등장해야 한다.

 

하지만 기표(언어, 단어)는 실재를 완벽히 표현할 수 없거나 모순적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실재는 궁극적으로 의미의 고정에 도달할 수 없는 순수 차이라 할 수 있다.(195 페이지) 임상적으로 말하자면 라캉은 정신병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고정점(자아정체성)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일화 또는 동일화를 통해 형성된 자아를 상상계라고 배제함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모순과 딜레마에 빠졌다.(208 페이지)

 

라캉에게 현실은 상상계에 속한다.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상징계를 구성하는 차이가 은폐ᅬ되어 결국 상상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211 페이지) 라캉은 하이데거를 따라 불안이란 정서를 존재 즉 실재를 드러내는 근원적 정서로 파악한다.(198 페이지)

 

라캉은 줄곧 실재 즉 존재를 고통이라는 관점 또는 인간을 잠에서 깨우는 트라우마, 심지어 범죄적 파괴라는 관점에서 설명한다.(215 페이지) 구조주의적 언어관을 취하는 라캉 이론에서 말하는 주체는 사실상 없다.(221 페이지) 라캉은 그것이 말한다고 말한다. 라캉에서 욕망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어머니와 누리던 상상적 만족을 포기하고 법과 규범, 금지의 세계로 진입함으로써 결여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228 페이지)

 

라캉은 프로이트의 남근(男根) 이론을 생물학적 접근 방식을 넘어서 기표적 관점에서 고찰해 팔루스를, 주체의 결여를 메워준다고 가정되는 권능적인 상징 즉 기표로 보았다.(232 페이지) 라캉은 팔루스를 궁극적으로는 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지만 남녀의 차이를 구분하는 특권적 기표가 남근과 관련된 기표라는 사실은 라캉이 여전히 남근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자는 생물학적 남근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개 팔루스를 상상화하지만 적어도 팔루스라는 기표라도 소유하고 있는 반면 여자는 그런 하찮은 팔루스 기표조차 가지지 못한 존재로 정의된다.(235 페이지) 라캉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이는 우선 인간은 타자의 욕망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 무엇보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한다는 의미이다.

 

타자로부터 인정받기를 욕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243 페이지) 라캉 이론에서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근본적 결여를 강조하는 개념이고 요구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이 완전히 충족될 것을 요구하거나 충족되었다고 믿는 심리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욕망은 상징계에 속하고 요구는 상상계에 속한다.(252 페이지)

 

라캉 이론에서 소타자 a는 상상적 대상(나르시시즘적 대상, 엄마)이고 대타자 A는 상징적 대상(아버지)이다.(265 페이지) 라캉 이론에서 욕망과 주이상스의 차이는 중요하다. 욕망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주체적 결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후기에 강조되는 주이상스는 육체와 충동을 가진 인간이 체험하는, 그러나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동) 만족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되었다.(271 페이지)

 

라캉은 욕망의 소외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환상을 통과해 그 배후에 있는 충동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징계와 상상계를 벗어나 실재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라캉이 말하는 환상의 통과 즉 분석의 끝이다. 이런 이유로 라캉은 후기로 갈수록 충동만족 즉 주이상스란 개념을 서서히 도입한다.(273 페이지)

 

주이상스는 고통 속의 쾌락이다. 중요한 점은 라캉의 주이상스란 순수한 충동만족, 상상적 만족, 상징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만족, 고통 속의 쾌락 모두를 포괄한다는 점이다. 성적 쾌락도 주이상스이다.(274 페이지)

 

인간은 공동체에서 살아가기에 만족은 결코 무제한적일 수 없고 우리의 만족이 타자의 명령 또는 금지와 무관하게 달성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의 쾌락은 기본적으로 고통 속의 쾌락일 수밖에 없다.(274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주이상스와 관련된 라캉의 논제는 너무 상식적이다.(276 페이지)

 

라캉은 엄마에 대해 긍정적 기능을 할당하지 않았다. 라캉에게는 나쁜 엄마만 존재할 뿐 좋은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듯 라캉에게 엄마는 정신분열증을 유발하는 존재이다.(310 페이지) 라캉은 엄마를 양자 관계를 이끌어가는 작은 타자로, 아버지를 이를 벗어나게 해주는 큰 타자로 불렀다. 물론 라캉은 엄마를 최초의 큰 타자로 불렀지만 이 경우는 벗어나야 할 무서운 존재이다.(311 페이지)

