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이청준」 - 눈길, 서편제, 벌레 이야기 사피엔스 한국문학 중.단편소설 4
이청준 지음, 김준우 엮음 / 사피엔스21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364604992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면서 자주 듣기 시작한 작가 이청준의 단편을 처음 읽게 되었다. 그전에 장편소설 하나를 읽다가 만 적이 있었다. 문장이 좋다는 건 알겠는데 소록도 이야기라 공감이 덜 되었던 것 같다. 그 책에 비하면 내용도 짧고, 책에 실린 세 편 중 두 편은 영화로 유명해서인지 낯설지 않았다. 특히 ‘눈길’은 요즘 들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라 관심있게 읽을 수 있었다.

 

  국어사전을 읽는 듯 생소한 우리말들을 절묘하게 엮어 놓은 멋진 문장들이 이 작가의 매력이다. 이 책은 학생들을 위한 것인지 단어나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멀리 떠나 살던 아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쫓겨난 집을 하루 빌려 따뜻한 밥을 지어주고 하룻밤을 지내는 어머니의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래 전 아들과의 그 하룻밤을 어머니는 잊을 수가 없다. 먼 눈길을 지나 아들을 버스 태워 보내고 돌아서서 오는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화자는 어머니의 그런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해 보지만 소설의 말미에 눈물샘이 터지고 만다.

 

  서편제는 오래 전 영화여서 눈여겨보지 않아서인지 소리꾼의 이야기인 걸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떠났던 여동생을 찾는 오빠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을 위해 눈을 멀게 만든 아버지와 그것을 원망하지 않는 딸. 그들의 예술혼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남도 소리를 즐겨 글로 썼다는 작가의 예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벌레이야기는 ‘밀양’이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영화와 다른 점은 화자가 남편이라는 점, 그리고 여자가 마지막에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전도연씨의 강렬했던 연기로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아들을 잃고 받아들인 신앙이었지만 자신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이미 용서받아버린 살인자를 보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화자인 남편이 덤덤한 말투로 들려주는 기가 막힌 내용의 이야기가 대조적이었다.

 

  단편소설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학교 과제로 자주 읽게 된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단편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소설 세 편에 평생을 작가로서 글을 탐구하며 보낸 그의 삶의 자세가 녹아들어 있었다. 100여 편이나 되는 단편, 중편 소설과 13편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는 작가의 부지런함이 존경스럽다.

- "그래서 어머님은 그 발자국 때문에 아들 생각이 더 간절하셨겠네요."
"간절하다뿐이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의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륵 날아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쓰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보니 나는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어머님, 그때 우시지 않았어요?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 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살거라……. 눈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을 빌고 왔제……." (눈길 - 5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