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처럼 살아간다 - 의심과 불안과 절망을 건너는 8가지 방법
게리 퍼거슨 지음, 이유림 옮김 / 덴스토리(Denstory)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보내주신다는 출판사의 메일을 받고숲 속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제목을 보고 바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도착한 책을 보니 제목처럼 자연을 닮아 땅 속에 들어가면 바로 분해될 것 같은 코팅되지 않은 종이와 실로 내지를 묶은 사랑스러운 책이었다최소한의 잉크와 쫙 펼쳐지는 책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근처에서 아내와 살고 있다는 저자는 자연 속을 오래 누볐던 사람이다자연에서 동물과 식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인간의 과학심리학역사철학을 통달한 것이다그래서인지 가벼운 에세이로 생각하고 책을 펼친 나는 몇 날 며칠을 들고 다니며 읽고 또 읽어도 어려운 부분이 많은 다소 심오한 책이기도 했다그럼에도 읽고 있는 동안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책이다자연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과 함께 있는 느낌이랄까도심에 앉아 자연 속에 앉아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자연은 때로 인간에게 가혹하리만치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그는 자연에서 첫 아내를 잃는 슬픔을 맞기도 했다그럼에도 자연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 온 자연의 신비로움과 위로에 기대어 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요즘 중년 남성분들에게 자연인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회사 생활에 찌든 그들에게 자연과 함께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자연인이 부럽기도 할 것이다한편으로는 외롭고 불편한 생활에 다시 도시로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기도 하다나도 언젠가 숲 속은 아니지만 자연 가까이에서 살아보고 싶다시골 정취를 듬뿍 누린 어린 시절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야생거위가 날아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가 늘 서로를 위하는 우리 반 아이들을 연상하게 해 수업 시간에 그 부분을 읽어 주었다거위가 날 수 있나 싶어 검색해 보니 위기 백과에 거위는 가금화 된 기러기라고 적혀 있었다야생 거위는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데 선두 거위는 뒤쪽 거위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서로 번갈아 가며 힘든 선두 자리를 맡습니다. 다치거나 병든 동료가 있을 때는 다른 한 거위가 남아 회복이나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뭉클한 내용이었다V자 대형은 실제로 1차 세계대전 때 비행에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우리는 동물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고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에게서 기후 변화의 역사를 알 수 있다개미에게서 지혜를 얻으라는 성경 구절도 떠오른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만으로 동물을 학대하거나 사육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들도 서슴지 않을 때가 있음을 요즘 들어 생각하게 된다좁은 우리에 가두어 살을 찌우거나항생제를 많이 사용하여 사람의 몸에 축적되게 하거나심한 경우 사료에 넣어서는 안 될 이상한 물질들까지 넣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접하고 채식주의자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가축의 분뇨는 자연을 심하게 더럽힌다고 이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다얼마 전 실과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공부한 것처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자연을 생각하고착한 소비를 하며친환경적인 생활습관을 갖도록 해야겠다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고자연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연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학교마다 작은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59288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괜찮은 척 말고, 애쓰지도 말고 - 마음 읽어주는 신부 홍창진의 유쾌한 인생 수업
홍창진 지음 / 허들링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 생활 하는 이들 중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행복한 일들이 가득한 직장이어도 무언가 힘든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때는 한없이 평온한 시기가, 그리고 어느 때는 나쁜 일이 겹치면서 그 스트레스의 정도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마음을 넓게 가진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한계에 도달하게 되기도 한다. 

  요즘 들어 겹치는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쓰였었는데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받았다며 들고 와서 읽기 시작하는 걸 보고 참 좋은 분을 가까이하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분도 요즘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는데 서점에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해 읽고 남편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연두색 표지에 파스텔로 간단히 그린 그림 같은데 왠지 평화로워 보여 읽어보고 싶어 졌다. 챕터별로 마음 내키는 대로 읽던 남편이 거의 다 읽었다고 내려놓는 것을 보고 내 가방에 넣고 다니다 틈 날 때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내용은 다른 힐링 도서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신부님이 쓰셨지만 종교적인 내용보다는 인류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내용에 관해 쓰셨기 때문에 독자층이 넓을 것 같다. 서른 개의 작은 꼭지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존감, 일, 위기, 가족, 종교와 정치, 여행, 죽음, 사랑, 우울, 성공, 고독 등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 고민해 보는 것들을 망라하고 있다.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므로 남들과 교류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래도 한 번씩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고독을 택하라고 한다. 일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화를 내기보다는 모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한다. 돌이켜 보면 화를 내어 나에게 도움이 되었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화를 내지 않고도 남을 움직이는 사람이 최고수인 것 같다. 

