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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631995569
나이 예순을 바라보는 영국 고등법원 판사라는 피오나는 오랜 시간 함께 지내왔던 남편 잭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음을 알게 됩니다. 수많은 추억을 간직한 그녀에게 그건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복잡한 그녀의 머릿속과 별개로 법정의 일들에 몰두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맡은 중요한 재판들로 인해 쓰라린 마음을 되새길 여유 없이 바쁘게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 재판들 중 종교적인 이유로 수혈 받기를 거부하는 한 소년이 그녀에게 아주 큰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직접 소년을 찾아가 만난 후 그녀는 아직 법적으로 스스로 결정할 나이가 안 된 만큼 종교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그녀의 멋진 모습에 반한 소년은 어렵사리 그녀를 찾아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재판으로 인해 만난 사람과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는 것을 꺼리는 피오나는 많은 나이 차이에도 소년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곧바로 돌려보내고, 그 결과 끔찍한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법정 이야기와 개인사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음악으로 인해 읽는 내내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멋진 여성 판사, 바람난 남편 앞에서 의연한 아내, 죽음을 앞둔 소년을 찾아가는 열정,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 모두 멋졌습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속죄>>를 오래 전에 영화와 책으로 접한 기억이 납니다. 저속하지 않으면서도 심리묘사가 뛰어난 그의 작품이 좋습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조사한다는 작가의 열정을 배우고 싶습니다.
- 잭은 굳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뒤로 돌아 방을 나갔다. 멀어지는 등을 보며 피오나는 또 한 번 싸늘한 두려움을 느꼈다. 무시당할까 겁나지만 않았다면 그를 불러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안아줘, 키스해줘, 그 여자를 가져. 복도를 따라 걷는 발소리, 침실 문이 단단히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파트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 그리고 한 달 동안 멈추지 않는 빗소리. (17쪽)
- 그녀는 부엌에 들러 탁자에 놓인 봉투에서 사과와 바나나 한 개씩을 꺼냈다. 그것들을 손에 들고 침실로 향하노라니 상대적으로 행복했던 퇴근길의 산책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고 느끼던 시간이다. 이제는 되살리기 힘들어진 느낌. 피오나는 문을 밀고 들어가 침대 옆에 새침하게 서 있는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보았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잭의 귀환에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달았다. 정말 단순했다. 그건 실망이었다. 남편이 조금만 더 오래 나가 있었으면 했던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단지 실망.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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