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여인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4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원문: http://blog.naver.com/kelly110/220254189177


  요즘은 추리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황토색 표지로 된 문고판 셜록 홈즈 시리즈가 집에 있어 읽고, 또 읽곤 했었다. 읽을 거리가 귀했던 시절이었다. 그 후로 괴도 뤼팽 시리즈,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를 마지막으로 추리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그 때가 내가 책을 처음으로 즐기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한다.

 

  중학교 때 공포영화에 심취했다가 더 이상 보지 않은 것은 추리소설 읽기를 중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뭔가 어둡고 무서운 것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한동안 추리소설은 내 독서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빌렸는데 4-50년대를 풍미했던 추리소설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은 책이었다. 그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루키가 좋아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소설 작가가 문학적으로 글을 썼다는 것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도서관을 검색해 상호대차로 다른 도서관에 있던 책을 하루가 지난 뒤 빌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문장들도 아름다웠다.

 

  사립탐정 말로는 어느 날 부인이 사라졌다는 의뢰인의 제의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호숫가에서 지냈다던 그녀가 살던 곳에서부터 여러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사건을 풀어 나간다. 부인이 사라지던 날 함께 사라졌다는 그 집 관리인의 부인, 아내의 남자친구, 앞집 의사, 경찰까지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는 사건을 말로는 침착하게 해결해 나간다.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똑똑한 남자 말로가 왜 탐정 일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챈들러가 왜 순수문학이 아닌 추리소설을 썼을까?'하는 질문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실 그건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작가가 그걸 쓰고 싶어해서이니까. 당시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인기가 많았나보다. 묘사들 속에 등장하는 저자의 해박함과 멋진 문장들, 그리고 날카로운 위트 섞인 말로의 대사가 좋았다. 그의 책을 한 번씩 들춰 가며 즐겨 읽었다던 하루키의 이야기가 생각나 '안녕 내 사랑'이라는 책을 인터넷 알라딘 헌책방에 주문했다. 

- 공기는 어제보다 청명했다. 평화가 충만한 아침이었다. … 방은 숨을 죽인 듯 따뜻한 냄새, 아직 한 번도 사람이 든 적이 없는 집의 늦은 아침 냄새가 났다. (152쪽)

-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서 열린 창문 너머로 저녁이 고요히 깊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도 그와 함께 고요해졌다. (227쪽)

- 웨버 반장은 날카롭게 구부러진 코를 책상 건너편에서 내 쪽을 향해 내밀고 말했다. "앉게나." 나는 등받이가 둥근 나무 팔걸이의자에 앉고는 좀 더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고 왼쪽 다리를 약간 들어 의자 바닥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닿지 않도록 했다. 커다랗고 깔끔한 구서그이 사무실이었다. 드가르모는 책상 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창문을 내다보며 발목을 조심스럽게 문지르고 있었다. (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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