  염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이의 감정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을 읽은 남편이 했던 ‘조금은 뻔뻔하게 살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너무 상대를 배려하다 보면 자신에게 소홀해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이는 자신이라는 것, 그리고 나만큼이나 남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를 잘하는 비결이 아닐까?

  지나간 일은 모두 창고 속의 보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마음에 다가왔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우리는 즐거웠던 좋은 추억도, 잊고 싶은 일도 존재한다. 그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꿈꾸고 바라는 미래를 위해 기쁨도, 슬픔도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 멀지 않은 미래에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올 테니까.






- 돈을 부정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할 때, 비로소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또,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내 집 곳간이 아니라 마음을 채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돈에 배신당할 수 있고, 돈 때문에 불행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늘 돈을 갈망하게 됩니다. (1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리티 씽 - 반짝이는 것은 위험하다
자넬 브라운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엔 신간 소식이다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보내준다는 메일을 받고 혹시라도 너무 어른들만을 위한 내용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책을 받아 보았다책이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다페이지 수를 확인하지 않았던 나는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 책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앞부분을 펼치자 으스스하고 신비한 호수가 등장했고뻔뻔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미있어 보였다어쩌다 범죄자가 되었을까?

 

  그 해답은 곧 나왔다불우한 가정아버지를 쫓아낸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니나는 사기행각에 발을 걸친 엄마의 위태한 형편에 따라 이사 다니기를 밥 먹듯 한다그러던 중 장학금을 준다는 한 사립 고등학교의 제안에 귀가 솔깃한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약속을 하며 니나를 데리고 이사한다비록 허름한 집과 옷차림이지만 엄마와 함께라 좋았던 니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긴다성처럼 거대한 오래된 집에 사는 베니다그의 집 오두막에서 만나던 그들은 순진해 보였던 베니의 권유로 해서는 안 될 행동도 한다얼마 후 베니의 아버지에게 발각되면서 엄마와의 반짝였던 날들은 끝이 난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 니나는 엄마의 뒤를 이어 절도와 사기 행각을 시작한다엄마를 통해 알게 된 남자 친구 라클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고택 스톤헤이븐에 오래전 사귀었던 베니의 누나가 와 있다는 것을 알고 금고를 탐내며 라클란과 함께 애슐리와 마이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장하고 오두막을 찾는다불우한 가정사를 지닌 스톤헤이븐의 새 주인 바네사는 껍데기뿐인 오랜 SNS 활동에 신물을 느끼고 시골 마을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외롭게 지내던 중 오두막을 세놓게 되고오두막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인터넷 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커플 애슐리와 마이클을 맞이한다.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기도 한 내용이지만 니나와 바네사 두 명의 화자가 속고 속이는 내면의 심리를 너무나 잘 보여주어서 다음 내용이 궁금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을 손에 들 수가 없었다바쁜 중에도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며 틈 나기를 기다려 읽었다독특한 편모 아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독서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학업에 정진한 니나는 잘못된 선택 끝에 스스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입니다어수룩하게 두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가던 바네사는 집안 내력을 살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SNS에서의 허깨비 같은 생활의 무의미함이나 아무리 가족의 병 치료를 위함이라지만 남의 것을 탐내는 건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이 드라마가 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니콜 키드먼이 주인공이라니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무겁지 않지만 생각할 거리를 담은 두껍고 사랑스러운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 졌다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라는 전작이 국내에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고원서가 중고로도 올라와 있어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하드커버 도서를 바로 구입했다읽지 못할 때가 많지만 궁금한 원서는 항상 이렇게 사놓습니다영화도 나오면 보고 싶다여성들의 심리를 다룬 이야기나 영화가 좋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5843027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적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괴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안 그런가?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중간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이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인생이, 환경이 이미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던 성향에 영향을 끼치는 거다. 나쁜 행동이 보상을 받고 약점이 처벌받지 않을 때, 우리가 절대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을 갈망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점점 더 비통해하면서 괴물이 되어 가는 거다. 우리는 세상을 보고 세상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측정하면서 점점 한 위치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괴물이 된다. (5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던 어느 날 떠났던 엄마에게서 반가운 편지가 온다글자를 읽지 못하는 카야는 아버지가 볼 수 있게 편지를 놓아두지만 편지를 읽고 불같이 화가 난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취가 묻은 편지를 태워버린다어느 날 아버지마저 떠나고 홀로 남은 어린 카야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책을 읽으며 남겨진 소녀가 얼마나 가여운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하지만 아이는 좌절하지만은 않는다최선을 다해 살아갈 방도를 찾는다홍합을 캐서 먹기도 하고그녀에게 다정한 점핑 아저씨 가게에 가서 팔아 배의 기름을 보충하기도 한다물고기를 잡아 훈제한 것을 갖다 드리기도 하며 점핑의 아내 메이블 아주머니의 지원으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는다우연히 만난 조디 오빠의 친구 테이트는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준다원래 카야도 학교에 갈 기회가 있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만 있는 그곳에 오직 하루만 다녀온 후 피한다글자는 모르지만 새의 깃털을 비롯한 습지의 생물들에 대해서는 점점 박사가 되어 가는 카야와 그녀를 돕는 테이트는 서로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여 의지하게 된다.

