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클래식 보물창고 24
허먼 멜빌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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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를 위해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습니다. 흔치 않은 책인데 다른 도서관 책을 내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시 전체 도서관의 책을 검색해서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건 예전에 꿈도 못 꾸던 일이니까요.

 

  모비딕을 쓴 허먼 멜빌은 살아생전에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너새니얼 호손을 동경하여 그의 집 근처 농장에서 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틀비는 어쩌면 작가 자신의 단면일지 모릅니다.

 

  화자인 변호사는 터키와 니퍼즈라는 별명을 가진 두 명의 필경사를 고용하고 있었습니다. 일이 많아지면서 한 명을 더 고용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데 이때 바틀비를 채용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주 일을 꼼꼼하게 해 화자를 만족시킵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하기 싫은 서류검토 작업을 거부하면서 화자를 곤경에 빠트리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심지어 화자는 자신의 책상에서 꿈쩍 않는 바틀비를 피해 사무실을 옮기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건물을 나가지 않고 배회하던 바틀비는 건물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 잡혀가게 됩니다. 감옥에서 그는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며 화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고집 세고 무기력한 바틀비를 보며 끝까지 인내하고 도우려 했던 화자였지만 어떻게 보면 바틀비가 망가지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의가 아니었지요. 바틀비가 하기 싫은 일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지어 먹는 것마저 포기한 그는 어떤 생각으로 지냈을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명확히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화자의 짐작에 주인을 잃은 편지를 태우는 일을 하던 것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수업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마지못해 하거나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마도 화자를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입장이 되어 보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화자처럼 그런 아이들을 인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늘 필요합니다. 


  결국 먹기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른 바틀비는 마음의 병이 든 것이었을까요?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은 동안 행복했을까요? 공교롭게도 다음에 빌린 책이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바틀비는 아마도 이 권리를 강력히 행사했던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바램일 수도 있습니다. 바틀비의 최후를 비참하게 그린 허먼 멜빌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쓰기보다는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만 쓰고자 했던 외로운 그의 삶을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



- 나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오래전부터 평탄한 삶이 최고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격정적인 순간들도 많고 늘 긴장해야 하며 때로는 여러 크고 작은 소동에 휘말리게 되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런 것들 때문에 내 평화를 깬 적은 없다. (8쪽)

- 그의 필사는 빠르고 깔끔했으며 행동거지 또한 신사다웠다. 게다가 옷도 언제나 멀끔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이런 것들은 알게 모르게 나의 변호사 사무소에 대한 평판을 좋게 만들었다. (16쪽)

- 그날 아침에 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필경사가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희생자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그의 육신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육체가 아니었다. 그는 영혼이 아픈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영혼에까지는 닿을 수 없었다.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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