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쓰는가 - 글로 먹고사는 13인의 글쓰기 노하우
김영진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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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확 끌렸다. 요즘 내 관심사 중 큰 비중을 글쓰기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건 글로 먹고 살든, 글쓰기를 즐기든 연필 한 번 잡을 일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가 아닐까 한다. 독특한 것은 글쓰기 하면 보통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에는 법조인, 카피라이터, 번역가, 신문기자, 목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글 쓰는 노하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소설가나 시인의 글쓰기 방법은 늘 관심 있던 분야라 재미있었고, 카피라이터나 시나리오작가, 법조인의 글쓰기는 생소하지만 흥미로웠다.

 

 

  이 책을 함께 쓴 분들의 공통점은 하얀 화면의 까맣게 반짝이는 커서를 생각보다 많이 의식한다는 것이다. 커서가 깜박이는 것은 ‘어서 두드려 주시오.’ 하는 의미이기도 하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마감 시간을 향한 카운트다운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글로 먹고 사는 일. 고달프지만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다른 어떤 자본도, 기술도, 물자도 필요 없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들을 게으르다는 편견을 가지고 바라볼 때가 있다. 10잔의 커피, 꽁초로 가득 찬 재떨이, 밤낮이 바뀐 생활..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그건 편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감에 쫓기며 글을 생산해내야 하는 그들의 생활 역시 중노동이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서 글을 쓰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새삼 글 쓰며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진다. 그리고 나도 곧 그 대열에 들어가리라 다짐한다. 아니, 이미 들어와 있는지도.. 나도 매일 하얀 바탕에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으니까.

 

 

 

 

--- 본문 내용 ---

 

 

◇ 영화평론가 김영진

 

- 당신은 어떻게 쓰는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마감 때문에 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마감을 독촉하는 편집자의 건조한 목소리와 이제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고 하는 담당기자의 절박한 호소가 자판을 두드리는 내 손가락에 다급한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공식 매체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거의 언제나 나의 글은 주문 생산형이었다. (13쪽)

 

 

◇ 기자 안수찬

 

- 지금 하얀 모니터에 검은 커서가 깜빡인다.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 빚쟁이처럼 아우성치는 커서를 오른쪽 끝으로, 저 아래로 밀어붙여야 글이 된다. 그 압박은 누군가를 밤새게 만들고 누군가를 술 마시게 한다. 그래도 돌아앉으면 또 커서의 압박이다. … 이럴 때, 나는 중얼거린다. “끊어 치자.” 이 하나로 글쓰기의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 모든 문장을 단문으로 줄이는 것이다. … 끊어 치기는 만병통치약이다. … 문장을 끊어 치지 않으면, 손가락이 글을 지배한다. 커서의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쓰는 일이 생긴다. 손가락이 글을 지배하면 문장이 길어진다. 일단 길어진 문장은 제 관성으로 더 장황한 글을 만든다. 장황한 글에서 생각과 느낌은 흩어지고 희미해진다. (37-38쪽)

 

- 세상의 모든 필자는 제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히길 원한다. 세상 모든 독자는 모든 글을 함부로 성의 없이 읽는다. 독자가 글에 완전히 몰입하길 원하는 필자의 기대는 대부분 배신당한다. 독자는 글을 대충 읽으려 한다. … 독자를 글에 푹 빠뜨려야 한다. 독자를 글 속에 파묻히게 하려면 시공간과 인격의 디테일을 보여줘야 한다. “그는 슬펐다.”라고 설명하지 말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라고 보여주는 방식이다. … 인터뷰를 할 때, 상대의 말만 받아쓰면 설명하는 기사가 될 뿐이다. 상대의 말과 함께 눈빛, 표정, 행동, 시공간을 함께 적으면 보여주는 기사를 쓸 수 있다. 디테일 취재가 쉬운 것은 아니다. 더듬이가 많아야 가능하다.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더듬이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40-41쪽)

 

- 인용문은 꼭 필요할 때만 악센트처럼 집어넣어야 한다. 따옴표가 많으면 독자가 몰입할 수 없다. (52쪽)

 

 

◇ 시인 유희경

 

- 언어 사용법을 익히는 최선의 길은 다작을 하는 것이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많은 습작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찾고 그 특징을 정확하게 인식하면서 익혀야 한다. (77-78쪽)

 

- 최소한의 공간을 최대한의 길로 만들기 위해서, 나는 감추고 드러낸다. 시는 자발적인 독서다. 그러므로 어렵다. 주춧돌로 건물의 전체를 상상하게 만드는 일. 그게 시의 미학이고 시인의 의도이다. (81쪽)

 

 

◇ 변호사 정인진

 