 

  이렇게 아름답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현재 건장한 남자 체이스의 의문의 죽음 이후 카야는 점점 의심을 받게 된다사람들을 피해 살아가던 그녀는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는다.

 

  아무리 외롭다 외롭다 하지만 사람 없는 습지에서 어린 나이에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혼자 살아가는 사람을 따를 자가 있을까월든 호수를 찾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았지만 카야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살게 된 경우다하지만 그녀는 맨발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결코 비관하지 않는다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만 없다면 말이다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만 늘 자연과 함께 하는 그녀는 선량한 성품을 지니고 살아간다깃털 교환을 계기로 친해진 테이트와의 관계도 아름답다그마저 떠난 후 카야는 더 큰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승화시켜 그녀는 작가가 된다.

 

  동물학을 전공하고 동물 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여러 상을 받기도 하고학술 잡지에 글을 싣기도 한 그녀의 첫 소설이 바로 이 책이다자신의 경험과 그간의 연구가 녹아 있는 이 책에는 시가 있고자연이 숨 쉰다사랑과 외로움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설이어서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나 보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podty.me/episode/158139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들개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달 인문학 모임 도서라 이 책을 구입했다. 이외수의 글쓰기 책이나 에세이를 읽은 적은 있지만 소설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 책이 유명한 것 같아 읽어 볼까 한 적이 있었지만 개가 주인공인 줄 알고(동물이 주인공인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읽지 않았었는데 첫 부분을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임을 알고 바로 책에 빠져들었다.

 

  대학을 중퇴한 여학생이 주인공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여성의 심리를 잘 묘사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여자에게 한 남자가 말을 거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이다.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건다면 대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드문 곳이라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말에 넘어가고 함께 술을 마신다. 알고 보니 남자는 여자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고, 그녀의 공책을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작가 지망생인 그녀의 공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남자는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가족을 잃고 숙부와 지내던 여자는 이민 가는 숙부를 따르지 않고 혼자 남아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집도, 직장도 잃고 버려진 건물에서 숨어 지내는 그녀는 남자를 만난 첫날 자신의 은거지로 데리고 온다. 시간이 지난 후 혼자인 줄 알았던 그녀는 남자가 몰래 같은 건물에 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여자는 생활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일을 한 적이 있으나 작품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며 책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남자의 행적은 그녀를 능가한다. 그림을 그리던 남자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결혼을 하고 회사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을 한 상태였다. 오로지 그림만을 위해 사는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안타까운 그들의 삶에 마음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토록 배가 고프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배고픈 예술가의 생활을 너무나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을 통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더럽고 역겨운 것들을 껴안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들이나 청소년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 독자를 끄는 강력한 힘이 있는 책이었다. 이외수라는 작가를 다시 보게 한 책이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아 여파가 오래갈 것 같다. 그가 쓴 다른 작품들도 이런 분위기일지 궁금하다.


* 브런치 원문

https://brunch.co.kr/@f10cc975bdb542a/107

 

과학은 수시로 경이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보다 소중한 것을 소멸시켜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전화기의 발명 때문에 차츰 연애편지가 소멸되어 가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은 과학이 마침내 모든 인간을 소멸시켜 버릴는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언젠가는 인간이 과학의 발달을 최대한으로 억제시키느라고 허둥지둥 정신을 못 차리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러나 양식을 갖추지 못한 어느 정서 불안정의 집권자가 있어 단추 하나만 잘못 눌러버리면 세계는 끝장이다. 흔히 경제개발에 관련한 포스터 속에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하늘로 힘차게 치솟아 오르는 광경을 번영의 상징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고 흐뭇한 미소를 띠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한 켤레의 나일론 양말을 신기 위해 한 바가지의 오염된 물과 공기를 마셔야 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293-2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