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온도 - 청소년 테마 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22
김리리 외 지음, 유영진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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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황금 시기를 맞기 전 동틀 녘쯤 되려나? 우리들의 청소년기는 길고도 아리게 지나간다. 질풍노도라는 사춘기 시절을 제외하고서라도 많은 변화와 넓어지는 관계로 인한 갈등의 깊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관계는 그래서 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이 책에서는 특수한 시기의 여러 가지 관계에 대해 일곱 작가의 입을 빌어 운을 띄운다.

 

 

  청소년기의 가장 큰 관심인 친구 관계에 대해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이야기한다. 마냥 웃고 즐기던 초등학교 시절과는 달리 인생에 대해 뭘 좀 알 것 같은 나이인 청소년 시절에는 친구를 그저 좋기 때문에 사귀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는 중창 동아리에 들어가서 일 년 동안 활동했는데 그 때 처음 만난 K와 웃고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중창 동아리는 가끔 봉사 연주를 했는데 어느 날 K가 다니던 작은 교회에 가서 노래를 했다. 교인 수가 너무 적어 열 댓명이던 우리 동아리 아이들보다 더 적은 것 같았다. 고생해서 찾아갔던 그 교회에서의 공연 이후 우리는 더 친해졌고 고등학교 3학년까지 쭉 같은 반을 하며 단짝으로 지냈다. 하지만 고3이 되면서 공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는 늘 관심을 바라는 K가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 대학 시절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만났다. 입시 스트레스를 홀가분히 넘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아이 엄마들이 된 지금도 마음 깊은 곳까지 터놓을 수 있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가 가장 깊은 사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관계는 그 어떤 시기보다 중요하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관계가 등장한다. 친구와 함께 일탈(우편함 속 편지들을 뜯어 돈을 훔친 일)을 저지른 주인공의 죄책감, 새 아빠라는 인물과의 묘한 거리감으로 고민하다 자신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그에게 마음을 열기로 결심하는 한 소년,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를 잊지 못하는 마음, 차분히 뜨개질을 하며 반 전체의 분위기를 조용히 바꿔 놓은 소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많은 관계의 연습 기간인 청소년기에 죽음과 부모의 재혼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청소년 자녀를 두고 있는 나는 이 책을 통해 요즘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된 것 또한 하나의 소득이다. 우리 아이들도 차갑거나 뜨거운 여러 관계들을 통해 성숙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동안 단편소설집을 즐겨 읽지 않았는데 이 책 속 단편들의 여운이 진하게 스민 뭉클한 끝부분들로 인해 단편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무렵엔 철용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몸피가 작은, 머리카락이 긴, 키가 큰, 살빛이 흰 철용이들이 가득했으니 말이다. (89쪽)

- 진호가 축지법은 수건이랬지? 이렇게 수건을 반으로 접으면 두 지점이 만난다고. 그렇다면 그 남자는 나랑 만나고 싶은가. 이 수건처럼? (196쪽)

- 관계의 기본 속성은 갈등이라는 겁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의견이 다르고 의지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을 잘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통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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