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며칠 전 <폼페이: 최후의 날> 영화를 보고 집에 꽂혀 있던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부터 꽂혀 있는데 두꺼운 데다 폼페이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이 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헌책방에 갈 뻔한 위기도 있었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남겨 두었었습니다.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원작인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영화보다 훨씬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영화에는 볼거리를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검투노예가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의 액션 장면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책에는 로마 시대 수도기사(아쿠아리우스)인 마르쿠스 아틸리우스가 주인공입니다. 수원의 끌어내어 지하수로를 통해 폼페이를 시작으로 인근 아홉 개 이상의 마을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교는 사라져버린 전임자를 대신해 갑자기 말라 가는 수도관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그를 폼페이로 보냅니다. 

 

  베수비우스 산이 폭발하기 전 몇일 간의 일은 공적인 임무를 띠고 가는 그의 노정으로 시작됩니다. 가는 동안 17년 전 베수비우스 화산 분출 후 살아남아 거액의 땅과 재산을 갖게 된 노예 출신의 졸부 암플리아투스의 살아 있는 노예를 뱀장어에게 던지는 극악무도함을 마주치기도 하고, 그의 딸인 코렐리아의 아름다움에 반해 화산 분출 중에도 그녀를 다시 찾아가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로마의 상원의원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만 했던 카시아처럼 코렐리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빼앗긴 집에서 살고 있던 호색한 루시우스 포피디우스와 약혼한 상태였던 것도이 비슷합니다.

 

  이 책에서 수도가 지니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도관은 문명의 상징입니다. 꼭지를 열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로 폼페이를 중심한 연안 지역은 휴양지로 최고의 가치를 갖게 되지요. 목욕탕도, 축제도 수도로 인해 호황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폼페이 시민들은 퇴폐와 향락, 호색에 물들어 노예를 부리며 사치하고, 먹을 수 있는 만큼 먹은 후 토하는 쾌락의 상징이 됩니다. 사라진 전임자를 찾아 수도관을 조사하는 것을 통해 화산이 곧 분출할 것을 예감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영화와 다른 이 책의 마지막 연인의 결말 부분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지요. 오래 전 눈부시게 발달된 문명을 누리던 인간이 자연의 힘 앞에 무력화되는 극과 극의 설정이 이 책의 재미를 더해 줍니다.

 

  등장 인물 중 인상적인 사람은 플리니우스 제독입니다. 임진왜란 중에 난중일기를 남겼던 이순신 장군처럼 그는 화산이 폭발하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도 부하에게 기록하도록 지시합니다. 결국 그는 장엄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그의 기록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추측하게 하지요. 그가 폼페이로 가게 된 계기는 렉티나가 소장하고 있던 도서관의 수많은 소중한 장서들을 빼내고 피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의 생애보다 역사 속에서 책이 가지는 의미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렉티나의 애절한 편지도, 그 책들을 위해 심장병이 있음에도 불구덩이로 향하는 그의 용감무쌍함도, 코렐리아를 구하기 위해 플리니우스의 배를 함께 타고 가는 아틸리우스의 듬직함도 화산 폭발과 함께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화산 폭발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간 군상에 대한 묘사와 당시의 건축, 문화, 예술 등 수많은 연구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정밀한 서사로 인해 사건들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작가의 깊이 있는 연구와 그걸 글로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작가 <<고구려>>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분야의 역사소설을 쓴 김진명 작가가 생각났습니다. 책 표지에 이 소설을 ‘팩션’이라고 써 둔 걸 보고 찾아보았더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fact+fiction)를 일컫는 장르라고 합니다.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지만 역사적 사건들을 리얼하게 꾸며낸 이런 책을 통해 역사에 더 관심을 갖게 한다는 것에 저는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본문 내용 ---

 

- 그는 눈에 힘을 주고 폼페이 쪽을 바라보았다.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이 파멸되고 있는 게 아니라고…. 철학자들이 ‘로고스’라 이름붙인, 전 우주를 결합시키는 그 힘이 와해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손으로 모래를 팠다. 그리고 그 순간 손가락으로 모래알을 꽉 움켜쥐었을 때처럼 모든 것은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도, 플리니우스도, 코렐리아도, 헤르쿨라네움의 서재와 함대, 네아폴리스 만 일대의 도시들, 수도, 로마, 카이사르도, 한때 이 세상을 살았던 것들이나 건설되었던 것들은 모두 결국 돌멩이가 되어 끊임없이 물결치는 바다에 쓸려간다는 것을…. 그들 가운데 어떤 것도 발자국 하나, 기억 하나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 해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을 것이고 그들의 뼈는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417-418)

 

- 인간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스스로를 만물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가장 잘못된 독단이다. (453-454쪽)

 

 

* 제 네이버 블로그 '천 권의 약속' http://blog.naver.com/kelly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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