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하드 럭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요시토모 나라 그림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466729436


  유명하다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예전에 누군가가 끼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바나나라는 이름이 왠지 유치하게 느껴졌는지 한동안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녀의 대표작이라는 <<키친>>이라는 책도 조금 읽다가 내려놓은 적이 있었다. ‘내 스타일이 아니야.’

 

  새벽에 지혜의 숲을 찾았다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다바나나의 책이 다시 한 번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두 개의 소설이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내가 공감하기 어려운 동성애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그래도 던져버리지 않은 이유는 숲 속을 헤매는 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서였다사당과 혼일본 특유의 감성이 스미어 있는 이 책을 보며 숲 속에 숨어 있는 작은 호텔 마을을 떠올렸다자신을 따라다니는 이상한 돌멩이사귀던 치즈루의 기일호텔에서 나타난 방문객……일련의 이상한 일들이 연관을 가지고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은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떠올린다헤어진 후 죽음으로 한 번 더 영원한 이별을 했던 치즈루를 꿈속에서나마 다시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드 럭'에는 주인공의 언니가 과로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되면서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인공과 가족들의 아픈 마음이 담겨있다어떤 이는 그녀의 죽음 앞에서 도망가기도 하고,어떤 이는 오히려 묵묵히 곁을 지키기도 한다그녀의 손때가 묻은 회사의 물건들을 정리해서 들고 오면서 회사 사람들의 따스한 정을 느끼기도 하고언니 약혼자의 형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하지만 모든 희망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갖기로 한다일단은 언니의 죽음을 애도해야 하니까.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다루면서 문장들만 가벼웠다거침없이 써내려간 느낌이었다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되돌릴 수 없는 시간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은 또 흘러가기 마련이다상처는 옅어질 것이다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은 죽는 날까지 마음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미안함이든그리움이든 간에 말이다.



- 모퉁이를 돌자, 어깨에서 불길한 느낌이 쓰윽 빠져나가고, 다시금 고적한 밤의 기운이 나를 감쌌다. 밤이 툭, 장막을 내려뜨리고, 사방은 상쾌하고 맑은 공기로 가득했다. 바람이 불자 어슴푸레한 어둠 속, 알록달록 단풍 진 낙엽이 이쪽으로 휘날리고, 아름다운 꿈이 자아내는 옷감에 휘감겨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서움을 말끔하게 잊고, 계속 걸었다. (15쪽)

- 이제 눈을 뜨면, 이, 햇볕에 바랜 커튼으로 아침 햇살이 비칠 거라고 생각하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겪은 다소 섬뜩한 일들도, 이미 지나간 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잠들기 직전에 머리를 스친 그 생각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시간은, 늘어났다 줄어든다. 늘어날 때에는 마치 고무처럼, 그 팔 안에 영원히 사람을 가두어 둔다. 그리 쉽사리 풀어주지 않는다. 아까 있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아도 1초도 움직이지 않는 어둠 속에 사람을 내버려두곤 한다. (25-2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