 

클라인에 대해 말하자.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버지를 정신분석 임상의 중심에 놓기를 원했으며 클라인은 엄마에 더 초점을 둔 임상론을 발전시키려 했다. 저자는 프로이트(라캉)와 클라인학파의 논쟁을 단순히 아버지냐 어머니냐는 대립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그것은 정신분석의 본질과 목표, 방향, 더 나아가 정신분석과 사회라는 큰 이야기를 포함하는 이론적 대결이었다고 설명한다.(87 페이지)

 

클라인은 좋은 엄마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를 조기 오이디푸스 이론과 연결지은ᆫ 최초의 이론가이다.(178 페이지) 클라인은 우울적 위치에서 어머니와의 분리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애정, ()으로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양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250 페이지)

 

클라인 이론은 프로이트 이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288 페이지) 클라인은 오이디푸스기가 생후 4 6개월에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오이디푸스기를 당긴 것이다. 생후 4 6개월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전() 오이디푸스기와 겹치는 시기이다. 물론 이 시기도 여전히 오이디푸스기이다.

 

전오이디푸스기에도 삼각관계가 존재한다.(302 페이지) 클라인은 아이를 망상 분열적 위치에서 우울적 위치로 이끄는 좋은 엄마에 대해 임상적 이론적으로 깊이 성찰한 선구자이다.(310, 311 페이지) 클라인은 좋은 엄마와 더불어 좋은 아버지 역할도 중시했다.(313 페이지)

 

클라인에 의하면 신경증자는 분리와 안정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좋은 엄마(좋은 아버지)를 받아들인 주체이다. 클라인은 정신병적 상태(망상 분열적 위치)에서 신경증자 즉 정상적 주체로 성장하려면 분리와 안정감을 동시에 도입하는 좋은 엄마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반면 라캉은 결여와 분리만 도입하는 아버지 기표만으로 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었다.(314 페이지) 클라인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근친상간적 소망의 좌절이 아니라 젖떼기에서 경험한 좌절 때문에 활성화해 항문적 좌절을 겪으며 강화된다.(325 페이지) 초자아는 구순적 좌절, 청결 등 배변 훈련을 통해 야기되는 항문적 좌절과 직접 관련된다.

 

아이는 그러한 좌절을 절단 및 거세로 체험한다. 여기에서 라캉이 거울단계에서 말한 조각난 몸에 관한 환상 역시 클라인에게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333 페이지) 클라인에 의하면 조기 오이디푸스기는 목가적 유토피아가 아니라 엄마의 잔인한 초자아에 의해 짓눌리는 시기이다.(334 페이지)

 

클라인은 망상 분열적 위치, 우울적 위치 개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개념보다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346 페이지) 망상 분열적 위치가 우울적 위치에 앞선다. 위치라는 개념은 생애 초기 단계에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그런 위치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할 경우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348, 349 페이지)

 

생후 최초의 시기에 아이들은 엄마를 전체대상이 아니라 부분대상으로 여긴다. 이 시기의 아이는 엄마를 부분대상으로 지각하며 엄마의 가슴을 젖을 제공하는 좋은 대상과 젖을 주지 않는 나쁜 대상으로 분열시킨다. 이 시기는 엄마의 가슴이 사라졌을 때 아이가 멸절의 불안을 느끼는 시기이고 이는 공격성 투사(投射)와 그 반대급부로 상상 속에서 박해불안을 느끼는 시기이다.

 

정상적 주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망상 분열적 위치에서 우울적 위치로 옮겨가는 것이다.(353 페이지) 우울적 위치는 엄마를 부분대상으로 지각하던 아이가 전체 대상, 안전감을 제공하는 인격적 대상으로 지각하게 되는 시기이다.

 

클라인에 따르면 이 시기는 생후 4 6개월에 시작된다.(353 페이지) 망상 - 분열적 위치에서 아이는 좋은 가슴과 나쁜 가슴이 같은 엄마에게 속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반면 우울적 위치에서는 그런 분열과 투사 메커니즘이 완화된다.