-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판결은 법관이 가지는 유일한 언어다. 법관은 사법권이라는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판결이라는 기호 체계를 부여받은 셈이다. 즉 글쓰기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87쪽)

 

◇ 카피라이터 손수진

 

- 광고란 것이 지갑을 열기 위한 유혹이고, 카피는 그 유혹의 말이라면 카피를 잘 쓴다는 건 유혹을 잘한다는 것일 터. … 유혹의 대상을 잘 알아야 한다. … 절대 쉽지 않은 이 ‘통찰’은 짝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는 것과 흡사하다. …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과 버릇을 일깨워줌으로써 상대방은 나를 다시 보게 된다. 굳이 영어 많이 쓰며 젠 체하는 광고계에서는 그걸 ‘인사이트insight'라고 부른다. (107-108쪽)

 

 

◇ 동화작가 김중미

 

- 세상은 변했고 그 변한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도 변했다. 올바름의 가치가 변했고, 착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어린이문학과 청소년문학은 약한 이의 편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면 그 아이들이 서 있는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의 무대를 사람들이 외면하고 미처 보지 못한 곳으로 삼는다. 그곳이 바로 희망이 싹트는 곳이고 이 세상을 살아 숨 쉬게 하는 뿌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어린이들 안에는 착한 마음이, 측은지심이, 연대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글을 통해 아이들 안에 있는 선한 마음을 일깨워주고, 결핍을 알게 해주고, 외로움과 가난, 그리고 옳고 그름을 알게 해주고 싶다. (139-140쪽)

 

 

◇ 철학자 최훈

 

- 철학자 고 김태길 선생은 <글을 쓴다는 것>이라는 수필에서 함부로 글을 쓰지 말라고 말햇다.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 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흐를 때, 그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성급하게 붓두껍 여는 것을 이렇게 변명한다. 적어도 지식의 확산과 활발한 토론이라는 차원에서는 이런 신중함이 지나치면 방해가 된다. 같은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 몇 명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담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글쓰기라는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145-146쪽)

 

 

◇ 미술평론가 반이정

 

- 비평이 품질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작업이라면 문제점이 발견된 지점에서 분노와 좌절을 느끼되, 개선책을 떠올려서 자기 존재와 과제를 연장할 수 있다. 그것이 비평이다. (179쪽)

 

 

◇ 번역가 성귀수

 

-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 새벽 한시에서 세시까지의 간격은 다른 대여섯 개의 눈금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보다 훨씬 넓고, 깊다. (183쪽)

 

- 나는 단언한다. 훌륭한 번역을 하려거든 먼저 그대의 염통을 통통 튀게 하라! 책상 앞의 그 멍청한 ‘부동자세’를 상쇄시킬 만큼, 하루 두세 시간은 가급적 격렬하게 움직여라! (184쪽)

 

 

◇ 시나리오작가 김선정

 

- 누군가 재미난 시나리오 한 편을 써보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 방법을 추천해주고 싶다.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일단 옆의 친구에게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라고. (202쪽)

 

 

◇ 칼럼니스트 임범

 

- 한 선배와 함께 일할 때였다. 회의를 하고 초고를 써갔더니, 글을 본 선배가 내게 되물었다. “너라면 이렇게 할 수 있니?”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워하는 내게 선배는 말했다. 여기쯤 웃겨야 하니까, 이렇게 해야 재미있을 거 같으니까, 그런 공식에 의지하지 말고 이 인물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지 캐릭터에 더 골몰해서 써보라고. 그는 우리가 만든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작가인 제 의지가 아닌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게 해보라고. (205쪽)

 

- 내 생각에 칼럼의 정수는 글쓴이만의 관점이다. 다른 글과 달리 칼럼일수록 이 관점이 중요하다. 설득력이 뒷받침된다면 그 관점은 독특할수록, 남다를수록 빛이 난다. 문장 좋고, 논리 정연해도 관점이 평이하다면 그 칼럼은 재미가 없다. (215쪽)

 

 

◇ 목사 김진호

 

- 시공간에 관한 가장 복잡한 문제는 ‘지금’과 ‘여기’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244쪽)

◇ 소설가 듀나

 

- 다음은 이름을 만든다. 나는 이 작업을 끔찍해하는 편이다. 일단 한국 이름들은 기억하기 힘들다. 의심나면 최근에 본 한국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라.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구별을 위한 도구로 이름을 써야 하는데, 그 도구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266쪽)

 

- 자, 이제는 진짜로, 진짜로 쓴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오자, ‘아, 일을 해야 하는데, 아래한글 아이콘 클릭하기가 진짜로 싫다!’의 핑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엉덩이는 살짝 무거워졌고, 일단 아이콘을 클릭해 불러들이면 클릭하기 전에 걱정했던 것만큼 일이 힘들지는 않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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