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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591976646
박범신 작가의 <<소소한 풍경>>이라는 책 제목을 여러 번 들었다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한 번 빌렸다가 반납한 적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제목에 끌려 빌린 책들 중 가장 먼저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살인사건으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문예창작과 교수인 프롤로그의 화자는 자신이 만났던 제자 중 하나인 ‘ㄱ’의 전화를 받고 그녀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간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수많은 소설을 써 온 박범신 작가는 이 책에서 독특한 구성을 보여줍니다. 화자가 계속 바뀌기도 하고, 특별한 플롯 없이 무작위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윤리로는 판단내릴 수 없는 이상야릇한 동거입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겠지만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가족을 마음에 묻은 사람은 아마도 그 상처의 깊이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를 것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억압받던 ㄱ은 다시는 돌아가기 싫었던 부모님 살던 마을로 돌아와 자신을 추스르는 동시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받아들입니다. 잠깐의 행복이자 불행의 시작입니다.
노련한 박작가는 독자들을 데리고 이리 저리 노 저어 다니며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보여줍니다. 그 배에서 흐느적흐느적 함께 유영하던 독자들은 뜻밖의 종착점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신비로웠고, 다시 작가의 다른 배를 타고 싶어집니다.
- 비밀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지루하기 이를 데 없이 느껴져요. 사람들이 제일 숨기기 어려운 비밀은 기침과 사랑의 불꽃일 거라고 봐요. 누구든 기침을 하고 누구든 사랑의 불꽃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아침에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가면서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생의 기침과 찰나적이면서도 영속적인 사라으이 불꽃을 행여 누구에게 들킬세라 횡경막 아래 은밀하게 숨겨요. 효율성 중심으로 짜여 세상의 법칙과 그것은 도무지 맞지 않으니까요. (196-197쪽)
-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란 각자에게 이런 숨구멍이 필요한 일인 것을.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될 수 있는 게 1대 1의 관계라는 걸 이제 안다. 하나의 속임수고 전략인 그것.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선인장 가시처럼 몸뚱어리 안에 숨겨 간직해야 하는 그것.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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