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집 범우문고 46
서정주 지음 / 범우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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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542212584


  문창과 강의를 들으면서 서정주님의 시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었는데 학교 도서관에 책이 있어 빌려왔다생각해 보니 교사용 도서 신청할 때 내가 했었던 것 같다내 책이 아니어도 아무도 읽지 않은 새 책을 처음 빌릴 때는 기분이 좋다손에 쏙 들어오는 범우문고에서 3판 5쇄로 발행한 것이라니 정말 오랫동안 사랑받았나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어려웠다익숙한 푸르른 날이나 국화 옆에서는 학창시절 외고 다니던 거라 반가웠는데 다른 시들은 옛 우리말이나 한자들이 많이 섞여 있어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그 옛날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당선되었다가 나중에 동아일보 사회부장과 문화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아마도 그 시대를 대변하는 큰 목소리였을 것이다그의 시들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느끼고 노래하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가장 암울했던 시절을 지냈던 때문일까 해석이 어려운 그의 시들이지만 애달픔이 스며있음은 알겠다시는 쓸수록 어렵고배울수록 깊이가 느껴진다차라리 아이들 같은 마음으로 동시를 쓰고 말지. ‘이 시는 이런 뜻을 내포하고저 시는 저걸 노래하고…….’ 그냥 마음으로 느끼면 되지 않을까시를 너무 분석하는 건 오히려 시인을 괴롭히는 일일지도 모른다서정주님의 시도 그냥 느끼고 싶었다뜯어 해석하지 않고 내 마음에 물드는 대로 두고 싶었다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계속 가방에 모시고 다녔다.



- 푸르른 날 (37쪽)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처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 고요 (80-81쪽)

이 고요 속에
눈물만 가지고 앉았던 이는
이 고요 다 보지 못하였네.

이 고요 속에
이슥한 삼경의 시름
지니고 누었던 이도
이 고요 다 보지는 못하였네.

눈물,
이슥한 삼경의 시름,
그것들은
고요의 그늘에 깔리는
한낱 혼곤한 꿈일 뿐,

이 꿈에서 아조 깨어난 이가
비로소

만길 물 깊이의
벼락의
향기의
꽃새벽의
옹달샘 속 금동아줄을
타고 올라오면서
임 마중 가는 만세 만세를
침묵으로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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