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 새벽의 주검
디온 메이어 지음, 강주헌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학교 원어민으로 오신 선생님이 남아공 출신이셔서 처음으로 남아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국 출신의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나 바르게 자란 그 선생님은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예의 바른 데다 최선을 다해 수업에 임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셨다. 군인보다도 짧은 머리를 고수해 의아해 했었는데 남아공에서는 우리나라 남자들처럼 머리를 살짝 길러 파마한 사람을 보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선생님을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배경도, 주인공도, 지은이도 모두 그 나라이기 때문이다.

 

  감성이 풍부해 음악을 즐겨 듣고, 홀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그는 화가인 어머니의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최근 들어 망나니처럼 살았다. 그가 되고 싶었던 경찰이 되고, 범죄심리학을 공부해 뛰어난 학식까지 갖추었지만 돌이키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게 되고 동료를 잃는다. 이후 경찰을 그만두고 방황하다 사립탐정이 된 그는 한 사건의 조사를 의뢰받게 된다. 캐면 캘수록 점점 덩치가 커지는 사건을 7일 동안 조사하면서 겪는 일들이 그의 과거와 함께 나란히 진행된다. 3인칭과 1인칭이 번갈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개인의 삶을 통한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보여준다.

 

  남아공이라는 특수한 상황(오랜 기간 백인이 지배하고, 흑인이 지배를 받은 것)이 정치적 변혁에도 불구하고 동화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책에는 유독 인종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백인 한 명, 흑인 한 명' 또는 '혼혈인'과 같이 인종을 나타내는 수식어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두운 사건을 은폐하려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덮어지지 않고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바른 정부, 경찰의 뒷면에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어두운 비리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전직 경찰이지만 그는 오히려 경찰을 믿지 못하고 범죄 조직에 신변 보호를 부탁하기도 한다.

 

  이야기의 첫 진행은 멜로적인 요소와 상황 설명으로 느리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 엄청난 사건들로 휘몰아치는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었다. 멜로와 액션 영화를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총기 사용이 금지된 우리나라와 달리 그 곳은 총을 구하기도 쉽고, 총기로 인한 사망자도 많이 생기는 것이 무섭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총기를 규제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조직에 있는 동안에는 잘못된 관행에 대해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판 헤이르던 처럼 조직에서 나온 상태에서는 오히려 그 조직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국가든, 일개 조직이든 또는 개인이든 우리는 모두 선과 악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그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작가는 그것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자신이 무심코 하는 일들, 국가가, 회사가 늘 해 오던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자신만이 선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잘못만을 들추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298207501


- 사회적 관계와 직업적 관계에서 누구든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는 세계였다. (120쪽)

-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은 번거롭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지 않았다. 스미트라는 가짜 이름을 사용한 사람은 많은 것을 감추어야 했던 놈이 분명했다. (169쪽)

- 결국 당신은 겁쟁이라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면, 그래서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조금이라도 생각해봐요. (232쪽)

- 하얀 가상 종이가 모니터에 깨끗하게 펼쳐졌다. 그는 키보드를 내려다보았다. 사우스아프리카 대학교에서 사용하던 타자기와 배열이 똑같았다. 그는 일어나서 CD플레이어를 켰다. <흥겨운 모차르트>였다. 가벼운 음악이어서 웃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한 단락을 썼다. 지웠다. 다시 썼다. 다시 지워버렸다. 또다시 썼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쓴 글을다시 지웠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베토벤이면 도움이 될까? 피아노 협주곡 제 4번. 그는 커피를 끓였다. 전화기마저 내려놓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첫 문장을 썼다. `내 어머니는 화가였고, 내 아버지는 광부였다.` (5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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