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물 유지, 보수 및 진열물 교체 등을 위해 8월 이후 내년 초까지 폐쇄되는 고궁박물관 지하 1층의 종묘실(宗廟室)에 다녀왔다.(2017년 6월 21일) 종묘에서 본 것들과는 다른 풍경이 연출되어 있었다.
재현(再現) 공간이기에 압축적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핵심적인 것들만 진열해 놓은 고궁박물관의 종묘실과, 그리 넓지 않지만 해설을 들으며 구석구석 다니려면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종묘의 위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재현 공간은 현실적이지 않다. 궤식(饋食)이란 단어가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의 설명에 의하면 종묘 제향(祭享)은 네 가지 순서로 이루어진다.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신을 보내는 절차 등이다.
궤식은 신이 즐기는 절차 가운데 하나로 익힌 고기를 신에게 바치고 곡식을 태워 즐기시게 하는 것이다. 먹일 궤(饋)자를 쓰는 궤식은 생소한 단어이다. 물론 익힌 고기를 바치는 것은 생소하지 않다. 우리는 익힌 고기에 익숙하다.
그런데 종묘 제례를 이야기하며 희생(犧牲)을 이야기한 입장에서는 의아하다. 희생이란 종묘 제례에 바치는 산 짐승이다.(한 일간지는 궤식을 익힌 고기, 생고기 덩어리를 조상에게 통째로 바치는 절차로 설명한다.)
한 블로그에 이런 글이 올랐다. 익힌 고기는 희생의 세 번째 모습이라는 것이다. 날 것 그대로를 올리는 것은 상고(上古)의 예식이기 때문에 행하지만 실제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반면 궤식은 익힌 고기를 올려 봉양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에 중요시되었다는 글도 함께 실렸다.(이 글이 실린 블로그의 이름은 ‘왕실의 의례‘이다. 인상적이다.)
어떻든 이런 사실들은 지난 6월 17일 종묘 해설 당시에는 알지 못하던 것들이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부분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가설이 생각난다.
불에 익혀 먹는 행위(요리)가 인간의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변화를 낳았고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고 인간의 큰 뇌는 화식(火食)의 산물이라는 것이다.(’요리 본능‘ 참고)
희생(犧牲)이 상징(적)이라면 궤식(饋食)은 현실(적)이다.(고궁박물관 지하 1층의 종묘실을 소개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종묘의 제례는 이런 상징과 현실의 차이 또는 조화를 두루 살펴보아야 할 의식이고 절차이고 이야기 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