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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ㅣ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701/pimg_762781103869504.jpg)
"땅 속에는 커다란 힘이 있어서 자기 몸 위에 붙어 있는 것을 가운데로 잡아당기고 있다네. 게다가 구만 리나 되는 큰 땅덩어리가 하루 열두 시각에 맞추어 한 번씩 돌자면 빠르기가 번개나 포탄보다도 더하고, 돌고 있는 가운데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지. 땅 위의 사람뿐 아니라 하늘을 나는 새도 이 힘을 벗어날 수는 없어. 바닷물도 마찬가지라네." 구만 리나 큰 땅덩어리가 엄청난 속도로 돌고 있다니, 우리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보다 더한 폭풍이 일고 있었다.(157쪽)
이덕무가 살던 시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청나라를 오랑캐라하여 무시하는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룩한 것을 보고 박지원, 박제가 등 당시 지식인들은 청나라를 통해 신문물을 들여오려고 한다. 하지만 신분계급이 철저히 나눠져 있던 그 시대에 서자 출신인 이덕무는 그의 뛰어난 학식에도 관직에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너무나 좋아하던 그는 먹을 것이 없어도 책을 읽으며 그 굶주림을 잊을만큼 독서에 열중한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그의 주변에는 그와 비슷한 책을 사랑하는 벗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스승으로 모시는 연암 박지원까지. 결국 그는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규장각 검서관의 자리에 친구들과 함께 오르는 영예를 누린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정조는 그가 이른 나이에 아버지보다도 먼저 죽은 다음 그의 유고를 모아 책을 만들도록 지시하며 돈을 내려준다. 하지만 정조도 안타깝게 일찍 죽자 세상은 또 한 번 요동친다. 노론이 득세하면서 그의 친구들이 다들 고문 받고 귀양을 가기 때문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소리는 듣기 싫은 잡음에 불과하다.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아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자연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도무지 그 이치를 알 수 없을 때는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갑작스럽거나 두렵게만 느껴질 것이다. 하늘의 해를 가리는 일식과 갑자기 달이 사라지는 월식에, 사람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엎드려 벌벌 떨고 두려워하였던가. 그러나 해와 달이 저마다의 길을 따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돌아가는 법칙을 알게 되면, 자연은 너무나 조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163쪽)
모든 일에는 조화가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어떤 일에 대해 유행하듯 이리 치우쳤다 저리 치우쳤다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언제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며 군중의 심리에 너무 좌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시 자연과학이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서둘러야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과학과 기술을 더 육성시켜 머리만 발달한 나라가 아닌 손과 발도 함께 발달하는 건강한 나라가 되어야겠다.
"중국에 다녀온 이듬해인 1779년 여름, 우리는 대궐의 부름을 받았다. 나와 박제가, 유득공, 그리고 서리수, 우리 네 사람이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에 임명된 것이다. 규장각은 주상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시자마자 새롭게 세운 기관으로, 조선의 학문을 새롭게 일으키고 번영시켜 나갈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가 관복을 입고 처음 입궐하는 날, 아버님께 인사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서 나도 울컥 했다. 얇은 이불을 덮어도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워 두터운 책을 이불 삼아 덮을 정도의 가난하고 고달픈 시절, 책과 벗들을 의지해 살아온 그의 긴 기다림의 세월이 그나마 보상을 받게 되니 내가 그인 양 기뻤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 늘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을 그가 아버님께 인사 드리고 입궐하니 그 부모가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을까 생각하니 너무나 감격스럽기도 했다. 이 시대에도 학벌이나 경제력이 아닌 진정한 인품과 실력으로 인정받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관직에 나가서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을과 백성들의 살림 살찌우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데 힘 쓴 그를 보며 우리나라의 정치인도 이덕무처럼 책을 사랑하고 고전으로부터 덕과 지혜를 배워 국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어느 위치에 있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늘 연마해야겠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소설수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기 전과 후에 이 소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이 놀랍다. 시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시제와 저자의 자료수집 작업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갔다. 사람은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701/pimg_762781103869507.jpg)
<그림이 예뻐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