 

우울적 위치를 성공적으로 통과한다는 것은 엄마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가 엄마로부터의 분리를 보다 철저히 받아들이는 것이다.(357 페이지) 클라인은 환상설을 중시하면서도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358, 359 페이지) 환상이란 우울적 위치에서 아이가 유기(遺棄) 불안과 분노로 인해 환상 속에서 엄마를 공격하고 파괴하며 이로 인해 아이 스스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했다는 우울불안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한다.(357 페이지)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정신병, 도착증, 신경증으로 나누는데 클라인이 도착증과 신경증이 정신병적 불안에 대한 방어로 형성되는 심리구조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362 페이지) 클라인은 정신분석적 개인주의를 넘어 사회이론으로 확대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정신분석적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365 페이지)

 

클라인 이론은 개인의 성숙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환경(엄마, 사회적 안전망)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366 페이지) 망상 분열증 위치에서는 선과 악을 오직 공리주의적 관점 즉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구분한다.

 

우울적 위치란 죄책감, 후회, 슬픔, 점차 타인에 대한 죄의식과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는 시기이다.(369 페이지) 중요한 사실들 몇 가지. 정신분석의 각 학파는 강조점이 다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각 학파의 이론을 종합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강해진다.(89 페이지)

 

저자는 분석가와의 둘만의 좁은 공간(라캉주의자들은 이를 제삼자적 공간이라고 부르겠지만)에서 이루어지는 공간을 떠나 많은 경험을 쌓고 다양하게 독서하고 폭 넓게 사유하며 자신이 옳다고 믿는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좋은 치료 효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109 페이지)

 

저자는 이어 정신분석적으로 현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정신분석 연구자들은 종종 자부심을 느끼지만 사실 정신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119 페이지) 그리고 정신분석학 분야를 아무리 많이 연구하더라도 개념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현실을 이해하고 분석하기에는 역부족일 뿐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정신분석적으로 곡해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라캉의 개념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것들이 잘 정리되지 않으며 타인에게 설명하기에는 한층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며 임상 차원에서 또는 논리적으로 사고할 때 개념들이 앞뒤가 맞지 않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며 저자는 그것은 라캉 이론과 개념들이 생겨난 역사적, 이론적 맥락을 사상한 채 추상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 답한다.(173, 174 페이지)

 

라캉의 작업이 임상보다 오히려 문학평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147 페이지)도 인상적이다. 이제 디디외 앙지외의 피부 자아를 읽을 때가 되었다 싶다. 라캉과 디디외 앙지외, 그리고 앙지외의 어머니 사이의 일화는 물론 정신분석적 차이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앙지외의 어머니는 박해 망상에 시달린 끝에 자신을 박해한다는 당사자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피해망상증 진단을 받은 뒤 입원한 파리 생트-안느(Saint-Anne) 대학병원에서 라캉을 만난다. 그런데 라캉은 그녀를 치료하기보다 그녀의 사례를 자기 논문에 이용하기 위해서 그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데 골몰했고 그 결과 앙지외의 어머니에게 갈등과 적대감만을 남긴 채 1년간의 치료를 마치게 된다.

 

임상심리학자로서 앙지외는 라캉과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전혀 모른 채 라캉의 분석 수련생이 된다. 후에 사실을 알게 되기 전부터 앙지외는 라캉의 분석에 깊은 불만을 품었다. 앙지외는 라캉과의 분석이 끝나고 나서야 자기 어머니가 라캉의 환자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1964년 또 다른 정신분석협회(프랑스정신분석협회) 창설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반()라캉 운동에 몸담게 된다.

 

고집스럽게 (순수) 정신분석이라는 이념을 고집한 라캉의 환자 중에 유독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105 페이지) 라캉 이론과 임상은 오직 분석을 위한 분석, 환자가 아니라 분석가만을 위한 임상 이론이며 임상 테크닉이다.(105 페이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말에 현혹되어 큰 관심을 가진 지난 시절 기억이 스친다. 이제 라캉의 좋은 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거한 읽기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 있을까? 중립적인 개념들, 사례들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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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 시가 있는 역사문화 에세이
배국환 지음, 나우린 그림 / 나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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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료 출신의 배국환이 쓴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屛山)에 가라는 문화유적이나 유물을 보고 생긴 시적 감흥을 글로 옮긴 자료집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비극의 역사 현장’, ‘예술혼’, ‘자연, 사랑, 그리고..’ 등이다.

