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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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561703499


  인문학 모임에서 지난 달 조금은 무겁고 어려운 책을 읽어서 이번 달에는 가벼운 소설집을 택했습니다한 분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표지 그림과는 다르게 내용이 유머러스하면서도 괴기스럽기도 했습니다.

 

  퀴르발 남작이 어떤 사람인 줄 아십니까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입니다이 이야기를 너무 사실적으로 하고 있어서 실존 인물인 줄 알고 깜박 속아 넘어가기도 했습니다그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식인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고찰로 넘어갑니다그뿐 아닙니다마녀에 대한 역사적 연구홈즈의 숨겨진 사건 등 작가의 상상력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집니다급기야 <<프랑켄쉬타인>>을 쓴 작가까지 불러냅니다.

 

  요즘 읽은 몇 권의 책에서 우리나라 작가들 속 주인공이 꼭 우리나라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인도네시아 소녀가 주인공이라거나중세 유럽의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하는 등 생각을 넓게 가지면 꼭 무대는 우리나라시대는 현재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 고전 작품들 속 주인공들은 작가의 상상을 통해 재해석되어 다시 태어납니다그것도 낱낱이 파헤쳐진 채 말이죠참 독특한 소설집입니다그나마 현실과 가장 비슷한 <<마리아그런데 말이야>>에서도 대화의 단절을 줄이기 위해 마리아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기까지 합니다무료한 일상에 대한 해소를 위해 스스로 다중인격을 만들어낸 사람의 이야기자신을 창조한 작가의 죽음을 추리하는 홈즈 등 기발하고도 엉뚱한 이야기들을 통해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여행하는 기분이었습니다.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파고들며 연구했던 작가의 고민과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들입니다.




- 눈을 뜨면 시계 보며 샤워를 몇 분 안에 끝내야 하는지부터 계산하고, 접대 술자리에서는 재미도 없는 농담에 녹음기처럼 웃어주고, 퇴근하면 TV 채널이나 돌리다가 잠들고…… 가끔 지하철에서 사람들에 찡겨 검은 차창을 우두커니 마주할 때면, 저 휑한 표정의 남자가 누군가 싶을 때가 있어요. 취미라도 하나 필요했습니다. 밥벌이와 무관하게 내가 살아 꿈틀거린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래서 제 안에 다른 사람을 만들어보기로 한 겁니다. 꽤 독특한 취미 아닙니까? (126-127쪽)

- 손쉬운 패스티시나 헐거운 패러디를 넘어서 새로운 탈주선을 격렬하게 혹은 유쾌하게 그리려 했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매우 치밀한 논증적 서사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제훈의 소설은 21세기 소설의 새로운 출구를 예감케 한다. (287쪽 해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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