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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 판타스틱 픽션 WHITE 1-1 ㅣ 판타스틱 픽션 화이트 White 1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고 이 책을 빌렸다. 영화에서도 모자간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자세한 심리 묘사까지 당시의 상황을 너무 잘 묘사해 두어서 읽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엄마가, 혹은 아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쓸 당시에 학교 총기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작가가 너무 생생하게 그려냈다. 영화를 보고 읽어서인지 배우들이 실제로 연기하는 것을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다. 끔찍한 사건이지만 실제 장면을 재현하지 않아 좋았던 영화였다. 책에서는 엄마의 상상 속에서 아들의 범죄 행위가 그대로 드러나있긴 하다.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아주 기나긴 편지글로 남편에게 들려주는 형식을 쓰여 있다.
아기 때부터 엄마의 젖을 거부했던 아이, 어린 시절 남자아이에게 당한 일 때문에 남자 아이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엄마. 이들 둘의 삐걱대는 사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인생을 빼앗긴 엄마는 울어대기만 하는 아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 만약 젖을 거부했어도 품어 주고, 안아 주고, 사랑해 주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나쁜 아이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용하는 베이비시터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손발 다 들고 그만둘 태세니 아이 옆에만 붙어 있어야 하는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신이 자초한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쨌든 아이는 엄마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6살이 되도록 기저귀를 차고 유치원에 가고, 대화도 잘 하지 않고, 유치원에서는 말썽을 피운다.
케빈이 했던 행동이나 말은 정말 심할 정도로 잔인하다. 하지만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을 둔 부모라면 약하게나마 겪어본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 이유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것. 학교에서 만나는 독특한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그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를 알아야만 할 것 같았다. 물론 저마다 다른 이유들을 갖고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케빈의 엄마는 아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도 상담하러 가거나 정신분석을 의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가 질책을 당한다. 남편 앞에서는 다르게 행동하는 케빈을 남편은 두둔하기 일쑤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케빈이라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엄마 때문일 수도 있다. 한 가정의 불행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불행을 야기한 이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의 심리 상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상주 상담교사가 거의 없고, 전문가에게 상담받으려면 엄청난 돈이 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앞으로 이런 불행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170쪽)
- 미국인들은 뚱뚱하고, 표현이 불분명하고, 무식해. 요구가 많고, 고압적이고, 버릇도 없지. 게다가 독선적이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있어. 뭐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나라들한테 거들먹거리고. 정작 자기 나라 인구의 절반이 투표하지 않는 건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431쪽)
- "넌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애가 어깨를 으쓱하더군. "당신은 안전하고 건전한 곳으로 피했잖아, 안 그래? 하나도 긁히지 않고." "내가?" 그리고 다시 물었어. "그럼 어째서 난 죽이지 않은 거지?" "진짜 공연에선 관객한테 활을 쏘지 않으니까." 그 애가 술술 말을 꺼냈어. 오른손엔 뭔가를 돌리면서. "날 죽이지 않은 게 최고의 복수란 말이니?" 이미 우린 무엇을 위한 복수인가라는 주제에서 훌쩍 벗어나 있었어. (6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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