 

저자는 명성황후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경복궁에 갈 때는 늘 건청궁(乾淸宮) 옥호루(玉壺樓)부터 간다고 한다. 역사의 수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의 반영이다. 저자는 청령포라는 비극의 현장을 언급하며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진 적장자(嫡長子) 승계원칙이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고 지적한다.(37 페이지)

 

문종이 아들을 살리고 싶었으면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선위(禪位)하고 어린 아들의 훗날을 보장받는 것이 현명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강화의 광성보(廣城堡)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쇄국정책은 당시 국제정세에 어두운 지배층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라 결론짓는다.(45 페이지)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전쟁으로 인해 목조 건축물기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져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등이다.(극락전이나 무량수전은 모두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는 법당이다.)

 

저자는 수덕사 대웅전을 말하며 수덕여관을 소개한다. 많은 여성들이 수덕사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머물렀던 사연 많은(슬픈) 곳이다. 100여년 전 많은 여성들이 해방구로 여기며 새 세상을 꿈꾸던 곳이 수덕여관이다.(이 이야기를 들으니 경복궁 영추문 앞 보안여관이 생각난다.)

 

저자는 예술혼편의 첫 순서로 세한도(歲寒圖)를 꼽는다.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 즉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시들게 됨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논어 자한(子罕)편을 출처로 한다.

 

저자는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과 제주도 대정마을의 추사 적거지(謫居地)를 가끔 들른다고 말한다.(77 페이지)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2017614일 서울신문)

 

조선시대 영조가 등극하기 전에 기거했던 창의궁 터이기도 한 백송 터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이후 월성위의 봉사손(奉祀孫: 조상의 제사를 맡아 올리는 자손)으로 입양돼 4살부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의 증조부인 김한신은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해 월성위에 봉해졌고, 영조는 백송이 있던 이곳에 월성위궁을 내려줬다. 예전에는 인근 대로에 이곳이 창의궁 터였고 추사 김정희의 집터였음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통의동 백송은 수명이 300년 넘었을 정도로 오래된 나무였다. ‘백송 터에 설치된 안내문에 따르면 통의동 백송은 우리나라 백송(白松) 중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樹形)이 가장 아름다워 1962123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1990717일 태풍으로 넘어진 이후 고사돼 1993324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고 같은 해 513일 벌목돼 지금은 밑동만 남아있다.(2017814M이코노미)

 

2015년 여름 한국을 방문한 기 소르망은 모나리자에 견줄 수 있는 달항아리의 미적 가치를 왜 활용하지 않는가, 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었다.(80, 81 페이지) 수화(樹話) 김환기는 달항아리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고유섭 선생은 무기교의 기교라 했고 최순우 선생은 잘 생긴 부잣집 맏며느리를 보는 것 간다고 했다.(83 페이지)

 

나는 달항아리를 보며 아볼리 비블로 디나니떼 소노르(Aboli bibelot d'inanite sonore)란 말을 떠올린다. 울림이 없는 사라진 골동품이란 말이다.

 

저자는 경주에 가면 거의 감은사지(感恩寺址)를 들른다고 한다. 한적한 멋 때문이다.(85 페이지) 우리나라 탑파(塔婆) 역사의 최고봉이었던 우현 고유섭(1905 1944) 선생은 탑이 목탑에서 전탑(塼塔: 벽돌 전), 석탑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감은사지 석탑은 목탑에서 석탑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원(始原)이다.(90 페이지)

 

저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반포일과 창제 과정을 알 수 있는 문자인 한글을 소개한다.(예술혼편 훈민정음해례본’)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새미골 막사발의 일본식 표기이다.(116 페이지)

 

간송(澗松)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40대 부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1조원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매년 기와집 150채에 해당하는 쌀을 소작료로 받아들였다.(138 페이지)

 

저자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 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에 이르는 강진과 해남의 답사길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부른다는 내용이다.(147 페이지)

 

저자는 병산서원을 가장 한국적인 풍광으로 소개한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의 산골짜기에 백사장을 앞뜰로 병산을 안산으로 삼아 자리잡은 풍산 류씨의 학당이다.(151 페이지) 임진왜란 시기에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柳成龍)의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배움터인 병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서원이다.(155 페이지)

 

백천동 곁에 두고 만폭동 들어가니/ 은 같은 무지개 옥 같은 용의 초리/ 섯돌며 뿜는 소리 십리에 잦았으니/ 들을 때는 우레더니 와서보니 눈이로다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금강산의 만폭동을 묘사한 부분이다.(221 페이지) 겸재(謙齋) 정선(鄭敾)도 금강산을 그렸음은 물론이다. 시대가 다르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더 찾아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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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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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와 밤은 새다는 소설가 이화경에게 힘이 되어준 열 명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다. 제인 오스틴, 조르주 상드, 실비아 플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버지니아 울프, 잉게보르크 바흐만, 로자 룩셈부르크,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시몬 드 보봐르 등이다.

