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 4285km, 이것은 누구나의 삶이자 희망의 기록이다
셰릴 스트레이드 지음, 우진하 옮김 / 나무의철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발 한 짝. 책 표지에 그려진 등산화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3개월 동안 몇 번이나 신고 벗었을까? 발톱이 여섯 개나 빠질 정도로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인생의 해 같았던 엄마를 잃고 어린 시절 결혼했던 남편이 있는데도 아무 남자나 가까이 했던 그녀다. 심지어 마약의 늪에서 스스로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던 셰릴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PCT 대장정에 오른다.

 

  치밀하게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긴 도보여행이 처음이었던 그녀는 중간 중간에 들를 곳에 우편으로 부칠 보급품들을 박스에 담아 두었다가 친구에게 때맞춰 우편으로 부칠 것을 부탁하고, 들기도 어려운 거대한 배낭 하나로 PCT에 들어선다. 하늘 아래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며칠씩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그곳에서 그녀는 자연과 자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여정을 함께 한 것이 보급품 박스 안에 있던 책들이라는 것이 반가웠다. 신발을 잃고 슬리퍼에 테이프를 두르고 걸어도, 돈이 없어서 음식을 그림의 떡 보듯 해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점점 강해져 가는 자기 자신의 의지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받은 상처와 엄마를 잃은 상실감, 그리고 타락해버린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무한정 걸었던 나의 호주 여행이 생각났다. 그녀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낯선 땅에 벙어리나 다름없었던 영어 실력과 비행기 값을 제외하고 단돈 20만원으로 찾아갔던 그 길을 잊을 수가 없다. 짧은 시간 혼자 여행을 하고 나의 인생이 달라졌듯 그녀도 그랬음에 애착이 갔다.

 

  살면서 한 번쯤 혼자 여행을 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물론 그런 여행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오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하다. 혼자 하는 여행은 위험하기도 하다. 광활한 대지를 걸었던 셰릴의 여정은 더 그랬을 것이다. 얼마 전 혼자 갔던 대마도 여행 때 아무도 없는 텅 빈 호스텔에 혼자 누워 어렵사리 잠을 청했던 걸 생각하면 3개월이란 시간 동안 혼자 야생동물들 틈에서 잠들었을 그녀가 정말 위대하게 느껴진다.

 

  외롭고 힘든 여행일수록 용기를 낸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의 작은 도전들은 우리를 살찌운다. 양서와 함께 하는 여정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얼마 전 영화를 보고 바로 책으로 읽어서인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는 책을 충실히 따랐다. 극적 효과를 위해 사건의 순서가 바뀌고, 이야기가 너무 복잡해질까 우려해서인지 그녀의 언니나 양아버지를 등장시키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사들이나 그 외의 등장인물들의 이름까지도 비슷했다. 영화에 없었던 내용들을 책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어 좋았다. 왜 마약을 하게 되었는지, 엄마의 죽음이 왜 그렇게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었다. 두꺼운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든 그녀의 글솜씨가 굉장하다.

 

- 나는 변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 계획을 세우는 몇 개월 동안 나를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 모습을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강한 의지와 책임감,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의욕이 넘치며 상식을 거스르지 않는 그냥 보통의 좋은 사람. PCT는 나를 그렇게 만들어줄 터였다. 그곳을 걸으면서 내 인생에 대해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볼 참이었다. (100-101쪽)

- 머릿속 유일한 생각은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것뿐이었다. (111쪽)

- 하늘과 맞닿아 있는 땅을 걷고 있다는 의식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145쪽)

- PCT를 걸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지, 흉측한 내 발에 달려 있지 않았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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