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죽은 줄도 모르고 황급히 일어나는 그, 텅 빈 가슴 위에 점잖게 넥타이를 매고 메마른 머리칼에 반듯하게 기름을 바르는 그, 죽은 발가죽 위에 소가죽 구두를 씌우고 묘비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람처럼 내달리는 그, 죽은 줄도 모르고 다시 죽음에 들면서 내일 묘비에 쓸 근사한 한마디를 쩝쩝거리며 관 뚜껑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그.....

김혜순 시인의 ‘죽은 줄도 모르고’란 시의 일부이다. ‘어느 별의 지옥’(시집)에 실린 시...

이 시를 접하며 모 교수가 학교에 있으면 학생들의 나이는 늘 그대로이기 때문에 자신이 나이 드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을 생각했다.

머리가 많이 아파 당분간 독서를 쉬어야 하는데 서울에 가면 습관적으로 서점에 가고 가면 어김 없이 책을 몇권씩 사가지고 나오는 나는 어떤가?

그런 사연 때문에 사서 쌓아만 두고 있는 책들이 꽤 있다. 시간과 체력, 비용 같은 것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좋은 책은 모두 읽을 것처럼 신간 목록을 챙기는 것도 같은 차원의 착각일 테다.

사실 이 정도 착각은 별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착각을 우리 모두 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인간을 죽음을 당연시 하지 못하는 존재, 환상과 공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상상 속에 몰입하는 존재 등으로 보았다.

확언하지 못하겠는 것은 인간이 그런 존재라면 바람직한 착각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힘들고 어렵더라도 진실을 바로 보려고 애써야 하는지이다.

답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게 제시할 그 생각들이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자가 언급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서로 조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차이가 없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화이부동에 해당하는 서양의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유교의 영향을 받아온 우리보다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함께 더 잘 어울리고 조화로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답은 사회보장 시스템과 국가와 국민의 합의에 있을 것이다. 덴마크의 경우 학생이 시험문제를 만든다고 한다.

이렇듯 그들이 시행하는 것들 가운데 우리 상식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놀라운 것들이 참 많다.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 기본 소득을 주는 그들의 시스템은 대표적이다.

공자가 대인의 한 특성으로 설명한 화이부동의 상대어는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같음에도 화합하지 못하는 소인의 특성을 의미한다.

올해 읽은 책들 중 대인을 권력을 승계하는 귀족으로, 소인을 권력 승계에서 멀어진 귀족으로 설명하며 화이부동은 자신들만의 조화를 추구하며 전체의 평등을 거부하는 것이고 동이불화는 평등을 원하지만 조화롭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해석한 한 인문학자의 글이 계속 관심을 끈다.

공자가 천자의 의식에서만 출 수 있는 팔일무(八佾舞)를 아랫 사람들에게 추게 한 계손씨를 크게 질책한 것은 유명하다.

지위나 계급에 맞는 일무원(佾舞員; 춤추는 사람) 수가 정해진 것을 어겼다는 논리에 따라서이다. 공자에 대한 정치(시스템)적 해석, 이는 파격이 아니라 순리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제 경복궁에 다녀왔다. 다시 예의 그 천자고(天字庫), 지자고(地字庫), 현자고(玄字庫), 황자고(黃字庫) 등이 눈에 들어왔다.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경복궁 사정전(思政殿) 앞의 이 행각은 최근(?) 복원된 옛 내탕고(內帑庫)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어고(御庫)로도 불린 내탕고는 조선 시대 임금의 개인 재물을 보관하던 곳간이다.(탕帑: 금고 탕) 숙종이 서화를 감상한 곳인 창덕궁 경훈각(景薰閣)도 서화 수장처라 할 수 있다.

창덕궁 후원(後苑)이 비원(祕苑), 내원(內苑), 금원(禁苑), 북원(北苑) 등으로 불렸듯 궁중의 서화(書畫) 수장처(收藏處)와 수장품들은 내장(內藏), 어장(御藏), 비장(秘藏), 진장(珍藏) 등으로 불렸다.

<궁중의 서화 수장처는 관료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한 연침(燕寢) 영역 즉 왕과 왕비가 사적인 생활을 영위한 곳에 주로 마련돼 있었다.

이는 왕족이 자신들의 한묵(翰墨: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을 이름) 취향을 도모하고 귀중한 서화를 왕족의 생활권과 밀접한 영역에 비치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교수신문‘ 2011년 6월 8일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황정연 글 ‘도서관+미술관인 전각은 왜 燕寢영역에 마련했을까‘ 참고)

2030년에 경복궁 2차 복원 공사가 마무리된다고 한다. 공기(工期)는 많이 연장되는 반면 공정율(工程率)은 줄어들 것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든 복원은 그 이후로도 계속될 것이다. 수 많은 이야기거리가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그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덕일(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이 서울신문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들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지난 2007년 이 분의 저서인 ‘조선왕 독살사건’이란 책을 읽은 기억이다.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깊이 공감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었고 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읽은 자율적인 의식서(意識書)라 할 책이었다.

오늘 오른 그 분의 페이스북 글은 도종환 의원의 문체부 지명과 관련해 느닷 없이 현안이 된 고대사 논쟁에 대해 밝힌 글이고,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조선, 한국, 경향, 한겨레 등 언론 카르텔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 글이다.(경향과 한겨레의 일제 식민사관 고수는 충격적이다.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고수하는 것은 밥줄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100년 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을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고 우기는 식민사학계가 독립운동가의 역사관을 따르는 학자들을 ‘유사, 사이비역사학’으로 매도하는 이유도 본질은 밥에 있다.”(2017년 6월 22일 이덕일 소장 페이스북 글 중에서.. 본문에는 ‘역사관이‘라 되어 있지만 ’역사관을‘으로 수정)

이와 관련해 발표된 일련의 글들을 다 이해하기에는 내 내공이 부족해 역사학자 이주한 님의 ’위험한 역사 시간‘,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덕일 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 등을 읽기로 했고 다음(Daum)의 ’한가람 역사문화 연구소’ 카페에 가입했다.