 

저자는 이 열 명의 작가들을 여자 창힐(蒼頡)로 본다. 창힐은 문자를 처음 만들었다는 고대의 전설 속 인물로 네 개의 눈을 가진 존재였다. 그들은 환멸의 어두움으로 채색된 현재를 넘어서기 위해 찢어진 겹눈으로 미래를 투시했고, 이미 판가름 난 실패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을 건지기 위해 복안(複眼)을 굴린 존재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이다. 시집도 가지 않고 유산은 한 푼도 받지 못한 무일푼의 여자였던 제인 오스틴은 단독 서재도 없이 가족 공동의 번잡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소설을 쓴 작가이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그녀가 평생 쓴 장편 소설로 번 돈은 700파운드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바느질 삯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녀는 가난한 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수치심과 우월감을 함께 느꼈다. 그녀에게 글쓰기로 첫 사랑에 실패한 분노와 비통함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 창작은 수명을 단축시킨 열병이었다. 독신으로 42세에 삶을 마친 그녀는 오만과 편견을 나의 사랑하는 아이라 불렀다.

 

오스틴은 소설가는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허물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다른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잘 부합한 작가였다.

 

조르주 상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란 좌우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지나갈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라며 침착하게 견뎠다. 그녀는 임종을 맞던 순간에 마치 소풍을 가듯 안녕, 안녕, 이제 곧 죽을 거야, 안녕,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조르주 상드는 문학인들이 모인 파티에서 금발에 방탕한 스물 세 살의 아도니스를 보고 단박에 자신의 뮤즈임을 알았다.(59 페이지) 상드는 많은 편지를 썼다. 쇼팽에게 결별을 선언할 때도 편지를 썼다. 쇼팽이 자신의 딸에게 눈독을 들였음을 뒤늦게 안 상드는 절교 편지를 보낸 뒤 처참한 심정으로 앓아누웠다.

 

상드는 좌파 혁명가 루이 불랑과 손잡고 무정부주의자 바쿠닌과 친교를 맺고 마르크스와도 교유했다. 플로베르 등 여러 인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실비아 플라스(1932 1963)는 너무도 이른 봄날에 너무도 빨리 만개해버린 얼리 블루머(early bloomer)였다.10대에 이미 자신이 창작한 시 400여편을 갖고 있었던 그녀는 초년의 찬란한 성공이 생애 전체를 고통스럽게 하는 독이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77 페이지)

 

그녀의 유일한 장편 소설은 벨 자(Bell Jar)’’이다. 벨 자는 종 모양의 유리 그릇을 의미한다. 실비아는 세상의 온갖 벨 자에 갇힌 여상의 참혹한 실체를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렸다.(78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세평에 대해 지금 이 세상도 여전히 너무 낡아 보인다는 말로 응수한다. 실비아는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으로 창작에 몰두해 시와 단편을 잡지사와 출판사에 산더미처럼 보내지만 끊임없이 반송되고 계속 거절당한다.

 

반면 남편 테드 휴즈는 첫 시집부터 평단의 주목을 받고 승승장구의 출세 가도를 달린다. 쉽게 상처받고 편집증적 기질마저 있는 실비아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머쥔 남편의 존재는 비수처럼 그녀의 내면 깊숙이 후비고 들어와 상처를 입힌다.(88 페이지)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 그녀는 남편의 시적 대상인 상상 속 뮤즈에게마저 질투를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망과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느낌 사이에서 수시로 흔들렸다.(90 페이지) 저자는 실비아의 자살은 엄마의 인형이자 남편의 그림자로밖에 살지 못했던 가짜 자아를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재탄생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의 행위가 아니었을까, 란 말을 한다.(93 페이지)

 

