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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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54009915


  정말 독특한 소설을 읽었다프랑스 작가의 작품이다실험적인 소설이라는 이 책은 영화의 한 장면을 한참 보여주듯 구체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객관적 화자가 어떤 아내에 대해그리고 그 부부의 친구 부부 중 남편의 방문과 식사 장면 등을 영화를 보듯 읊어준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시간이 왔다 갔다 하기 시작하면서 데자부를 연상하는 여러 사건들이 반복변주되어 나타난다.

 

  누가 누구를 질투하는 것인지사건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 하던 나의 궁금증은 끝내 풀리지 않고 이야기가 끝났다알고 보니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 바로 A의 남편이었던 것이다질투심으로 가득 찬 남편의 눈에 비친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라는 생각을 하니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한 사건을 계속 반복적으로 생각해 내는 화자의 정서는광인 일기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는 정신이상자의 독백을 연상케 한다.

 

  심리 묘사를 배제하고 현상을 보이는 대로 기록했던 로브그리예를 비롯한 누보로망 작가들의 이런 경향을 시선학파(cole du regard)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실험적인 이 소설은 발간 당시 많이 팔리지 않았지만 실험적 시도 때문인지 명작으로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 걸 보면 남들을 따라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한동안 제국주의를 휘날리며 식민지를 늘려 가던 프랑스가 식민지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것이다흑인 노동력을 이용해 농장 일을 하고좋은 집에서 하인들을 수없이 거느리며 거들먹거리는 그들에게 무슨 낙이 있었을까화자의 아내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유부남과의 연애를 꿈꾸었을지 모른다흑인에 대비한 우월의식과 흑인을 무시하는 발언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며 화려했던 그들의 과거 행적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 세월 탓에 빛이 바랜 회색 페인트의 찌꺼기와 습기 때문에 회색으로 변한 나무 사이로 적갈색의 작은 표면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나무의 원래 색깔로 최근에 페인트칠이 벗겨지면서 드러났다. 방 안쪽에서는 A‥가 창문에 기대서서 블라인드의 틈새 가운데 하나로 밖을 내다보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흙으로 뒤덮인 통나무 다리에서 흙탕물 위로 몸을 웅크린 채 꼼짝 않고 있다. 그의 자세는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 몸을 웅크리고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양 팔꿈치는 넓적다리 위에 대고 두 손은 벌린 무릎 사이로 떨군 채다. 물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하다. 동물이거나 그림자이거나 아니면 잃어버린 물건과 같은 것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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