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개정증보판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 아름다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르만헤세의 삶과 인격이 녹아 있는 이 책에는 ‘숲, 정원, 자연, 음악, 수채화, 책, 시, 여행..’ 등 평소에 내가 관심 갖고 있던 것들이 다 들어있다. 놀라운 건 이 책에 있는 수많은 글들이 한 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 헤세가 오랜 기간 여기저기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인데 그 내용이 헤세라는 한 사람 안에서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노년의 헤세는 숲을 낀 마을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노래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그는 숲을 산책하고, 바라보며 사색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많은 이들의 로망을 그는 다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노벨상까지 수상했다.) 자신이 이룬 것들에 싫증내며 또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것을 보고 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에 놀라기도 했다.

 

  이 책은 그가 쓴 다른 책들보다 헤세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어 그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된 점이 좋았다. 어린 시절 마법사가 되기를 꿈꾸던 그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천진난만함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서글퍼하기도 했다는 것, 전쟁을 겪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살았던 사람으로 전쟁을 멀리하고 자연에 머물러 있고자 한 것 등 짐작했던 것들을 확인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헤세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얼핏 들었지만 프로 화가가 아님에도 자신만의 독특한 수채화들을 그려낸 것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그는 음악회에 가는 것을 설레어 하며 기다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고 예술과 문학은 같은 뿌리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가 좋아했다는 것을 알게 되니 헤세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다.

 

--- 본문 내용 ---

 

- 나에게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야기하는 모든 의문점들보다도 더 이상야릇하고, 이해할 수 없으면서 매혹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산들이 어떻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공기가 어떻게 소리도 없이 골짜기 속에 머물러 있으며, 노란 배나무 잎사귀들이 어떻게 가지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질까, 또 한 무리의 새들은 어떻게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것일까, 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질문은 평소 같았으면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아는 체 하기 좋아하던 사람들의 교만한 마음도 수그러들게 만든다. (53쪽)

 

- 나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도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며 행복이다. (59쪽)

 

- 나는 현재에만 머물러 있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른들의 삶이 나를 덫에 치이게 했다. 처음에는 겨우 머리카락 하나, 손가락 하나 정도만 붙들었으나, 이내 나를 완전히 낚아채어 확고하게 붙들 것이었다. 목표를 향해 가는 삶, 수치를 따라가는 삶, 질서와 관직이 있는 삶, 직업과 시험들로 점철된 삶……. 얼마 안 있으면 나에게도 시간의 종이 울릴 것이다. 나도 곧 대학생이 되고, 대학 졸업 시험을 앞두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목사나 교수가 될 것이다. 실크 중절모자를 머리에 쓰고 가죽 장갑을 끼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157쪽)

 

- 내가 소망했던 많은 것들이 삶에서 이루어졌다. 시인이 되고 싶었는데 시인이 되었으며 집을 한 채 가지고 싶었는데 결국 집을 지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가지고 싶었던 소망도 이루어졌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던 꿈들도 이루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모든 소망은 너무도 쉽게 싫증이 났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시를 쓰는 일조차 내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집은 너무나 좁게 느껴졌고, 내가 이룬 목표들은 어느 것도 진정으로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다. 나는 가던 모든 길에서 되돌아와야 했으며 모든 휴식의 끝에는 또 다른 동경이 남을 뿐이었다. … 나에게는 아직도 환하게 불타오르는 빛이 있다. 꿈꾸고 소망하는 것을 바라보며 강한 애착을 간직한 별들이 발산하는 찬란한 빛이. (184-185쪽)

 

- 나는 대단한 화가는 아니다. 그저 아마추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드넓은 골짜기 안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얼굴을, 지나간 날들과 시간들의 얼굴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다리 난간이 가진 주름의 모습을, 강기슭의 모양과 녹음 속에 뻗어 있는 다정한 길들을 나만큼 잘 알고 사랑하며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29쪽)

- 진정한 언어는 누구에게나, 특히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이고 유일한 방식으로 느껴지고 체험된다. 비록 그가 그것에 대해서 모르더라도. (287-288쪽)

 

- 책 속에서는 늘 새로운 것들이 우리를 마법처럼 유혹하고 늘 새로운 색채로 빛난다. … 진정한 독자라면 누구나 책 속에 발견해 내는 무한한 세계가 각자 다르게 보인다. 그 안에서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고 체험할 수 있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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