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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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826343002

 

  몇 달 전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의미 있게 읽고 그 작가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전쟁을 겪으며 허무적이고 시니컬한 사람으로 변해 전쟁과 망명자에 대한 안타까운 경험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 작가다. 무서운 전쟁을 글로 쓸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의 내용 중에도 잠깐 나오지만 그의 독서 경험(아르바이트로 돈이 생길 때마다 헌책방에서 책을 산 것) 때문일 것이다. 그의 유려한 문장은 읽는 내내 나를 감동시켰다.

 

  영화에서 보는 전쟁의 참혹함보다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글 묘사가 더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 처참한 광경을 본 당사자들이 정상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애국심을 내세워 17세 소년들을 전쟁터로 보낸 고등학교 교사, 자국의 이익을 위한 이해관계의 마찰로 전쟁을 일으키는 후방의 정치인들, 전방의 상황을 모른 채 계급이 높다는 이유로 거들먹거리는 상관. 어쩌면 이들 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있는 이율 배반적 인간 군상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시대를 지나면서도 사랑 받는 모양이다.

 

  복수를 꿈꾸는 회의주의 망명객 유령의사의 이야기인 개선문도 좋았지만 이 책이 개인적으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군복을 벗는 순간 앙상한 소년으로 돌아오는 주인공이 전쟁을 겪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마음 아프게 지켜보며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에 아들을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일까? 죽어가는 전우가 수학을 아무리 잘했던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직 그들의 목표는 살아남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건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작가가 히틀러 정권을 피해 망명하며 계속 썼던 작품들을 또 읽어보고 싶다. 경험에서 나오는 진솔함, 그리고 쓰라린 망명 생활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해낸 그의 멋진 문장들에 끌렸나보다.

 

- 우리는 10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으면서 10년 동안의 학창 시절보다도 더 단호하게 변했다. 우리는 네 권으로 된 쇼펜하우어 전집보다 잘 닦은 단추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놀라워하다가 그런 다음에는 분노한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 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정신이 아니라 구둣솔이 아닌가 하고 우리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 생각이 아니라 조직이 중요하고 자유가 아니라 군사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20쪽)



- 나는 머리를 끄덕이고 무언가 그에게 힘을 내게 해줄 좋은 말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의 입술은 윤곽이 사라져 버렸고, 입은 더 커졌으며, 이빨은 마치 백묵으로 만들어진 듯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살은 쪽 빠졌고, 이마는 더 훤히 벗겨졌으며, 광대뼈는 툭 튀어나와 있다. 조금씩 해골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두 눈은 이미 쑥 들어가 버렸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그는 영영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른다. (37~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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