프랑수아즈 사강은 열세 살에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고 자신의 작가로서의 소명을 인식했다. 그녀가 창작이라는 고독하고도 위대한 세계로 들어설 결심을 한 것은 지드, 랭보, 카뮈를 통해서였다. 프랑수아즈 쿠아레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그녀가 프루스트의 사라진 알베르틴에 나오는 등장 인물의 이름을 보고서였다.(102 페이지)

 

사강은 프루스트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0대에 교통사고로 인해 맞은 모르핀이 중독 증세를 일으킨 이후 평생 그녀는 즁추신경계를 흥분시키는 약물인 암페타민과 코카인에 절어 살았다.(116 페이지) 코카인 소지 혐의로 재판정에 선 그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항변했다.(116 페이지)

 

조앤 롤링은 쓸모 없고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국가 재정을 좀먹는 사회적 문제아라는 악의적인 눈길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울프는 한숨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아파트의 방 대신 등불이 따뜻한 카페 구석에 처박혀, 커피 한 모금으로 한 시간을, 다음 한 모금으로 두 시간을 버텼고 흰 종이 위를 굶주린 들개처럼 쏘다니며 8만 개의 단어를 물어다 날랐다.(122 페이지) 첫 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그녀는 처음으로 방 세 칸에 정원이 딸린 자신만의 집을 샀다.

 

1929년 출간된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강연 요청을 받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울프는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명료한 주장을 했다.(130 페이지) 무엇보다 대단한 울프도 한때는 단지 몇 파운드를 벌기 위해 밥벌이에 성실하게 복무한 사람이었다.(132 페이지)

 

헌책방에서 읽고 싶었던 책을 한 아름 사는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서, 빈둥거리면서 여행하기 위해서, 원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원고지와 잉크를 맘껏 사기 위해서, 울프는 제 손으로 돈을 벌고 싶어 했다.(133 페이지)

 

울프는 이렇게 썼다.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하찮고 방대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않고 온갖 종류의 책을 써보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리고 상념의 낚싯줄을 강물에 깊이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울프는 평생 책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책으로 비옥해지고 스스로를 책으로 가득 채워갔다.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잘난 남자 형제들에 대해 느껴야만 했던 열등감과 지적인 외로움을 마치 돌처럼 견뎌냈다.(142 페이지)

 

저자는 울프의 제이콥의 방을 정상과 광기 사이의 경계와 틈 사이에서 길항하고 대치하고 저항하는 전쟁터에서 거둔 훈장이라 평한다.(145 페이지)

 

잉게보르크 바흐만은 스물네 살에 마르틴 하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의 비판적 수용이란 논문으로 빈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155 페이지) 그녀는 이성, 논리, 법칙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개인적 자아의 정신을 억압하고 감성을 파멸시키는 도구이자 남성적 폭력이라 비판했다. 아울러 인간 존재의 총체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성 특유의 감각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제2의 이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155, 156 페이지)

 

그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와의 갈등을 견지하는 것이었다.(156 페이지) 바흐만은 한때 환희이자 열망이었던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악용한 것을 알고 깊은 충격에 빠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들을 찾아 다녔고 그녀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연인이자 비운의 시인이었던 파울 첼란의 투신 자살 소식을 듣는다.(161, 162 페이지)

 

저자는 어디선가 바람결을 타고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국적인 여성 혁명가의 이름이 들려왔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그녀는 러시아 혁명을 전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첫 번째 여자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칭송을 받았다.(179 페이지) 그녀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조국이며 자유, 평등, 박애 앞에서 어떤 국경선도 인정하지 않았다.

 

로자는 다섯 살 때 골수 결핵에 걸렸다.(180 페이지) 일찍이 생의 비극성을 간파한 어린 로자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비의(秘儀)를 찾기 위해 독서에 몰입하기 시작했다.(180 페이지) 낭만주의 시나 읊조리던 순진한 문학소녀였던 로자는 펜을 칼처럼 휘두를 정치 행동가로 훌쩍 도약할 시점에 이르렀음을 알았다.(181, 182 페이지)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철권으로 폴란드를 지배하던 그 시절에 여중생 로자는 전제정치에 저항하며 투옥되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폴란드의 여자 테러리스트들을 지켜보며 투쟁의 불씨를 가슴에 틔웠다.(181 페이지)

 

