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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704457947
어린 시절 장난꾸러기,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아들이었던 헤세는 이후 여러 나라를 떠돌다 자신의 국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스위스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가 평온한 시간을 보낸 건 아마도 중년 이후가 아닐까 합니다.
그가 가장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눈이 좋지 않아 좋아하던 글쓰기도, 그림도 오랫동안 집중해서 할 수 없어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정원 일을 정말 좋아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세 들어 사는 집에서도 정원을 가꾸었고, 나중에는 집을 짓기도 했습니다. 여러 식물들의 이름과 손질 방법을 알고 있었고, 늘 정원가위와 주머니칼을 들고 다닐 정도로 즐기며 일을 했습니다. 그의 정원은 그림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외로운 타지 생활의 위로자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고향에 좀처럼 돌아가기 어려웠던 그는 자연을 고향 삼아 지냈는지 모릅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509/pimg_762781103141666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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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잘 나가던 그가 말년에 스스로를 가난한 문인으로 여기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축제 때 ‘헤세의 밤’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그는 사람들에게 헤세도 오느냐고 묻자 오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는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왜 자신이 헤세라고 밝히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젊었을 시절 그가 썼던 시를 다른 사람들이 엉터리를 섞어 낭송하고, 노래한다면 낯 뜨거울 것 같기도 합니다.
평화를 사랑했던 헤세, 제국주의 야욕에 동조하라는 국가의 요구를 거절했던 그는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며 세상으로부터 초연한 것처럼 보였던 그는 자연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았습니다. 힘든 노동 뒤에 오는 달콤한 휴식을 즐길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 잠깐씩 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나는 매일 정원에서 몇 시간씩 보냈다. 수년 동안 해마다 땅을 파고 나무를 심고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과일을 수확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원 일을 직접 했다. 추운 계절이 되면 늘 정원 한 모퉁이에 불을 피워 놓고 잡초와 오래된 나무뿌리, 온갖 쓰레기를 태워 재로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내 곁에 있기를 좋아했고 자기들이 주워온 보릿대나 갈대를 불 속에 던지면서 그 불에다 감자나 밤을 구워 먹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가지고 있던 주머니칼이 불 속으로 떨어져 손잡이에 불탄 자국이 생겼다. 그 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어 세상의 칼들을 모두 한데 섞어 놓더라도 그 자국을 보고 내 칼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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