다만 서울신문에 오른 이덕일 소장의 ‘세종 같은 대통령이 나오려면’(2017년 4월 20일)이란 글을 말하고 싶다.

이덕일 소장은 악역을 담당한 태종이 있었기에 세종 같은 성군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태종이 담당한 악역이란 강력한 공신세력을 정리하고 모두 법 아래 존재하는 법치국가를 만든 것이다.

이미 명나라의 공식 인정을 받은 세자 이제(李禔: 양녕)를 폐출하고 이도(李祹: 충녕)를 임금으로 발탁한 태종의 결단도 악역에 포함시켜야 할지 모르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당시 양녕은 많은 물의를 일으킨 상황이었다. 태종의 결단은 세자 개인보다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데서 도출된 것이다.

태종의 결단은 적장자(嫡長子) 왕위 승계에 집착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태종의 결단은 주나라를 흠모한 유가의 성군답게 장자인 문종에게 왕위를 잇게 한 세종의 결정과 대비된다.
병약한 문종은 오래 살지 못했고 어린 장남 단종이 왕이 됨으로써 숙부 수양이 섭정하는 구실이 마련되었다.(장인용 지음 ‘주나라와 조선’ 참고)

이와 비교할 글이 이재영의 글이다. 저자는 세조가 아버지 세종의 유훈대로 어린 조카 단종을 잘 보필하여 적장자 승계 원칙을 지켰으면 조선 역사는 덜 시끄럽지 않았을까, 라 말한다.(‘조선 왕릉, 그 뒤안길을 걷는다’ 80 페이지)

하지만 수양의 잘못은 적장자 승계 원칙을 깬 것이 아니라 왕위를 찬탈한 것이다.

어떻든 이덕일 소장의 결론은 한국 사회에 필요한 대통령은 태종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에 실패한 데다 개발독재가 가세하면서 우리 사회 상층부 구석구석을 장악한 부패와 특권 카르텔을 해체하려면 태종처럼 악역을 감내하는 소명의식이 필요한 바 그 이후에야 세종처럼 안정된 상태에서 선정을 펼칠 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개혁이 혁명보다 힘든 이유를, 초법적인 혁명과 달리 개혁은 법적 테두리를 지키는 변화이기 때문이라 설명한 뒤 개혁가는 좋은 의미의 마키아벨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오길영 교수의 글(2017년 6월 17일 페이스북)과 함께 음미할 글이다.

나이브(naive: 순진, 고지식함)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 중요한 글을 써야 하는데 머리가 너무 아프다. 거의 일주일 동안이나 성(城)에 진입하려는 고투(苦鬪)를 계속하지만 실패하는 카프카의 ‘성(城)’의 주인공 K처럼 나는 글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설물 유지, 보수 및 진열물 교체 등을 위해 8월 이후 내년 초까지 폐쇄되는 고궁박물관 지하 1층의 종묘실(宗廟室)에 다녀왔다.(2017년 6월 21일) 종묘에서 본 것들과는 다른 풍경이 연출되어 있었다.

재현(再現) 공간이기에 압축적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핵심적인 것들만 진열해 놓은 고궁박물관의 종묘실과, 그리 넓지 않지만 해설을 들으며 구석구석 다니려면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종묘의 위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재현 공간은 현실적이지 않다. 궤식(饋食)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의 설명에 의하면 종묘 제향(祭享)은 네 가지 순서로 이루어진다.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신을 보내는 절차 등이다.

궤식은 신이 즐기는 절차 가운데 하나로 익힌 고기를 신에게 바치고 곡식을 태워 즐기시게 하는 것이다. 먹일 궤(饋)자를 쓰는 궤식은 생소한 단어이다. 물론 익힌 고기를 바치는 것은 생소하지 않다. 우리는 익힌 고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종묘 제례를 이야기하며 희생(犧牲)을 이야기한 입장에서는 의아하다. 희생이란 종묘 제례에 바치는 산 짐승이다.(한 일간지는 궤식을 익힌 고기, 생고기 덩어리를 조상에게 통째로 바치는 절차로 설명한다.)

한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랐다. 익힌 고기는 희생의 세 번째 모습이라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를 올리는 것은 상고(上古)의 예식이기 때문에 행하지만 실제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반면 궤식은 익힌 고기를 올려 봉양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에 중요시되었다는 글도 함께 실렸다.(이 글이 실린 블로그의 이름은 ‘왕실의 의례‘이다. 인상적이다.)
어떻든 이런 사실들은 지난 6월 17일 종묘 해설 당시에는 알지 못하던 것들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가설이 생각난다.

불에 익혀 먹는 행위(요리)가 인간의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낳았고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고 인간의 큰 뇌는 화식(火食)의 산물이라는 것이다.(’요리 본능‘ 참고)

희생(犧牲)이 상징(적)이라면 궤식(饋食)은 현실(적)이다.(고궁박물관 지하 1층의 종묘실을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종묘의 제례는 이런 상징과 현실의 차이 또는 조화를 두루 살펴보아야 할 의식이고 절차이고 이야기 거리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