섬세함과 강인함, 연약함과 전투성, 이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그녀의 글과 연설과 정치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을 격파할 국제주의자가 될 채비를 갖추었다.(186 페이지)

 

그녀는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는 글에서 베른슈타인을 겨냥한 날카로움을 선보였다. 수정주의자와 개량주의자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 로자의 시퍼런 창끝은 예리하고 단호했다.(189 페이지)

 

논리적 엄격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학적 은유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그녀의 글쓰기는 혁명의 망치질이었다.(191 페이지) 그녀는 철저하게 대중의 자발성을 신앙처럼 받들었다.(193 페이지)

 

수전 손택은 `스타일에 대하여`에서 우리의 겉모양새가 우리의 존재 방식이고 가면이 곧 얼굴이란 말을 했다. 저자는 이를 전하며 지식인들의 취향을 추종하거나 엘리트 비평가들의 비평가들의 판단에 충성을 바치지 말고 내 스타일인가 아닌가를 따져서 끌리는 대로 예술 작품과 에로틱한 사랑에 빠지면 된다고 말한다.(205 페이지) 스타일의 획일성이 문제이다.

 

그녀는 문화적 황무지에 살고 있다고 느끼며 마구잡이로 책을 탐독하다 시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접하면서 애리조나 너머 유럽 문명의 진수를 맞보았으며 그 책을 인생의 중요한 책으로 여길 만큼 문학에 탐닉했다.

 

그녀는 작가란 회의적인 족속이며 누구보다 스스로를 더 의심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녀는 무엇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야만, 폭력, 빈곤, 차별, 테러리즘에 가슴 미어질 듯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녀는 평생 징징 거리거나 응석을 부리지 않았다. 병이 늙은 육신을 유린할 때도 그녀는 명랑 할 것, 감정의 휘둘리지 말 것, 차분할 ,것 슬픔에 골짜기에 이르면 두 날개를 펼쳐라 등의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한나 아렌트는 지적인 아버지 파울 아렌트와 좌파 성향의 어머니 마르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암기력이 탁월하고 지적인 토론을 열망하던 10대 시절 한나는 칸트,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등 수많은 철학자의 책을 섭렵하며 질풍노도의 세월을 보냈다.

 

아침에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는 딸의 요구에 어머니는 아침 수업을 면제해 달라고 학교에 부탁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늦게 일어나 등교 준비로 부산을 떠는 대신 수도승처럼 커피 한잔을 마시는 느긋한 딸을 어머니는 너그럽게 이해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유대인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도중에 가방을 싸서 나와 버린 당돌하고 비타협적인 딸이 퇴학을 당해도 어머니는 딸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아렌트의 첫사랑은 철학이었다. 아렌트를 동해 하이데거는 평생의 역작인 존재와 시간의 영감을 받았으며 뜨겁게 사유할 수 있었다.

 

함께 있다가도 벼락처럼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고독과 슬픔에 잠겼다. 아렌트는 하이데거를 떠나 하이델베르크로 학교를 옮겨 칼 야스퍼스 밑에서 공부를 개진했다. 아렌트와 야스퍼스는 사제관계이자 정신적 동반자 관계를 평생 지속했다.

 

아렌트는 혁명적 실천가이자 프롤레타리아이며 사유를 종교로 삼은 블뤼허를 만나 평생 지란지교와 같은 부부관계를 맺었다. 세탁부의 가난한 아들이었던 블뤼허는 배달하면서 생긴 돈으로 책을 사고 일을 쉴 때마다 엄청나게 책을 읽었던 깊이 있는 독학자였다.

 

그는 하이데거나 첫 남편과 달리 그녀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배려했다. 블뤼허에게 자극을 받은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 ‘과거와 미래’, ‘사회 혁명론’ ‘폭력론’, ‘공화국의 위기같은 주요 저작을 왕성하게 저술했다.

 

악의 평범성이란 악이 평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악한 일을 한 인간이 평범할 수 있다는 의미,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244 페이지)

 

생각하기의 무능함, 생각의 무능함,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함(판단의 무능함)이 결합되면 전체주의와 홀로코스트가 부활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245 페이지)

 

1949년 보봐르가 발표한 2의 성은 교황청으로부터 포르노그래피란 혹평을 받았다. 친구 카뮈마저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초기 페미니즘적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분석이 결합된 독창적인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여성은 절대적 타자라는 것,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것 등이다.(26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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