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다 샘깊은 오늘고전 13
이경혜 지음, 정정엽 그림, 허균 원작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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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난설헌>>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허균과 난설헌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다. 똑똑함에도 결혼 이후 재주를 드러내기보다 평범해져야 함에 좌절하고, 일찍 생을 마감했던 그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던 허균은 똑똑하고 누나를 사랑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 후 <<홍길동전>>을 읽으며 밝기만 했을 것 같던 허균이 시대를 잘못 만나 전쟁을 겪고, 반란을 꾀했다는 이유로 끔찍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는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율도국을 건설한 홍길동처럼 어쩌면 그는 세상의 어지러움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유교 사회에서 불교에 심취했으니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벼슬자리에도 올랐다 금세 내려오기도 한 그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형, 누나, 젊은 아내, 게다가 갓 태어난 아이까지 잃은 슬픔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책과 글쓰기를 평생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 속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그가 남긴 수많은 시 중 발췌한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습니다. 양반임에도 서얼이나 계급이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그의 성향이 시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 평생을 궁에서 보내는 궁녀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시로 쓴 건 처음 읽어 보았습니다. 친구들과 풍류를 즐기던 그는 안주를 보면서도 굶주림에 지친 백성들을 생각하던 사람입니다. 벽에 멋진 글과 그림을 걸고 사또로 부임한 설렘도 잠깐이고, 유배지에서 긴 시간을 보냈던 그는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문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정국을 뒤집을 정치범으로 오해 받았으니 시대에 따라 얼마나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온갖 설움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유배당했던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책과 글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때로 독서와 글쓰기는 우리를 치유해 주기도 합니다. 마음 속 울분을 털어낼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귀하디귀한 종이에 소중히 한 자 한 자 새겼을 허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343330605



- 책을 벗 삼아 (77-78쪽)

붓이란 오로지
시름이나 적고

즐거움은
돈으로 부르는 것인가.

세상의 정이란 것이
몹시도 삭막하여

내 길은 나날이
더 어렵기만 하다.

긴긴 밤
은하수도 어두워져

산마다
눈비 내려 차가우니

작은 등잔불만이
내 듬직한 벗

옛글을 비추어
환히 읽게 해 주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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