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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사람으로서의 영예를 모두 누린 남자. 여러 개의 이름으로 작품을 계속 세상에 내보냈던 사람. 그가 바로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가리이자 뤼시앵 브뤼라르이다. 하지만 그 모두가 본명이 아니다. 그의 본명은 ‘로망 카시유’로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어머니와 프랑스로 건너간 후 ‘진짜 프랑스인’이 되기 위해 애를 쓴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때 참전하여 훈장을 받기도 하고 20년 동안 외교관으로 지내며 저작 활동을 활발히 한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자신을 더 이상 ‘대단한 작가’로 인정하지 않음을 알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게 된다. 죽은 후에야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것을 밝힌 그는 사람들이 도대체 에밀 아자르가 누구일까, 하며 궁금해 할 때 얼마나 통쾌했을까?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그가 에밀 뒤에 숨으려고 했을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몸 파는 여자였던 유태인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아랍 아이 모하메드(모모)는 집안 곳곳에 똥을 싸 아줌마를 골탕 먹이던 아이였다. 10살이 넘어 새로 들어온 아이들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게 되고, 나이 들어가는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의지하게 된다. 몸으로 먹고 사는 여자들이 비밀리에 낳은 아이들을 로자 아주머니 같은 사람에게 맡긴다. 불법이긴 하지만 아이가 시설로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마음씨 좋은 아줌마는 지원금이 끊겨도 아이들을 내쫒지 못하고 함께 살아간다. 늘 건강히 아이들을 돌보면 좋겠지만 아줌마는 나이 들어, 병이 들기 시작해 모모의 근심거리가 된다.
이제 훌쩍 커버린 모모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자신을 따라 오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모모는 섣불리 갈 수가 없다.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 기대되지만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집에서 몸이 안 좋아 내려오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아줌마가 걱정되어서이다.
서로를 의지하던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자기 앞의 생. 우리 앞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은 사람들도 언젠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대범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인종과 이념이 뒤얽혀 서로를 미워하고 반목하는 세상에 비하면 모모의 작은 세계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따뜻한 사회다. 가진 것이라곤 없는 이들이 서로를 위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 내게 뭐라 딴죽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내가 아랍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학교에 가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싸우지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는 일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13쪽) - 유태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다. (67쪽) -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83쪽) - 조무래기일 땐, 뭐라도 된 것 같으려면 여럿이어야 하는 법이니.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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